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중풍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시며 아버지가 아이를 어루만지듯이 그렇게 중풍으로 고생하는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하지만 그런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1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어 호수를 건너 당신께서 사시는 고을로 가셨다.


가다라 지방(게사라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 둘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면서 돼지들이 호수에 빠져 죽자 사람들은 예수님께 자기네 고장에서 떠나가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떠나보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호수를 건너 당신의 일을 하러 떠나십니다.




2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서 예수님께로 데려 왔습니다. 중풍 걸린 사람의 가족인지 아니면 친구들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중풍에 걸린 병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중풍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는 그를 치유해 주실 수 있다고 믿고서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에게 힘을 주시고, 치유해 주십니다.




 병자의 치유와 죄의 용서는 서로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사고방식에는 인과적 연관성이 있는데, 그들은 위중한 병을 “죄의 결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의 말씀을 하실 때,맨 먼저 악의 보다 깊은 뿌리가 제거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질환으로부터의 해방은 치유의 완성을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다는 증거를 의미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유대의 사고방식, 즉 “큰 것으로부터 작은 것에로”라는 법칙에서 나온 결론에 따라 시도됩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중풍병자를 고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다면 죄의 용서는 말할 것이 못된다는 것입니다.




3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불신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엄청난 모욕을 하느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하여 “이 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인간이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에 악한 생각을 품느냐?” 그 악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①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죄의 용서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② 중풍병자의 동료들은 그를 들것에 들고 예수님께로 와서 믿음을 보였는데, 율법학자들은 그 중풍병자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이들의 아품을 외면하는 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신에 가득 찬 율법학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사실 둘 다 어렵습니다. 그런데 “죄를 용서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울 수 있습니다. 용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것은 그가 일어나 걸어가야 하기에 즉시 표시가 납니다. 사실 쉬운 것은 “일어나 걸어가라”이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중풍병자에게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을 위해서는 한 말씀 더 하셔야만 되었습니다. 죄의 용서의 권한이 당신에게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6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런 다음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즉 죄를 용서 받아야 만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가 일어나 평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죄를 용서받은 것이 증명 됩니다.




7 그러자 그는 일어나 집으로 갔다.


그러자 그 중풍병자는 일어나 집으로 갔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 치유 받은 중풍병자 옆에서 똥 씹은 얼굴로 인상 쓰고 있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보여 지는 것 같습니다. 인상쓰는 사람들 옆을 기쁨에 찬 얼굴로 지나가는 사람들. 치유받은 중풍병자와 그리고 그를 평상에 뉘워서 그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온 사람들. 얼마나 기쁠까요? 하지만 그 기쁨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이 불행 아니겠습니까?




8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중풍병자를 치유하신 예수님. 사람들은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권한을 보고, 그리고 그 권한으로 병자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죄를 없애주시는 분이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로 향합시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가는 사람들과 평상에 누워서 그들의 손에 들려가는 중풍병자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서, 내가 내 주변에 내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2. 치유 받았을 때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내가 예수님께 치유받고 싶은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