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말씀연구>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을 찾고 기뻐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음식을 나누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못 마땅히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고,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남을 죄인이라고 말하는 내가 바로 죄인이니 하느님께서는 나의 회개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 가까이 모여왔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이 투덜거리며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하였다.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입니까? 율법학자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세리들이 죄인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들을 무시했지만, 그래서 죄인 취급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고, 당신께 오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자신들의 경쟁상대가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어울려서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셔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좌우지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들을 죄인으로 단정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향하여 두 가지의 비유를 이야기 하십니다. 이 두 가지 비유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영혼이라도 예외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러 가는 목동과 같으신 분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다른 모든 양을 두고 가는 목동의 행동이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 한 마리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이었다면 나는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하느님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하여 의인을 전부 버려두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4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다가 그 가운데 하나를 잃는다면,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버려 둔 채 잃은 것을 찾아낼 때까지 뒤쫓아다니지 않겠습니까? 5 그러다가 찾아내면 기뻐서 자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아냈습니다’ 하고 그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양을 백 마리나 가지고 있는 이 사람은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광야를, 계곡을 누빕니다. 당시에는 짐승들이 구멍이나 우물에 빠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입니다. 이 양을 어디서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의 주인은 끝내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백 마리나 양이 있는 그 부자에게 한 마리 양은 별것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인은 길 잃은 양에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그리도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7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늘에서 기쁨이 더할 것입니다.”
회개한 죄인이 공덕이 있어서 죄에 빠지지 않았던 의인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의인 아흔 아홉은 언제나 하느님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길을 벗어난 한명의 죄인은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가 회개를 하니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다고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8 “혹은 어떤 부인이, 드락메 열 닢을 가지고 있다가 드락메 한 닢을 잃게 되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져 보지 않겠습니까? 9 그러다가 찾아내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드락메를 찾아냈습니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이 여자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로 큰 돈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에게 있어서 열 닢의 동전은 전 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은전 한 닢은 하루의 노동의 대가가 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과 같은 액수인 듯 합니다.
하느님도 그런 분이십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길을 밝혀 주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10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이처럼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하느님의 천사들도 기뻐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해 주십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도 사랑밖에는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내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그를 하느님의 자녀로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2.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길 잃은 양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목자와 동료를 잃어버린 양이고, 길을 떠난 양은 목자와 양의 무리가 싫어서 떠난 양입니다. 신앙 안에서 길 잃은 양과 길을 떠난 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