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위선의 끝은 어디인가


<말씀연구>


자질구레한 계명은 지키고 있으면서도 중요한 계명은 지키지 않는 사람들.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또한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사람은 아닌지…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 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하지 않겠느냐?




구약에서는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와 곡식에 한해 십분의 일세를 바쳤습니다(민수18,12).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징세 범위가 확대되어 과일과 가축의 경우에도 십분의 일세를 바쳤습니다(레위27,30; 신명 14,22-23).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는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 따위 양념 향신료에까지 확대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지나친 열심에 따라 십일조 소에 일반 향료 식물까지 포함시켜 그 규정을 터무니없이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제멋대로 확대시켜 놓았지만 그에 따라 자연히 참으로 중요한 것들은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라(아네톤)는 모양이 흰 참깨 비슷하고 소회향(퀴미논)은 검정참깨 비슷한데, 주로 빵이나 과자를 구울 때 향기와 맛을 돋우는 향신료로 사용한다. 박하는 향료나 약재로 사용되었다. 심장강화의 약으로 세 개의 달걀에 박하를 섞고, 달걀 하나에 근체를 섞고 또 한 개를 회향과 섞어서 마시면 좋은 약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식용이나 약용에 쓰는 생산품도 세금을 바치고 있었다.>




자질구레한 계명의 예로서 먹는 야채는 10분의 1을 바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다인은 밀과포도주와 기름의 세 가지 세를 바칠 의무가 있었는데 경건하다고 자처하고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땅에서 거둔 것이라면 어떤 생산물이라도 그 세를 바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바치는 행위를 나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보다는 윤리를 중요시하십니다. 그리고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을 “정의와 자비와 신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정의”의 그리스 원어는 “크리시스”로서 본디 “법” 또는 “재판”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합법적 재판, 의로운 재판을 말합니다.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법을 집행하고 가르치는 이들의 마음에 비수를 찌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 6 장 6절에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반기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재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 다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배자들은 제물을 바쳐야 하지만 동시에 가난한 자들을 등쳐서 이익을 얻기를 거부하고 일할 때나 임금을 지불할 때 정직하며 결혼 계약에 충실하고 약한 자와 억눌린 자들을 도우려고 노력하는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예언자들은 쉬지 않고 끊임없이 요구하였습니다.




즈가리야 예언자는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사실대로 공정한 재판을 하여라. 동족끼리 서로 신의를 지키며 열렬히 사랑하여라. 과부와 고아, 더부살이와 영세민을 억누르지 말고 동족끼리 해칠 마음을 품지 말아라.  이렇게 일러 주셨는데도 사람들은 귀담아 듣기는커녕 오히려 외면한 채 귀를 막았다.”(즈가리야 7,9-11)




정말 중요한 것에 마음을 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너무도 적절하게 표현하십니다.


24  이 눈먼 인도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가치의 전도”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백성들을 이끌고 있으니 백성들이 목자 잃은 양떼와 같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루살이는 자질구레한 작은 것을 대표하고 낙타는 큰 것을 대표하는 말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이 부정하다고 정한 벌레를 삼키지 않으려고 음료를 걸러내어 마시고 있었으나 이웃에게 몰인정하고 속임수를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은 낙타를 삼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정결에 관하여 불행을 선언하십니다.


25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 26  이 눈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혹시라도 그릇이 불결한 상태에 있을세라 식사직전에 반드시 그릇을 다시 닦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그릇 닦는 데는 신경을 고두세우는 그들이었지만 또 한편, “착취와 무절제”를 일삼았습니다. 사실 그릇에 담긴 음식물을 살펴보면 “착취”해서 모은 것이요 “무절제”하게 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정결례는 잘 지키지만 윤리적으로는 타락한 점을 예수님께서는  탓하십니다.


형식만 번지르르하다면 내용은 아무래도 좋다는 그런 태도. 혹시 나 또한 그런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함께 묵상해봐요>


1.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2. 사람을 대할 때, 외모를 보십니까 아니면 내면을 들여다 보려고 노력하십니까? 그리고 나는 보여주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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