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뜻이라면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고뇌 섞인 말을 묵묵하게 듣고 있던 주문모 신부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우구스티노 형제. 그런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 같습니다. 뺨을 때리는 이들에게 얼굴을 돌리지 아니하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이들을 위해서도 아버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셨지요. 그분께서는 사랑을 주셨지만 그분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그분께 십자가를 지워 드렸지요. 하지만 그분께서는 그것마저도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으니 우리도 그리 해야겠지요.”




“신부님! 저는 한동안 집을 떠나 시골 친구 집에나 내려갔다 올까 합니다.”




“요한 회장도 요즘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까?




주문모 신부의 이 말에 최창현 요한은




“신부님! 제가 하고 있는 약방에 드나드는 사람 중 제가 천주교 신자인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박해령이 내린 요 며칠 사이 저희 약방에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가난해서 돈을 내지 않고도 약을 받아가던 사람들까지도 혹시 자신들이 천주교 신자로 몰릴까봐 꺼려하고 있는 듯 합니다.“




최창현 요한! 그는 중인의 신분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학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슬기롭고 성품이 온화하여 많은 이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가 하느님을 믿게 된 것은 이 벽, 정약종 등과 어울리면서부터였다. 함께 학문을 연구하다가 천주교에 뜻을 품게 되어, 이 벽(세자요한)의 인도로 마침내 신앙에 입문하게 되었다. 최창현 요한은 그의 신분이 중인이었고 그의 집이 약방이었기에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또 그들과 친분을 맺으며, 그들에게 신앙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신앙뿐만 아니라 책을 베끼는 일을 매우 잘하였다. 그래서 많은 교리서들을 필사하여 신자들 사이에 유포시킴으로서 신앙을 전파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최창현 요한의 말을 듣고 있던 강 골롬바는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주문모 신부에게 말했다.




”신부님! 한양에서 요한 회장님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발길을 끊었다 함은 조만간 포졸들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옵니다. 요한 회장님은 잠시 피해 계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요한 형제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이 있으니 몸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요한 형제가 가 있는 곳도 신앙이 심어지겠군요. 요한 형제님의 삶을 보고서 천주님을 믿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거 박해 때문에 우리의 전교가 더 빨라지겠는걸요. 허허허…”




그렇다. 최창현 요한의 피신은 그가 배교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기에 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최창현 요한은 괴로웠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결국 나 자신의 신앙이 약하기에 박해자들을 피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번뇌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마음을 읽은 주문모 신부는 그것이 신앙이 약해서가 아님을 말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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