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르나의 뽈리까르뽀-저서(순교록과 성인 공경)

 



4.2.2. 순교록과 성인 공경


171년 이 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뽈리까르뽀의 [순교록]은 뽈리까르뽀 주교의 영웅적인 모습을 알리기 위해 스미르나 교회가 필로멜리움 교회에 보낸 서간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공공 경기장에서 여러 순교자에 대한 처형이 있언 다음,끝으로 뽈리까르뽀 주교의 차례가 되자 스다씨우스 과드라뚜스 총독은 주교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휴혹하였다. 그는 “내가 86세가 되도록 섬겨온 그분은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시고 또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으신 그분이신데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하며 거부하였다. 경기가 이미 끝난 뒤라 총독이 그를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하자, 군중은 장작더미를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포졸들은 그가 뜨거워 요동을 칠까봐 못질을 하려하자, 노(老)주교는 “염려말게. 이불을 견딜힘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못박지 않아도 장작불 속에서 버티어 낼 힘을 나에게 주시리라”고 안심시키고 당당히 순교하였다. 한편 우리는 순교록 18,2-3에서 성인들의 유해 공경의 기원과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후에 그분의 뼈를 모아드렸는데 이 뼈들은 우리에게 값진 보석보다 더 귀하며 금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우리는 적당한 장소에 그 벼들을 안장하였다. 주님을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경건한 마음과 기쁨으로 함께 모여 순교자의 탄일을 경축할 것을 허락하실것이니 이는 먼저 싸운 이들을 기념하고 후에 싸울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위해서이다.” 여기서 우리는 스미르나의 신도들이 순교한 주교의 유해를 안장했다는 도의적인 차원을 넘어, 순교자에 대한 공경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신도들이 성인의 유해(遺骸)가 모셔진 곳에 모여 기도하는 것은, 앞서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을 기리며, 어느날 갑자기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해야 할 날이 자기 자신들에게 닥치더라도 선배 순교자들의 용기를 본받고 순교의 고통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초대 교회부터 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진 곳 특히 까다꼼바와 같은 곳에 신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관습이 생겨났으며,박해가 끝난 시대에는 순교자들의 유해가 있는 곳 위에 성당을 짓는 관습이 생겨났다. 이 [순교록]은 성인들의 공경을 거북하게 여기는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에게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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