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말씀연구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가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합니다. 이 첫 증거는 바로 족보입니다. 하지만 신약성서를 대하면서 처음 접하게 되는 족보는 성서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립니다. 읽기 쉽지도 않고, 재미도 없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문장의 나열은 성서를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무미건조한 듯 보이는 이 족보야말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깊은 뜻이 담긴 것입니다. 이 족보는 2000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다음과 같다.
복음사가 마태오가 복음 첫머리에 이렇게 쓴 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믿음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 족보를 읽으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을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참 자유를 주시러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란 말로써 구약시대를 통하여 모든 유다인의 조상들과 왕에게, 그리고 예언자의 말을 통하여 비추어 주었던 초자연적 빛이 후손인 “예수님”께 집중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괴로움의 바다인 인생 항로를 걸어 온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것은 그 괴로움의 바다에서 구해 주실 구세주의 오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이 구세주는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그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이 메시아 약속의 상속인(上역대기 17,7-14;시편89,4)으로, 특권 있는 이새의 꽃, 곧 다윗의 꽃, 메시아를 꽃피울 왕조의 창립자로서 숭배해 왔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말로서 가장 즐겨 써 온 같은 뜻을 가진 표현입니다.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았고 이사악은 야곱을, 야곱은 그의 형제를 낳았으며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제라를 낳았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스론은 람을, 4 람은 암미나답을,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았으며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다.
다말은 룻처럼 이방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에 소속되고, 그 아들 베레스를 통하여 다윗 왕의 조상이 됩니다(룻4,12.18-22 참조). 그런데 다말은 유다의 맏아들 “에르 ”의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에르는 야훼의 눈 밖에 나서 죽었습니다. 아버지 유다는 오난에게 형수에게 장가들어 시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여 형의 후손을 남기라고 하였지만(수혼제, 레비라토 율법) 오난은 형에게 후손을 남겨 주려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야훼 하느님의 눈 밖에 나서 죽어 버립니다. 그러자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셀라”가 어른이 될 때까지 친정에 돌아가 기다려 달라고 말을 하고 친정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다말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의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됩니다(창세38,1-30).
우리 족보라면 시아버지의 아이를 낳은 며느리를 족보에 올릴 수 없겠지만 이 족보는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것들을 통하여 당신 구원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라합은 예리고의 창녀였습니다. 여호수가 예리고를 점령하기 위해 정탐군을 보냈을 때 라합은 목숨을 걸고 그들을 살려주었습니다. 그 대가로 예리고가 점령되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예수님의 족보에도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여호수아2,1-6,27).
룻 또한 이방여인(모압)이었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살다가 기근이 들어서 모압으로 내려가서 살았습니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며느리를 얻었지만 둘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오르바와 룻이라는 두 며느리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오미는 고향에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고 두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 보내려고 했습니다. 가지 않겠다는 며느리들을 타일렀지만 룻은 시어머니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나오미는 룻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친척 보아즈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는 가까운 친척이 가족의 유산이 없어지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속량”해 주는 습관이 있었습니다(룻기4,4; 레우25,23-25 참조). 그리고 죽은 형의 동생이 형수를 맞아들여 그 형의 후손과 그 이름을 없어지지 않게 해 주어야 하는 레비라토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이방인 여인 룻도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이 존경했던 여인들, 즉 사라, 레베카, 라헬등이 빠져있는데 그 이유는 미천한 사람들(다말, 라합, 바쎄바, 룻)을 택함으로써(그 당시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취급 하지 않았다)을 선택함으로써 사람들이 보기에 위대한 것을 선택하지 않는 하느님의 특이한 義의 일면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방여인을 택함으로써 이방인까지도 구원하는 하느님의 행동을 시사하려는 것. 즉 족보의 의미는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시면서 인류구원을 실현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아비야는 아삽을, 8 아삽은 여호사밧을, 여호사밧은 요람을, 요람은 우찌야를, 9 우찌야는 요담을, 요담은 아하즈를,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므나쎄는 아모스를, 아모스는 요시아를 낳았고,11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 갈 무렵에 요시야는 여고니아와 그의 동생을 낳았다.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 그녀는 남편이 있는 몸임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부정을 저지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부정을 은폐하기 위해 바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잘못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찬미할 뿐입니다.
