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떨기나무

불타는 떨기나무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자발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타는 떨기나무입니다. 떨기는 가시나무 종류인데, 시나이 반도와 같이 건조한 지방에는 많은 종류의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시나이 반도 광야의 지표면에는 물이 없고 지하수도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또 드물게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도 잎이 작고 가시가 큽니다. 수분의 증발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적응된 것입니다. 떨기는 가시나무 종류인데, 시나이 반도와 같이 건조한 지방에는 많은 종류의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여러 종류의 가시나무 이름들이 나오지만 낱낱이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시나무는 길게 자란 가시로 사람이나 짐승이 섣불리 접근할 수 없도록 스스로를 방어를 합니다.

 

모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라는 것은 결코 설명될 수도 없고, 설명 할 수도 없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탈출3,3)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해서…,

 

구약성경에서 불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형태중의 하나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불 속에 내려오셨습니다(탈출19,8;신명4,12).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과 카르멜 산에서 대결할 때에도 주님은 불로 응답하셨습니다(1열왕18,24). 그리고 불꽃이 솟아오르지만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랑의 불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빛과 열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하느님은 불 속에 계시므로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불은 가까이에 있는 것을 태워 버리기에, 불은 부정한 자가 접근하면 태워 버리는 처벌의 도구도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나 의무감으로 성당에 다니게 되고,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그분이 누구신지 알게 되고, 하느님을 더욱 따르게 됩니다. 나도 내 열성으로 불을 태워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삶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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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떨기나무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불타는 떨기나무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자발적으로 주님 앞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타는 떨기나무입니다. 떨기는 가시나무 종류인데, 시나이 반도와 같이 건조한 지방에는 많은 종류의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시나이 반도 광야의 지표면에는 물이 없고 지하수도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나무가 거의 없습니다. 또 드물게 보이는 아카시아 나무도 잎이 작고 가시가 큽니다. 수분의 증발을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적응된 것입니다. 떨기는 가시나무 종류인데, 시나이 반도와 같이 건조한 지방에는 많은 종류의 가시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여러 종류의 가시나무 이름들이 나오지만 낱낱이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시나무는 길게 자란 가시로 사람이나 짐승이 섣불리 접근할 수 없도록 스스로를 방어를 합니다.

     

    모세가 보니 떨기가 불에 타는데도, 그 떨기는 타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라는 것은 결코 설명될 수도 없고, 설명 할 수도 없습니다. 모세는 그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탈출3,3)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해서…,

     

    구약성경에서 불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형태중의 하나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을 때에도 주님께서는 불 속에 내려오셨습니다(탈출19,8;신명4,12). 엘리야가 바알의 예언자들과 카르멜 산에서 대결할 때에도 주님은 불로 응답하셨습니다(1열왕18,24). 그리고 불꽃이 솟아오르지만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랑의 불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빛과 열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하느님은 불 속에 계시므로 접근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불은 가까이에 있는 것을 태워 버리기에, 불은 부정한 자가 접근하면 태워 버리는 처벌의 도구도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나 의무감으로 성당에 다니게 되고,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그분이 누구신지 알게 되고, 하느님을 더욱 따르게 됩니다. 나도 내 열성으로 불을 태워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고, 그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의 삶이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멋지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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