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백인대장의 하인을 고치신 예수님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을 고쳐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의 특권은 사라지고 반대로 이방인들까지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 되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하느님 나라의 경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따라서 확장되어 나갈 것입니다. 스스로 구원받은 무리에 속한다고 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만일 진정한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례받았다 할지라도 믿음이 없다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5  예수께서 가파르나움에 들어 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예수께 와서


백인대장이란 말은 백 명의 병사를 통솔하는 장교를 뜻합니다. 로마 군단은 6,000명의 보병과 300의 기병으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최고 사령관 각 1,000명을 인솔하는 6명의 집정무관이었습니다. 군단은 600명으로 된 10개 보병대로 나뉘어, 그 각 보병대는 200명으로 조직된 3중대로 나뉘고,  또 중대는 각각 100명씩 2개 소대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 100명의 군대를 통솔하는 사람이 곧 백인대장입니다.


가파르나움에는 로마 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로마식 군대 조직을 채택하고 있던 갈릴래아의 페레아 분국왕 헤로데 안티파스의 군대에 속하였던 백인대장인 것 같습니다. 이 백인대장은 이방인이었으나 유대인에 대해서 호의를 가지고 있었고, 회당까지도 지어 준 사람이이라는 것을 루가 복음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루가7,5).




6  “주님, 제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와하고 있습니다.” 하고 사정하였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가파르나움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께로 달려와서 사정을 했습니다. 자신의 병사를 아끼는 마음이 그를 예수님께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족이 아프면 누구나 먼 길을 달려갑니다. 그런데 남이라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습니다. 직장 동료들이 아프다면 그렇게 할까요? 과장이나 부장이 말단 직원을 데리고 병원에 갈까요? 누구 시켜서 다녀오라고 하지 않을까요? 백인 대장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을 그렇게 걱정해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7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마” 하시자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청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이유도 달지 않으십니다. 아프니? 그럼 내가 고쳐 줄께…고쳐 주고서 뭘 바라신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고쳐 달라는데 외면하신 적도 한번도 없으십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우리도 그렇게 사람들의 청을 받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흔쾌히…




8  백인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시면 제 하인이 낫겠습니다.  9  저도 남의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에도 부하들이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또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백인대장은 놀라운 믿음을 보여줍니다. 팔레스티나에서는 유대인이 외교인 집을 방문하는 일이 절대로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외교인 백부장은 유대인 풍습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 자기 집을 돼지우리 같은 곳이고 생각하면서 황송하게 생각합니다.


군대의 명령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대로 수행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여 부하들이 말을 듣는 것처럼, 질병이나 고통도 반드시 예수님의 절대 권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주권자의 생각을 나타내고 그것을 수행하도록 보장해 줄 만한 명령 한 마디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항상 조건을 달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저에게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당신을 평생 잊지 않고 공경하겠습니다….저에게 이것만 해 주시면, 당신이 이런 증거만 보여 주시면…


백인 대장은 그저 한 말씀만 하라고 청을 드립니다. 우리가 영성체를 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다”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을 오늘 우리도 미사 중 영성체 전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넘친 백인대장의 고백을 되풀이하고 있는 나는 과연 백인대장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향하는지에 대해서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감탄하시며 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어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는 예수님. 이 고백을 제자들이나 유다인들로부터 얼마나 듣고 싶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이 고백을 이방인에게서 듣게 된 것입니다. 그의 신앙고백은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만져 주거나 얼굴을 맞대야 만이 치유가 가능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모든 것을 행하실 수 있는 분임을 알았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그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고백을. 그래서 백인대장처럼 그렇게 칭찬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백인대장처럼 명령에 충실한 계통에 일한 사람들은 지휘관의 말 한마디에 목숨까지 바칩니다. 믿고 사랑하는 공동체는 상대방의 말을 따르고 존중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불신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분위기에서 일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이런 믿음을 드리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가정이, 직장이, 성당 공동체의 분위기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합니다. 




11  잘 들어라.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 들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으나 12  이 나라의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 나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특권은 사라지고 반대로 지금까지 하느님을 믿지 않았던, 몰랐던 이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모욕적인 말이 되겠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쁨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13  그리고 나서 백인대장에게 “가 보아라. 네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시간에 그 하인의 병이 낳았다.


어느 누구도 전통이나 조상들의 공로로써, 또는 단순히 어떤 가문이나 민족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써 구원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결정적인 요소는 “확고한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구하는 바를 넘치게 받을 것이며 그 외에 더 많은 것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부족한 용기와 믿음 때문에 우리는 백인대장과 같은 신앙고백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족한 용기와 부족한 믿음 때문에 그런 청을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분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백인대장의 믿음을 칭찬해 주고,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백인대장과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다”미사 중에 고백하는 이 기도문을 나는 어떤 마음으로 바쳐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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