12 바빌론으로 끌려 간 다음 여고니야는 스알디엘을 낳았고 스알디엘은 즈루빠벨을,13 즈루빠벨을 아비훗을, 아비훗은 엘리아킴을, 엘리아킴은 아졸을,14 아졸은 사독을, 사독은 아힘을, 아힘은 엘리훗을,15 엘리훗은 엘르아잘을, 엘르아잘은 마딴을, 마딴은 야곱을 낳았으며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마리아는 이 족보에서 전혀 다르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즉 누가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았다는 도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이름을 언급함이 없이 “…에게서 예수를 낳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혈육보다는 내 대를 잇는 사람으로 선포되면 그 사람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법적인 승인이 결정적입니다. 누군가 이 사람이 내 아들이라고 말하면 그는 친자임이 확인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므로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십 사 대이고, 다윗에서 바빌론으로 끌려 갈 때까지가 십 사 대이며 바빌론으로 끌려 간 다음 그리스도까지가 또한 십 사 대이다.
아브라함 – 다윗: 14대, 다윗- 바빌론 유배: 14대,
바빌론유배-예수님: 14대
☞ 족보를 인위적으로 기록 ☞ 예수님 안에서 구세사업이 완성됨을 나타냄
7이라는 숫자: 완전함 충만함, 7× 2 = 14(충만)▶때가 꽉 찼다.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말없이 가정을 이끌어 오셨던 성 요셉,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 앞에서 인간적인 모든 감정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성 요셉. 구원역사 안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행동하셨던 성 요셉. 그분의 삶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은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유다법은 명백히 약혼과 결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정식 결혼은 신부를 자기 집에 맞아들이고, 함께 산 때부터 성립되었습니다(신명기 20,7).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 했을 때는 저마다 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 약혼자는 혼인에 있어서 엄밀한 뜻의 결혼한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➀부정을 저지른 약혼자는 부정을 저지른 아내처럼 돌로 쳐 죽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➁약혼자를 잃은 여자는 과부와 똑같이 여겼다.
➂약혼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혼장을 써 주어야 했다.
➃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은 적자로 보았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진 것은 간음한 것이고, 간음한 여인들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유다법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도 적자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의로운 사람이란 항상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은 지혜롭고 친절하며, 그의 성숙한 인간성이 하느님의 계육과 잘 융화되어 빛을 발합니다. 의인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조사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마리아를 그렇게 용서할 수가 있을까?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의 아이를 가진 상황인데, 내가 그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요셉은 마리아를 나자렛의 회당에 고발하든가, 아니면 두 증인을 세우고 이혼장을 써 주고 인연을 끊든가,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에 고발하면 그녀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될 것이고, 또 마리아의 명예가 더럽혀 지는 것은 물론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어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만큼 마리아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파혼하겠다는 결심이 선후에 하느님께서 급해지셨나 봅니다. 즉시 개입하십니다. 천사는 그에게 엄숙히 “다윗의 자손 요셉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예로운 호칭을 받은 또 하나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 주었다.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특권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창조적인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그의 본질과 소명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경우 이런 권리는 제한되었습니다. 아이를 낳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름을 지어 줄 권리도 없었습니다. 이름은 이미 주어졌으며,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이름을 부르도록 명령받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뜻은 “야훼께서 도와주신다.”,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이름이었으며, 성전의 의식과 제사 재건에 참여한 대사제 예수아의 이름이었습니다. 지혜교사인 엘르아잘의 아들이요 시라의 아들이며 집회서의 저자인 예수도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 구원의 중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포괄적인 구원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과 인류가 구원받아야 할 죄의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22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23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이사야 예언(이사7,14)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됨을 보여 줍니다.처녀라는 말은 처녀성의 관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소녀라는 말이 반드시 처녀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과 처녀에게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그 아내의 그 남편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남편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요셉은 단순하게 그리고 주저함 없이 그가 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그는 경외심과 존경심에 가득 차서 마리아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이제 모든 사람이 볼 때 결혼한 요셉의 아내가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사랑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리아는 요셉에게 미안해하면서 살았을 것이고, 요셉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둘 사이에 분명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두 분은 훌륭하게 성가정을 꾸미십니다. 이분들보다 더 어려운 가정이 있었을까요? 하지만 이분들은 훌륭한 성가정을 꾸미셨으니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가장 읽기 힘든 부분이 바로 이 족보 부분입니다. 이런 기회를 통해서 끝까지 한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2. 족보를 통해 느끼는 것을 함께 나눠 봅시다.
3. 내가 요셉 성인이었다면 나는 성모님을 향하여 어떻게 결심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