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욕망은 죽음을 부르고

 

정순왕후는 아버지 김한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 너무도 오랜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저희 가문도 다시 세상의 중심으로 나가게 되었사옵니다. 이제는 두려움 없는 궁궐생활을 하게 되었사옵니다. 세상을 흔들면서 살 수 있게 되었사옵니다.”….




정순왕후. 그녀는 지난 20여년 간을 가슴 조이며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의 왕위계승을 방해했던 대가를 처절하게 치뤄야만 했다. 정조의 등극 후 정조의 신임을 받은 홍국영에 의해 그녀의 인척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고, 오라비 김귀주도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이렇게 그녀의 가문은 권력에서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랬으니 정순왕후는 정조가 미울 수밖에 없었고, 왕과의 관계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비마마! 옛부터 왕이 어린 나이로 즉위했을 때에는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았습니다. 이제 세자 공이 보위에 오르시면 마마께서 이 나라를 돌보셔야 하옵니다. 또한 수렴청정은 내외에 공포하는 것이 원칙이오니 교지를 내리시어 공포하소서.“




아버지 김한구의 말에 정순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야겠지요. 이제는 제가 세상을 다스릴 것이옵니다.“




“마마! 또한 이제는 정적 시파에 밀려서 빛을 보지 못한 경주 김씨와 벽파 세력을 중용하실 때라 생각되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고통을 주었던 그들에게도 우리가 받은 만큼 돌려주어야 하옵니다.”




아버지 김한구의 말에 정순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꼬옥 쥐었다.


  정조가 승하한 후 11살의 어린 나이의 순조가 즉위하였다. 그녀는 순조의 즉위 후 교지를 내렸다.




“선왕이 급작스럽게 승하하심에 어린 세자가 보위에 올랐으니, 왕실의 법도에 따라 왕이 국사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 수렴청정을 하겠노라. 경들은 어린 왕을 모시는데 있어서 선왕의 예에 떨어짐없도록 하라. 또한 영안부원군 김조순에게는 총융청의 전권을 주노니 영안부원군 김조순은 도성의 경비는 물론 도성 외곽과 경기 일대의 경비를 강화하여 왕의 경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이제 세상을 호령하는 정순왕후는 우선 친정 6촌오빠인 김관주를 이조참판직에 앉히고 벽파들을 대거 등용하였다. 그러나 아직 반대파들을 향해 칼을 뽑을 수는 없었다. 왕이 죽었을 경우 보통 국장기간이 6개월이었고, 이때는 백성들 또한 상복을 입고 왕의 죽음을 대도하는 기간이였기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감행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6개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굳건히 할 방안을 세웠다. 대 살육의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순조 즉위년 12월 18일, 국장의 기간이 끝나면서 정순왕후는 사도세자에 대한 처분에 있어서 벽파의 의리가 정당했음을 강경하게 천명하였다.




정순왕후는 조정대신들 앞에서 힘주어 말했다.




“사도세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너무나도 포악했기에 이 나라 종묘사직을 짊어지고 나갈 수 없었소이다. 그래서 상왕은 종묘사직을 위하여 부득이 사도세자를 폐할 수밖에 없었고, 벽파 또한 가슴은 아프지만 임금의 뜻에 순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오. 그러나 시파는 조정의 안녕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도세자를 옹호하였소이다. 이는 소인배무리나 하는 짓으로써 어찌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나라의 일을 생각해야지 사사로이 개인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단 말이오. 사사로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던 무리는 엄벌에 처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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