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뽈리뚜스-히뽈리뚜스의 생애

 

16.2. 히뽈리뚜스의 생애


히뽈리뚜스는 170-175년 사이에 출생하였으며, 그의 출생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가지 상황과 사료들로 미루어 볼 때 로마 또는 라틴계 출신이라기 보다는 동방계 출신으로 보인다.  오리게네스가 212년 경에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 로마의 명성있는 사제인 그의 강론을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로마교회 안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오리게네스와 필적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저서들을 남겼으며, 로마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저술가로 손꼽힌다.  포씨우스에 의하며 유실된 한 작품 속에서 히뽈리뚜스가 스스로 이레네우스의 제자였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증언하다.


그러나 히뽈리뚜스의 가장 큰 오점은 가교황(假敎皇:Antipapa)문제이다.  로마주교 선출에 있어 경쟁자였던 깔리스투스(217-222년 재직)가 주교로 선출되자 깔리스투스 주교의 신학 노선과 사목방향을 비판하면서 그에게 반기를 들고 나섰다.  깔리스투스 주교가 중죄인들에 대한 보속과 벌을 완화하자 그는 엄격주의로 돌아섰으며, 깔리스투스를 사벨리우스의 제자로서 성부수난설 이단에 물든 위험한 사람이라고 단죄하고 나섰다.  그는 추종자들과 함께 따로 교회를 세웠고 그들에 의해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어 이른바 역사상 최초의 「가교황」이 되었다.  로마교회의 이러한 분열은 깔리스투스의 후계자인 우르바누스(223-230년 재직)주교와 뽄시아누스(230-235년 재직)주교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박해로 인해 히뽈리뚜스와 뽄시아노 주교는 둘다 체포되어 샤르데냐 섬으로 귀양가게 되었으며, 이들은 그곳에서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즉 뽄시아노 주교는 235년 9월 28일 로마 주교직을 사임하여 후계자를 뽑도록 하였으며, 히뽈리뚜스 역시 자신의 가교황 직책을 포기하고 로마를 떠나기 전후해서 로마교회에 귀의하였다.  이로써 로마의 유일한 새 주교로 안테루스(235-236년 재직)가 선출되었다.  얼마 후 히뽈리뚜스와 뽄시아누스 모두 「죽음의 섬」이라고 불리우던 샤르데냐에서 세상을 떠났다.  파비아누스(236-250년 재직)주교는 두 사람의 유해를 로마로 모셔와 성대하게 장사를 지냈다.


뽄시아누스 주교는 성 깔리스뚜스 성당에, 그리고 히뽈리뚜스는 띠볼띠나 도로변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두 사람의 장례식이 236년 8월 13일에 거행되었기 때문에 이 두 성인의 축일을 8월 13일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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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16.2. 히뽈리뚜스의 생애

    히뽈리뚜스는 170-175년 사이에 출생하였으며, 그의 출생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가지 상황과 사료들로 미루어 볼 때 로마 또는 라틴계 출신이라기 보다는 동방계 출신으로 보인다.  오리게네스가 212년 경에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 로마의 명성있는 사제인 그의 강론을 들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로마교회 안에서 영향력있는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오리게네스와 필적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저서들을 남겼으며, 로마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저술가로 손꼽힌다.  포씨우스에 의하며 유실된 한 작품 속에서 히뽈리뚜스가 스스로 이레네우스의 제자였음을 고백하고 있다고 증언하다.

    그러나 히뽈리뚜스의 가장 큰 오점은 가교황(假敎皇:Antipapa)문제이다.  로마주교 선출에 있어 경쟁자였던 깔리스투스(217-222년 재직)가 주교로 선출되자 깔리스투스 주교의 신학 노선과 사목방향을 비판하면서 그에게 반기를 들고 나섰다.  깔리스투스 주교가 중죄인들에 대한 보속과 벌을 완화하자 그는 엄격주의로 돌아섰으며, 깔리스투스를 사벨리우스의 제자로서 성부수난설 이단에 물든 위험한 사람이라고 단죄하고 나섰다.  그는 추종자들과 함께 따로 교회를 세웠고 그들에 의해 로마의 주교로 선출되어 이른바 역사상 최초의 「가교황」이 되었다.  로마교회의 이러한 분열은 깔리스투스의 후계자인 우르바누스(223-230년 재직)주교와 뽄시아누스(230-235년 재직)주교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박해로 인해 히뽈리뚜스와 뽄시아노 주교는 둘다 체포되어 샤르데냐 섬으로 귀양가게 되었으며, 이들은 그곳에서 화해한 것으로 보인다.  즉 뽄시아노 주교는 235년 9월 28일 로마 주교직을 사임하여 후계자를 뽑도록 하였으며, 히뽈리뚜스 역시 자신의 가교황 직책을 포기하고 로마를 떠나기 전후해서 로마교회에 귀의하였다.  이로써 로마의 유일한 새 주교로 안테루스(235-236년 재직)가 선출되었다.  얼마 후 히뽈리뚜스와 뽄시아누스 모두 「죽음의 섬」이라고 불리우던 샤르데냐에서 세상을 떠났다.  파비아누스(236-250년 재직)주교는 두 사람의 유해를 로마로 모셔와 성대하게 장사를 지냈다.

    뽄시아누스 주교는 성 깔리스뚜스 성당에, 그리고 히뽈리뚜스는 띠볼띠나 도로변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두 사람의 장례식이 236년 8월 13일에 거행되었기 때문에 이 두 성인의 축일을 8월 13일에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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