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설(Adoptianismus),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us) 양태설

 

단원론單原論

테르툴리아누스가 처음 사용한 단원론(Monarchianismus)이라는 개념은 일치된 신학체계나 학파를 나타내지 않는다. 단원론은 유다교에서 물려받은 유일신론을 바탕으로, 이교인의 다신론과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을 분리된 두 신성으로 나눌 위험이 있는 영지주의의 개념을 막으려는 의미에서 발생하였다. 단원론은 하느님을 엄격한 하나의 근원, 곧 유일하고 나눌 수 없는 만물의 근원으로 선포한 모든 경향을 의미한다. 단원론은 온건하고 정통신앙적 형태로 성부와 성자를 동일본질로 정의한 니체아 공의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단원론은 하느님의 일치를 엄격히 해석하고, 이로써 성부에 대한 성자의 자주성을 시인하지 않아 이단에 빠져버렸다.

이단적 단원론은 서로 다른 운동에서 형성되었다. 더러는 신학에 근거하여, 더러는 주요 대표자에 따라 그 명칭을 지니게 되었다. 신학적으로 분류할 경우 근본적으로 두 형태로 나뉜다.

1) 양자설(Adoptianismus): 양자설은 그리스도가 순수한 인간으로 태어나 성장하였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하느님의 일치를 보존하려 하였다. 그리스도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또는 부활한 뒤에야 공로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 아들로 받아들여졌다. 양자설은 2세기 비잔틴의 테오도투스라는 무두장이에게서 유래하며, 뒤에 사모사타의 바울로와 시르미움의 포티아누스가 물려받았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 성부사난설(Patripassianismus) 또는 양태설(Modalismus): 이 학설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을,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신 것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이 학설은 성부 자신이 성자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수난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단원론은 2세기 말 스미르나의 노에투스가 로마에 전파했으며, 히폴리투스는 이에 학문적으로 대응하였다. 사벨리우스는 로마에서 이 학설을 받아들여 3세기에 북아프리카에 널리 알렸다. 이에 대응하여 테르툴리아누스는 교부시대의 삼위일체에 관한 최초의 기초 작품인 「프락세아스 논박」을 저술하였다. 이 학설은 4세기 소아시아 안치라의 마르첼루스의 신학에서도 나타난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ata2020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양자설(Adoptianismus), 성부수난설(Patripassianismus) 양태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단원론單原論

    테르툴리아누스가 처음 사용한 단원론(Monarchianismus)이라는 개념은 일치된 신학체계나 학파를 나타내지 않는다. 단원론은 유다교에서 물려받은 유일신론을 바탕으로, 이교인의 다신론과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을 분리된 두 신성으로 나눌 위험이 있는 영지주의의 개념을 막으려는 의미에서 발생하였다. 단원론은 하느님을 엄격한 하나의 근원, 곧 유일하고 나눌 수 없는 만물의 근원으로 선포한 모든 경향을 의미한다. 단원론은 온건하고 정통신앙적 형태로 성부와 성자를 동일본질로 정의한 니체아 공의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단원론은 하느님의 일치를 엄격히 해석하고, 이로써 성부에 대한 성자의 자주성을 시인하지 않아 이단에 빠져버렸다.

    이단적 단원론은 서로 다른 운동에서 형성되었다. 더러는 신학에 근거하여, 더러는 주요 대표자에 따라 그 명칭을 지니게 되었다. 신학적으로 분류할 경우 근본적으로 두 형태로 나뉜다.

    1) 양자설(Adoptianismus): 양자설은 그리스도가 순수한 인간으로 태어나 성장하였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하느님의 일치를 보존하려 하였다. 그리스도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을 때 또는 부활한 뒤에야 공로 때문에 하느님 아버지에 의해 아들로 받아들여졌다. 양자설은 2세기 비잔틴의 테오도투스라는 무두장이에게서 유래하며, 뒤에 사모사타의 바울로와 시르미움의 포티아누스가 물려받았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2) 성부사난설(Patripassianismus) 또는 양태설(Modalismus): 이 학설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을,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신 것으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이 학설은 성부 자신이 성자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수난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단원론은 2세기 말 스미르나의 노에투스가 로마에 전파했으며, 히폴리투스는 이에 학문적으로 대응하였다. 사벨리우스는 로마에서 이 학설을 받아들여 3세기에 북아프리카에 널리 알렸다. 이에 대응하여 테르툴리아누스는 교부시대의 삼위일체에 관한 최초의 기초 작품인 「프락세아스 논박」을 저술하였다. 이 학설은 4세기 소아시아 안치라의 마르첼루스의 신학에서도 나타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