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에 치유하시는 예수님
1 예수께서 어느 안식일에 빵을 잡수시러 바리사이들의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그들은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잔치를 벌이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평일에는 식사를 두 번 하였지만 안식일에는 세 번 하였습니다. 회당에서 예배가 끝난 후에 먹는 점심 식사가 가장 잘 차려진 식사였습니다. “축제일에 백성들은 먹고 마시든지 아니면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한다.” 축제를 함께 지내기 위해서 손님들이 초대되었고, 그들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이들과 고아들과 이방인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했으며, 그들의 허기를 채워 주어야 했습니다.
회당의 종교 의식에는 유명한 율법교사들을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점심 식사에 초대하는 것이 관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참으로 멋지신 분이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교만에 대해서 단호한 태도를 취하시고, 그들을 비난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초대하면 기꺼이 응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모셔다 놓고 자신들의 입장을 강조하고, 꼬투리 잡으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씀이 참 와 닿습니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처럼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고 전해주지 않습니다.
2 마침 예수 앞에 수종병자 한 사람이 있었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한 수종병자가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기적으로 치유하여 주기를 청할 용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습니다. 그는 집 주인의 초대를 받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 상황을 상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병이라는 것이 부도덕한 생활에 대한 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그들 앞에 나타났으니…,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과 그 병자에게로 쏠렸을 것입니다.
수종병: 혈액중에 액체성분이 혈관벽을 투과하여 주위 조직이 구석구석 침투된 것. 그래서 몸이 붓는 것을 말한다..
수종병(水腫病)은 의학용어상으로는 부종(浮腫, edema)라는 말을사용한다.부종(edema)가 생기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흔한것은 우리 몸이 피곤할때 붓는 것이 가장 많고 기타 여성들에서 생리 주기에 따라 몸이 붓는 주기성 부종(cyclie edema)이 있고 중증 질환으로는 우리몸의 여러 장기 특히 심장병(특히 심부전증)이나 신장질환(신부전증, 신증후군), 간장질환 (간경화, 심한 간염) 등이 있을때 전신상태를 반영해서 생기는 부종이 있습니다. 치료는 원인을 찾아서 교정해 주는 것이 원칙이나 몸안에 수분이 많이생겨서, 축적되서 생기는 경우는 이뇨제 등을 투여하고 기타 알부민 같은 단백질이 부족한 경우는 알부민이나 혈장 단백을 투여하여 보충해 줌으로써 부종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3 예수께서는 말문을 열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 안됩니까?” 하고 물으셨다. 4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께서는 수종병자를 만져 낫게 하고 돌려보내신 다음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병이 들어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안식을 규정을 거스르게 된다 할지라도 그 병자를 도와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죽음에까지 이르는 병이 아닐 경우에는 안식일이 지날 대까지 그 병자를 도볼 수 없었습니다. 수종병에 걸린 이 사람의 경우는 그다지 위험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중들로 하여금 율법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어도 됩니까?” 하고. 이 질문을 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알고, 병자의 고통을 생각해 본다면 당연히 고쳐 주어야 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종병자를 만져낫게 하고 돌려보내십니다.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 예수님은 정말 자비로우신 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진다면 안식일이라도 즉시 끌어내지 않겠습니까?” 6 그들은 이 말씀에 대꾸하지 못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결정타를 맞게 됩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백성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목자이지만, 그래서 백성들을 잘 이끌어야 하지만 수종병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의 고통을 생각하기 보다는 부도덕한 생활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티나의 우물은 둘레를 높게 둘러싸지 않고 단지 돌로 덮어 두었기 때문에 우물에 빠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일상생활에 흔히 있는 실례를 들어 설명을 하십니다. 그들은 어린이나 짐승이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수종병자도 당연히 고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아무 대꾸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 읽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목숨보다는 짐승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달았을까요? 그래서 “아! 지금부터는 백성의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사랑으로 대해주어야 하겠다!”고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쿰란에서 발견된 다마스코 문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동물이 물구덩이나 웅덩이에 빠졌을 때에는 끌어내어서는 안 된다.” 율법교사들 사이에 알려진 두 가지 견해 중 더 엄격한 입장에 따르면, 그 동물에게는 안식일에 죽지 않도록 먹을 것만 줄 수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좀더 너그러운 입장에 따르면, 그 동물을 직접 끌어낼 수는 없지만 천을 물린다거나 바닥을 메워 줌으로써 스스로 나오게 할 수는 있었습니다. 웃겨도 한참 웃깁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제한이 없듯이, 그 법은 사랑에 제한을 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당신의 신적 사랑의 나라입니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안식일 휴식은 가족과 집안 식구들과 심지어는 그 집의 가축들까지도 고려하는 인도주의적이고 사회적인 기초에 근거해 있습니다. 주인이 쉬어야 종들도 쉬고, 종들이 쉬어야 가축들도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근본 의미를 간과하고 이제 남은 것은 형식밖에 없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내적인 것보다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여 지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내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보여 지는 외적인 것입니까?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어떤 면에서 바라보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