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도다.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한 너희들

 

불행하도다. 예언자들을 피 흘리게 한 너희들


<말씀연구>


어제 말씀에 이어서 오늘도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혼이 나고 있습니다. 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내가 볼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보여 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벌이 아닐까요? 내가 잘못한 것들을 하느님 앞에서 다시 보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47  불행하도다, 너희들! 너희는 예언자들의 묘비를 만들고 있으나 바로 너희 조상들이 그들을 죽였던 것이다. 48  그러니 너희는 그 증인들이며 너희 조상들의 행실에 동조하는 것이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 묘비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을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죽이듯이 유다인들 또한 그들 안에 파견된 하느님의 예언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값비싼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 박해자의 자손인 당시의 유다인들은 예언자의 무덤을 세우고 조상들이 저지른 죄에 자기네는 가담하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무덤을 만드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었으나, 그들의 태도가 살인자의 자손이라는 그 좋은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혈통으로 보아도 옛 살인자의 자손이지만 그 정신, 그 행동 면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후손들이 자기들의 조상들보다 훨씬 선하고 현명하며 의롭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의 뻔뻔스러움은 착각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많은 예언자들이 그렇게 박해를 당했고, 그렇게 죽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들은 어느 예언자보다도 뛰어나신 메시아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밀 것입니다.








49  그러므로 하느님의 지혜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파견할 터인데 그들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박해할 것이다.’


하느님의 지혜는 하느님의 계획을 보여 줍니다. 곧 예언자의 살해도 섭리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구약의 예언자나 신약의 사도가 어떠한 운명을 만날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도와 제자들이 구약의예언자와 똑같이 박해를 받고 살해되리라고 예언하고 계십니다.




50  그러니 창세 이래 모든 예언자들이 흘린 피(의 대가)가 이 세대에게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범죄에 관심 없이 그냥 못 본 체 지나쳐 버리실 리 없으십니다. 머지  않아 그 범죄를 벌로써 갚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범죄자의 장래의 회개를 희망하시고 벌을 연기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회개할 기색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대에 대한 하느님의 벌을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51  아벨의 피를 비롯하여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참사한 즈가리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렇다, 너희에게 말하거니와, (피의 대가가) 이 세대에게 요구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 범죄에 대해 벌로 갚으시려고 하십니다. 여기엔 살해된 두 사람의 이름만 기록되었습니다. “아벨과 즈가리야”. 아벨은 인류의 첫 피살자요(창세4,8-10), 그것도 형제에 의해서 죽음을 당한 사람입니다. 사제이며 예언자였던 즈가리야는 유다 임금 요아스의 명령으로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살해되었고, “야훼께서 굽어보시고 갚으시리라”하고 외치며 숨졌습니다(역대기 하 24,20-23).


선조들의 잘못에 대한 벌이 후손들에게 요구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후손들도 선조들 못지 않게 그렇게 악하기 때문입니다. 선조들의 잘못을 통해서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했지만 선조들보다 더한 행동을 하는 그들에게 내려질 하느님의 자비는 바로 벌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서(벌)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52  불행하도다, 너희 율법학자들! 너희는 지식의 열쇠를 쥐고 있으나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마저 가로막았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를 책망하십니다. 그들은 자기네 율법 해석을 강요하고, 다른 모든 권위있는해석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조차 성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성서의 의미를 모르기에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의미를 모른다면 그렇게 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성서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면 남도 알려 줄 수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53  그리고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시자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은 몹시 (앙심을) 품고 그분께 여러 가지를 물으며 (답변을)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54  그분의 말에서 무언가 트집 잡으려고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초대받은 바리사이의 집에서 나오시자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욕을 먹었으니 어떻게 해서든지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틀린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니, 그렇다고 그들보다 예수님께서 못하신 것도 없으니 그들은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혹시 내 잘못에 대해서 다른 이에게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까? 어떻게 말했고, 나는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2. 성서나 교리를 공부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211.42.85.34 …: 너무 찔립니다….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지 않냐는 말씀….공부해야겠죠? [10/1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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