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시고 하혈병에 걸린 여인인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예수님! 옷자락만 만지더라도 치유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예수님!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이렇게 커다란 분이십니다.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께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집에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19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일어나 그를 따라 가셨다.




회당장은 지방에서 최고의 종교적인 직책을 가지고 있으며, 예배를 관장하고 회당을 유지하는 데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딸이 금방 죽은 것입니다. 그는 슬픔에 겨워 예수님께 와서 신뢰에 가득 찬 마음으로 딸을 살려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기적을 행사시는 그 손을 딸의 몸에 얹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 것입니다. 회당장의 모습 안에서 그가 얼마나 자신의 딸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척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 나서십니다.




20  마침 그 때에 열 두 해 동안이나 하혈병을 앓던 어떤 여자가 뒤로 와서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21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녀는 그분이 손을 얹어 주시지 않아도 단지 그분의 손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으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로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까지도 환영을 하십니다. 믿음은 항상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데 있어서 전제 조건이요 바탕이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초보적인 믿음의 형태에서 날로 더 깊이 알게 되고 더 철저히 생활하게 되는 믿음으로 발전해 가고 성숙해 갑니다.




22  예수께서 돌아 서서 그 여자를 보시고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 여자는 대뜸 병이 낳았다.


예수님께서는 돌아 서서 그녀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신 치유를 의식하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행동을 즐겁게 받아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라는 말씀에서 기적의 원인은 그녀의 믿음이 아닙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 들이는 믿음의 위대함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 4세기 어느 전승에 의하면 그 여자는 가이사리아 필립비의 이방인이었고, 그녀는 자기 집 마당에 예수님 발 밑에 엎드리는 자기 모습을 조각하게 했다고도 합니다. 또 베로니카, 혹은 베레니체였다고 하는 전승도 있습니다.>




23  예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러 피리 부는 사람들과 곡하며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떠드는 무리란 아마도 곡하는 여자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어떠한 가난한 집에서도 장례식 때에는 두 사람의 피리 부는 사람과 한 사람의 곡하는 여자를 고용하였습니다. 여기서는 집 주인이 회당장이었기 때문에 필경 곡하는 여자가 한 둘이 아니었을 것이니 대단히 소란스러웠을 것입니다.




24  “다들 물러 가라.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만 쳤다.25  그 사람들이 다 밖으로 나간 뒤에 예수께서 방에 들어 가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그 아이는 곧 일어났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물리십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신의 기적을 보여주시면 많은 이들이 믿을 수 있을 텐데. 예수님께서는 기적의 영향을 될 수 있는 한 적게 하시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예수님이었다면, “다들 보슈. 이 아이 죽었는디 내가 살릴테니께. 잘 들 보시고 확실히 믿고 세례받고, 회개하고….그러는거유. 알았쥬?”


예수님께서는 아이가 잠들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별 것 아니라고. 그리고 더 나아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죽음이라는 것은 한탄 가벼운 잠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라자로를 부활시키실 때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친구 라자로가 잠들어 있으니 이제 내가 가서 깨워야겠다”(요한11,11)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니 어리석은 웃음을 터뜨리며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냥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그녀는 즉시 일어납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도 하느님이시고 생명을 거두시는 분도 하느님이시니 그분 앞에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려운 것은 우리가 어려운 것이니 나의 어려움을 하느님께 맞추려고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있어서 죽음이란 영혼의 영원한 죽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곧 육체의 죽음은 오직 부활을 기다리는 잠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26  이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마음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죽은 아이를 살려 내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들은 회개하고 믿기 보다는 그분의 능력을 또 시험해보고, 요구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이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라는 말보다 “그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라고 되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하혈하던 여인의 믿음을 생각해 보면서 내가 그녀에게 본받을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2. 회당장의 딸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 보면서 나는 부모님께 어떤 사랑을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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