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연(야고보)

 

  권상연(야고보)은 본래 경상도 안동 지방 출신으로, 비록 지체 높은 양반은 아니었을지라도 친척 중에는 유명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 후 집안이 충남 공주로 이사하여 살았으나 야고보의 부모님들은 전라도 진산에서 정착한 듯하다. 여기에서 일찍 부모님을 여윈 야고보는 고종 사촌인 윤지충(바오로)과 이웃하여 살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장하면서 그는 유교적인 학문과 윤리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바오로에게서 천주교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배우고부터는 즉시 이에 입교하여 교리를 충실히 실천하기 시작하였다. 1791년 바오로의 어머니이자 그의 고모인 권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바오로와 함께 아무런 제사의 예도 하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만 슬픔을 다하였다. 친척과 친구들의 비난과 욕설이 빗발치고 이웃들로부터도 모욕을 당했으나 누구도 그의 마음을 꺾을 수는 없었다. 체포령이 내려지기 전 야고보는 재앙을 피하여 무주라는 고을에 가 있었다. 그러나 바오로의 삼촌이 대신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곧 진산 관아로 올라가 자수하였다.


  1791년 10월 28일 야고보는 옥중에서 바오로와 만나게 되었으며, 이후 순교하기까지 함께 생활하였다. 이 때부터 그들이 당한 신문과 고통의 기록은 바오로의 수기에 잘 나타나 있다. 진산 군수는 야고보를 크게 꾸짖은 후에 ꡒ너는 네 모든 친척들에게 그 천주교라는 미신을 퍼뜨렸느냐?ꡓ고 물었다. 그가 침묵을 지키고 있자, 군수는 그를 바오로와 함께 전주의 감영으로 보낼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29일 새벽에 떠난 야고보 일행은 낮 동안 걸어서 밤이 되어서야 감영에 도착하였다. 밤이 너무 늦었으므로 그들은 중군 아문(中軍衙門)의 옥에 일단 갇혔다가 이튿날 새벽에 감영의 옥으로 이송되었다. 감사는 그들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며, 이에 왕명으로 조사를 할 것이니 자세히 대답하라고 소리쳤다.


  ꡒ참된 길을 따르지 않고 허황된 말을 어리석게 믿는 너희들은 세상을 미혹하게 하고 백성을 타락하게 하며 오륜(五倫)을 파괴하고 왜곡한다. 그런즉 너희들이 어떤 책을 배우며 누구와 함께 배우는지를 말하라. 엄한 금령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감히 크게 방종한 사상을 따르며, 더욱더 어리석은 것은 이론에 실천을 더하는 일이니 그것은 큰 불충이다. 그러나 그 죄는 비교적 가벼운 것이리라. 임금님의 전교(傳敎)에는 너희들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너희들은 신주를 불사르고 문상객들을 집에 들이지도 않았다. 또한 부모님의 장례도 지내지 않고, 그러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행동은 짐승이나 할 짓이다. 너희 책들을 바치고 동교인(同敎人)들을 대라. 너희들 가운데 비밀히 종교를 전파하는 신부가 있는데, 너희가 그들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 아무것도 숨기지 말고 모든 것을 말하라.ꡓ


  바오로가 사실이 그렇지 않고, 또 자신은 같은 교인이나 신부를 알지 못한다고 하자, 감사는 이번에는 야고보 쪽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ꡒ너는 어떤 책을 배웠느냐?ꡓ     


  ꡒ「천주실의(天主實義)」라는 책과 칠극(七克)을 다룬 책을 배웠습니다.ꡓ


  ꡒ그 책은 어디에서 났느냐?ꡓ


  ꡒ그것을 빌려 온 제 사촌 윤지충에게서 얻어 읽었습니다.ꡓ


  ꡒ너도 그 책을 베꼈느냐?ꡓ


  ꡒ베끼지 않았습니다.ꡓ


  ꡒ너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느냐?ꡓ


  ꡒ안 지냈습니다.ꡓ


  ꡒ서울에 있는 네 친척 중의 한 사람이 네가 신주를 불살랐다는 소문을 퍼뜨렸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ꡓ


  ꡒ제가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된 뒤로 친척들은 저를 원수처럼 여기고 ‘저 놈은 틀림없이 신주를 불사를 거야’하고 말하며 저를 나무랐습니다. 이 비난하는 말이 퍼지면서 풍문이 되었고, 이렇게 해서 제가 신부를 불살랐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입니다.ꡓ라고 야고보는 대답하였다.


