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바칩니까?
오늘 복음은 두 가지의 주제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수난예고이고, 다른 하나는 성전세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21 그들이 갈릴래아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멀지 않아 사람들에게 잡혀 22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매우 슬퍼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메시아의 수난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심각하게 말씀을 꺼내십니다.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때에 베드로는 완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마태16,22). 제자들은 한번 들어서인지 제자들의 반응은 몹시 슬퍼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귀에는 부활보다는 죽음에 더 마음이 가고 있습니다. 스승이 죽는다는 그 괴로운 말만이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다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23 그들이 가파르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당신네 선생님은 성전세를 바칩니까?” 하고 물었다.
스므살이 되면 유다인은 팔레스티나 바깥 나라에 살고 있더라도 성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 사람 앞에 2드라크마의 세금을 바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부인과 노예와 미성년자는 바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사제들도 바쳐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부인과 노예와 미성년자는 의무가 아니었지만 바치고 싶은 사람은 바쳐도 무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방인과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절대로 받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30,13절을 보면 한 사람앞에 1년에 반 세겔이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3분의 1세겔로 줄었는데 시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후에 다시 반 세겔로 환원하였습니다. 성전 유지를 위한 이 세금은 대축일, 과월제, 오순절, 초막절 때에 바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시기에 만날 기회가 없었던 세금 징수원들이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냐고 묻고 있습니다.
24 “예, 바치십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고 집에 들어 갔더니 예수께서 먼저 “시몬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인두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내느냐? 자기 자녀들한테서 받느냐? 남한테서 받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세금에 관계되는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갖고 계시는 이스라엘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성전이 궁극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마태12,6), 성전에 대해서는 존경심을 가지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예물 봉헌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십니다(마태5,23-24참조).
그런데 베드로에 앞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세상의 임금이 세금을 자녀들한테서 받느냐고…”.
사실 예수님께서는 성전세를 바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분이시고, 성전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5 “남한테서 받아냅니다” 하고 베드로가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세금을 물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26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이렇게 하여라.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낚인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그 속에 한 스타테르짜리 은전이 들어 있을 터이니 그것을 꺼내서 내 몫으로 갖다 내어라.”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세금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갑에서 2드라크마를 꺼내지 않으시고 특이한 방법으로 성전세를 내십니다. 하느님께서 알아서 세금 낼 돈을 마련해 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조그마한 기적을 이용하십니다. 메시아의 자유는 손상을 입지 않고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1스타테르짜리 은전은 1세겔, 또는 4드라크마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 두 사람 분의 세금입니다. 다른 사도들을 위해서는 공금에서 지불했을 것입니다.
웃어봅시다.
성전세를 내기 위해서 낚시를 하러 간 베드로 사도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자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찾아 나서셨다.
가보니 베드로 사도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베드로! 큰 고기가 잡혀서 그런 거야?”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했다.
“아닌디유! 바늘이 바닥에 걸려서…”
…
“베드로! 어부 맞아?”
…..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 삶이 다른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은 내 행동을 통해서 사람들이 신앙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성전세를 내지 않으셔도 됨에도 불구하고 내십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나도 신앙이 약한 이들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성당 내에서의 잡담, 각 단체들 간의 싸움과 이기주의, 모임후의 음주 가무 등….신심이 약한 이들을 넘어지게 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사제나 수도자들, 복사들이 봉헌금을 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2. 신자들의 행동 중에서 신심이 약한 이들을 위해서 배려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