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말씀연구>
가치를 아는 것과 가치를 모르는 것.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효자가 연로하신 어머니를 성경을 모두 암기하고 있는 앵무새를 비싼 값에 사서 어머니에게 보내드렸습니다. 얼마후에 어머니에게서 감사의 편지가 왔습니다. “얘야 네가 보내준 앵무새 잘 받았다. 그런데 고기가 좀 질기더구나…”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 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
개와 돼지 같은 짐승을 거룩한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두 가지 종류의 인간으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예로니모는 돼지란 한 번도 복음의 광명을 받지 못한 이교인을 말하고, 개란 한번 회개하였다가 다시 무신앙으로 타락한 인간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요한 금구는 개란 회개의 가망이 전혀 없는 불신자를 뜻하며, 돼지란 타락한 자를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좌우지간 개와 돼지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은 거룩한 것에 접근시켜서는 안될 위험한 인간을 뜻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거룩한 것이란 완덕은 물론, 복음, 성사, 제자들의 의무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을 뜻합니다. 개나 돼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것 뿐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가령 진주를 던져 주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먹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을 때는 제 발로 진주를 밟아 버리고, 성을 내며 그것을 준 사람을 오히려 물려고 덤벼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적당한 준비도, 예비교육도 받지 않고 거룩한 것을 받은 후, 변절하여 박해자가 되어 어머니이신 교회를 물어뜯으려고 덤벼 든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2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이것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고급 양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유식 대신 술을 마시게 하면 안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에게는 내가 해 주고 싶은 대로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유다의 랍비들은 이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훈계는 항상 소극적으로 얼마 쯤은 이기적인 더러움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예언서가 가르치는 것이 “하지 말라”라는 소극적인 방면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율법 모두가 “행하라”는 적극적이고 명령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이방인이 랍비 샴마이(기원전 30년 경의 사람)에게 면회를 청하러 왔습니다. “나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곧 당신은 내가 한 쪽 발로 서 있는 동안에 모든 율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샴마이는 화를 내며 그 사나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랍비 힐레르는 그 사나이를 제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다. 다른 것은 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서 이같이 가르쳐라.”
진리는 통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예수님 이전의 랍비들도 예수님과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킴에 있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13 “좁은 문으로 들어 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14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생명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참된 가치를 알고, 진주를 진주로 알아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황금율을 지키는 것. 그것이 바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생명에 이르는 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