  11월 1일 새벽 진산 군수가 그들을 불러 십계와 칠극을 외우라고 하여 그것을 외웠더니, 그는 이를 써서 감사에게 보냈다. 잠시 후 군수는 그들을 불러 몇 마디 권고하고 나서 말하였다.


  ꡒ천주교의 십계에는 왕과 신민의 관계가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임금이 없다거나, 아니면 임금을 업신여기는 도리인 것이다.ꡓ


  야고보와 바오로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ꡒ그렇지 않습니다. 임금님은 온 나라의 어버이시고 관장은 그 고을의 어버이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에게는 충성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십계 중 제4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ꡓ 


  ꡒ그렇다면 제4계에 그런 뜻의 주(註)를 달아 놓아야 할 것입니다. 서양 사람들의 교(敎)는 우리 눈으로 볼 때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들이 그 교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을 따르고, 또 그 교가 부모와 임금을 무시하는 불도와 같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따른다면, 어찌하여 신주를 모시지 않고 부모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느나? 음식을 바치지 않는다하더라도 너희 효성을 드러내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겠느냐? 이 모든 것을 자세히 지적하고, 또 너희가 진술할 때에 임금께 대한 충성과 효성의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목숨을 보존할 방도를 찾아 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ꡓ라고 유순하게 말하였다. 이에 대한 답으로 야고보는 공술서(供述書)를 써서 바쳤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ꡒ저는 윤지충의 친척으로서 그의 외종 사촌이 되고 그 집 근처에 살았으므로, 그에게서 「천주실의」와 「칠극」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보고 빌려 왔습니다. 그것은 여러해 전의 일로 윤지충이 그 책들을 불사르거나 물로 지우기 전의 일이었으며, 저는 그것을 베끼지 않고 읽기만 하였습니다. 제가 제사 지내기를 그만 둔 것은 사실이나 신주를 불사르지도 부수지도 않아서 그 주독(신주를 모시는 독)들이 아직 제 집에 있습니다. 진산 군수가 만든 목록에 모든 것을 기록하였으므로, 이 이상 그 말을 하는 것은 무익합니다. 제가 천주교를 신봉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모든 친척들이 악감을 가지고 저를 보았고 갖가지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된 것을 보고 그들은 한결같이 ‘그가 이제는 제사를 올리지 않게 되었으니 신주가 쓸데없이 되었고, 필경은 그것을 불사르고야 말 것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무턱대고 한 이 말에 각자가 또 말을 보태서 사방에 퍼뜨렸고, 그래서 제가 옥에 갇힌 몸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서 부모를 잃었으므로 제가 천주교를 신봉하게 된 뒤로 제 부모의 장례를 지낼 일이 없었습니다. 이 밖에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윤지충이 말한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더이상 진술할 것이 없습니다.ꡓ


  다만, 이 공술에서는 그가 신주를 불사르지도 부수지도 않았다고 하였으나 감사의 마지막 신문에 그는 ꡒ사실 신주는 집에 없습니다. 땅에 묻었으니까요ꡓ라고 하여 신주를 집안에 모셔 두지 않고 땅에 묻은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야고보가 바오로와 함께 신문을 받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이 윤리를 파괴했다고 하여 사형에 처해야 된다는 상소와 청원은 계속되었다. 이리하여 채제공 정승과 정조는 마침내 그들을 참수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왕의 재가를 받은 명령은 곧 전라도 감사에게 전달되었으며, 감사는 이를 시행하기 위하여 그들을 옥에서 끌어내어 형장으로 데리고 갔다.


  매를 맞아 쇠약해진 야고보는 이따금씩 예수, 마리아의 이름만 부르고 있었다. 형장에 이르자, 관리는 마지막으로 배교를 강요하고 국왕에게 복종하며, 조상의 신주를 공경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야고보는 계속하여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며 순교하기를 원하였다. 마침내 망나니의 칼날이 그의 목을 쳐서 순교에 이르게 하니, 때는 1791년 12월 7일이었으며 그의 나이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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