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오늘 예수님께서는 구원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즉 유다인이라고 해서 당연히 구원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구원받는 사람은 하느님의 가족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친척 관계에 놓여 있다 해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그분의 진정한 가족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렇게 사셨으니 당연히 가족이고 어머니이시지요. 그런데 이 말씀은 성모님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맙시다.
즉 하느님의 가족이 모여 새로운 가정, 하느님의 가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혈연관계의 가족과 본의 아니게 다투고 결별하게도 됩니다(마태10,34-36).
46 예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실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와 서서 예수와 말씀을 나눌 기회를 찾고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반대자들의 음모 속에서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걱정하시면서 예수님을 만나러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나오는데, 이 말씀을 가지고 개신교에서는 성모님의 동정성을 부정합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의 형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성모님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성서학자는 없다. 이 형제가 성 요셉이 전에 결혼했던 여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사촌들이다. 만일 성모님께 다른 자녀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겠는가?
또한 성서에서 예수님의 형제가 한번도 마리아의 자식이라고 불려지지도 않았다. 또한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을 보더라도 전혀 그런 언급이 없다. 예수님께 다른 형제가 있었다면 12살 때 과월절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을 때, 그들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또한 동행할 수 없을 만큼 아이가 어렸다면 어떻게 마리아가 순례의 길을 나설 수 있었겠는가?
구약성서에서도 사촌을 가리키기 위해 형제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그리고 히브리말과 아람말에서는 사촌을 지칭하는 적당한 표현이 없었기 때문에, <형제>라는 말이 한층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성모님의 평생 동정성은 의혹을 받을 만한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며, 확실히 성전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상세한 기록에 의해서도 잘 증명되고 있다.
1. 예수님의 형제
예수님의 형제로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 네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다(마태13,55). 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규명하기는 어렵다. 야고보는, 알패오(마태10,3)를 아버지로 하고 요셉의 어머니이기도 한 마리아(마태27,56)를 어머니로 하는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복음사가 요한에 의하면,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자매지간으로, 구로파스 혹은 글레오파(요한19,25)의 아내이다. 예루살렘의 제2대 주교였던 시몬에 관하여 에제집뽀는, 그가 그리스도의 숙부 구로파스의 아들, 예수님의 사촌이었다고 한다(에우제비오 교회사..)또 에우제비오는 에제집뽀로부터 구로파스가 성 요셉의 친형제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2. 중요한 해석
이 당시 문제가 되고 있던 해석은, 알패오와 구로파스를 두 사람으로 하고 이상 네 사람의 사촌을 두 조로 나눈다. 다시 말해서, 야고보와 요셉은 알패오와 그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하고, 시몬과 유다는 구로파스의 아들이라고 한다. 마리아는 성모 마리아의 자매(요한 19,25)이고, 구로파스는 성 요셉의 형제(에제집뽀)이기 때문에, 이 네 사람의 사촌은 외가로 보나 친가로 보나 예수님의 사촌이다.
쁘라는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성 요셉의 형제인 구로파스 혹은 글레오파가 첫 번째 결혼에서 시몬과 유다를 낳고, 재혼하여 알패오가 세상을 떠난 후에 과부가 되었던 마리아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성 요셉과 성모 마리아의 의자매가 되었다. 이 재혼으로 인하여 야고보와 요셉이라는 두 아들이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재혼설은 확실성이 없다.
휴비는, 성서와 성전에 적합한 해석을 내리고 있다.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이 두 사람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지기 때문에,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이다. 이 마리아는, 성서의 다른 곳에서 구로파스의 아내라고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알패오와 구로파스는 동일인물이며, 이름 한 가지는 아람말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리스말, 같은 이름이지만 읽는 법이 달랐다고 말한다. 마리아는 알패오(구로파스)의 아내이다.
또 복음사가 요한은 이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의 자매라고 말하고 있다. 예로니모의 이 말에 따라서, 야고보의 어머니들, 성모 마리아의 언니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상당히 오랜 전통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의 양친인 요아킴과 안나와의 사이에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다가 마리아(성모님)만을 낳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복음사가 요한이 말하는 <자매>라는 말도 사촌자매라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형제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사촌 형제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패오, 구로파스의 아내는 그렇기 때문에 성모 마리아의 사촌자매였다고 생각된다. 이 마리아와 성요셉의 친형제인 알패오, 구로파스는 예수님의 형제라는 네 사람의 친척이었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의 자매(마르6,3;마태13,56)라고 부르는 여인들의 이름은 복음서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잡다한 전설 가운데에는, 이 여인들을, 때로는 마리아와 살로메, 때로는 아시아와 리디아 등으로 부르고 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당신이 어머니 마리아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특별히 강조할 필요는없었다. 나자렛에서와 마찬가지로 가파르나움에서도,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또 예수님은 여기서 사촌, 혹은 일반적으로 친척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가리켜 “바로 이 사람들이…내 형제들이다”고 하셨는데. 이 말의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 주기 위해서도 형제라고 표현한 방법이 적당하였다.
47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선생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시겠다고 밖에 서서 찾고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마침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서서 예수님과 말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소식을 예수님께 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질문을 하십니다.
48 예수께서는 말을 전해 준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하고 물으셨다.
순간 이 말씀을 전해드린 사람은 “예수님이 미치셨나?”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미친 사람이라도 자기 부모나 형제는 기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가르치는 예수님께서 고작 하시는 말씀이 이렇다니…
그리고 이런 분심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니 보잘 것 없는 시골 아낙이나 친지들이 예수님의 앞길에 장애가 되어서 모른다고 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어머니 마리아와 다른 친척들과 결별을 해서 마치 더 이상 그들을 혈연으로 인정하거나 알지 못하며 그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가?
좌우지간 소식을 전한 사람이나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들은 무척 놀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핵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 위에 손을 뻗치셨습니다. 그리고 엄숙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표현은 소유를 뜻하는 동작이고, 제자들이 당신께 속한다는 표현이며 축복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아니라 제자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을 주의 깊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이 표현은 열두 사도단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내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갖는 모든 사람들,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49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대한 참된 실천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실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인 것입니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혈연관계, 가족이나 종족이라는 자연적 관계, 민족적 단일성,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한 관계들이 아무리 근본적이고 강력하다 하더라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절박한 요구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는 소극적이라면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가족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헐벗은 한 거지 아이가 식당 문 앞을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한 아주머니가 그 아이에게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그 아이를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음식을 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옷가게에 데리고 가서 두툼한 옷을 한 벌 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하느님이세요?”
그 아주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하지만 난 하느님의 가족이란다..”
제자는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님의 친척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또한 애정과 친밀감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순종과 예속과 무조건적인 추종의 테두리 안에 고정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조건 없이 예수님께 자신을 바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한 사람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가정에서 같이 사는 형제와 자매, 부모와 자식처럼 예수님과 친숙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나누어요>
1. 당신은 예수님의 가족입니까?
2. 내가 예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3. 내가 나의 영적인 가족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