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그제 글을 올리면서 첨부물이 붙여지지 않아 본문으로 올려 봅니다.
† 오소서 성령님!
오늘 이 뜻 깊은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부족한 저를 당신 도구로 써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는 평신도들에게 「사도직의 사명」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깨닫게 하려고, 해마다 교회력으로 연중시기 마지막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럼 평신도란 무엇일까? 평신도란, 예수님에 의해, 선택된 백성으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들을 일컫습니다.
평신도들에게 맡겨진 「사도직의 사명」은 하느님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전하려면 우선 하느님이 누구신지, 하느님을 전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어떤 행동인지, 나름대로 답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전하는 일이 가능해 집니다.
우리 본당의 경우 쉬는 교우가 많다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쉬는 교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에서 기쁨보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 신앙생활을 짐스럽게 느끼고 있다면, 선뜻 신앙을 전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인생의 사슬로 느끼고 있다면, 신앙이 기쁨이라고 말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먼저 신앙생활을 기쁨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주님께서 확실히 「내 인생과 운명의 주인이란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게 일어나는, 온갖 사건과 만남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맡기는 생활입니다.」 「미래를 맡기고, 걱정을 맡기고, 불안과 십자가를 맡기는 것」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야 믿음의 응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맡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느님께 맡긴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만, 원래 그것은 하느님의 것이었고, 그분이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셨기에 내가 소유하고 있다.」 이렇게 믿고, 처신하는 것이 하느님께 맡기는 행위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평신도의 사명인 하느님을 전한다는 것은, 이러한 모습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보여 준다기 보다, 그러한 삶이 겉으로 드러나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평소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하느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나의 행동입니다. 우리가 기쁨과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최상의 평신도 사도직의 수행인 것」입니다.
평신도는 세상의 중심이며, 교회의 주인입니다.
평신도가 바로 설 때, 교회는 생명력 있게 빛을 발할 것입니다.
평신도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이끌어 줄 때, 신앙인들은 세상의 소금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나와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내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겸손해 진다고 합니다. 모든 일, 하느님께서 섬리 하시도록 내 뜻을 잠시 뒤로하는 마음가짐과 행동, 매사 내 뜻보다는 그분의 뜻, 그분이 일하시는 방식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이것이 평신도 사도직의 완전한 수행이란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능력에 알맞은 단란트를 맡기십니다. 잘 간직하고 활용해서 늘려 달라고 하십니다. 엉뚱한 생각으로, 엉뚱한 곳에 쓰지 말고, 나를 세상에 알리는데, 사랑을 실천하는데, 도구로 밑천으로 써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정림동 성당이 설립 12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외적인 성장은 했지만, 하느님 보시기에 부족함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지내면서 나의 현주소는 어디인지,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떠한지 (서먹한 관계는 아닌지),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돌아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 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능력의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지혜의 선물을 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루실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놓고 가끔씩 꺼내 되새김질 하렵니다.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12/09-2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