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그녀의 사랑!

 

마리아! 그녀의 사랑!




아낌없이 주는 사람들. 자신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들. 참으로 멋진 사랑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그렇게 예수님께 사랑을 드립니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바로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고, 그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유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마리아와 유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머무시는지 정확하게는 나오지 않지만(마태오(26,6)와 마르코(14,3)에 따르면 이 만찬회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베풀어졌다고 함) 라자로의 고장이었고, 라자로도 초대를 받아서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당시의 풍습에는 머리에 한 두 방울 향유를 붓는 풍습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향유를 모두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이 행동은 가장 비천한 사람임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덥고 건조한 기후에서 살았던 유다인들은 특히 목욕 후에 올리브 기름을 몸에 발라서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부자들은 향수 전문업자가 만든 향내 나는 기름을 사용하였습니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그런데 이 행동을 보고 유다가 불평을 합니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유다가 본색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삼백 데나리온이라는 말은 유다가 은전 삼십 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을 다시금 기억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핑계로 유다는 자신의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위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아 가지고 거기 들어 있는 것을 늘 꺼내 쓰곤 하였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그런데 발에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죽은 사람에게만 하는 것인데, 시체를 씻은 후에 온몸에다 기름을 발랐습니다. 향기로운 기름은 시체에서 풍기는 좋지 않는 냄새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기름부음은 이미 하나의 장례 예식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유혹에 넘어간 유다의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참견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유다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고 죽었던 오빠 라자로를 살려 주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 그런 마음들이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유다는 딴 마음을 먹고 있기에 마리아의 일이 곱게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들었습니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과 죽었다가 살아난 라자로를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몰려가고 있는 군중들 속에 내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뵙고 싶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죽었던 라자로를 보고 싶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칼을 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라자로는 예수님의 증인입니다. 죽었던 그를 살려주셨다고 증언할 사람은 바로 라자로입니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라자로가 자신을 일으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세상에 증언한다면 지도자들은 더 큰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완전범죄를 노리고 있는 지도자들.


결국 죄는 죄를 낫게 되는 것을 이들의 모습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내 허물을 덮으려고 또 다른 허물을 만들고 있으니, 그래서 가끔은 인정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것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이 옳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마리아의 행동과 유다의 행동에 대해서 느낀 대로 나눠 봅시다.




2. 백성의 지도자들은 이제 예수님뿐만 아니라 라자로 까지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가 내 죄를 덮기 위해서 남에게 해를 끼쳤던 적은 없습니까?




3. 성주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자신의 결심을 함께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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