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변질되었을 수 있습니다. 행복을 향한 발걸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불행을 향한 발걸음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슬퍼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가련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주시면서 그들을 격려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하느님께 희망을 걸 때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편이 되시는지를 역사를 통해 체험하였습니다(이사야 49,13).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바로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게 더 귀를 기울이십니다(시편86,1).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너무나 궁핍하여 슬퍼함 등은 인간을 짓누르는 환경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축복하십니다.


먼저 예수님이 말한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프고 짓밟히는 사람들입니다. 즉 종이 주인한테 대들면 맞아 죽던지 팔리던지 이런 상황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고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루가 복음사가도 전해주다 보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예수님 시대와 상황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루가 복음사가는 마태오 복음사가와는 달리 뜻이 안통해도 그대로 전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루가 복음사가도 지금이란 말을 집어넣어 설명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장차 행복해 질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미래를 내다보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앞에 있는 사람들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진복선언의 예수님 말씀의 원형은 루가 복음에서 지금만 빼놓으면 예수님 말씀 그대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로 고백했기에 제자들은 박해를 당했고, 회당에서 쫓겨났으며, 모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을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작은 시련을 통해서 막혀 버리는 것은 워치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기쁜 소식을 전했기에 지금 나 또한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시련은 있다 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힘차게 헤쳐 나아갈 때, 그래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는 그 동안의 모든 어려움을 깨끗하게 씻어 주시고 큰 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박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빛으로 자신의 어두움이 들어 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박해 속에서도 말씀을 전했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 해야 합니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구원을 선포하는 말씀에 이어 경고의 말씀이 뒤따릅니다. 즉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이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행 선언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의 설교(이사야 5,8-23)를 다시금 드러내십니다. 불행 선언은 마지막 날의 심판의 형벌과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불행 선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려 회개하도록 하는 경고의 외침입니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부유한 이들, 배부른 이들, 그리고 웃는 이들은 이 세상의 재화를 소유하여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이를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완전한 가치 전도가 일어납니다. 그들은 자기 삶의 확고한 기반을 하느님에게서가 아니라 자신의 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확고한 기반은 자신의 부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유한 이들은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기에 폐쇄적이며 파멸의 길을 가는 이들입니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은 예언자들의 길을 따릅니다. 그들은 동족들로부터 박해와 배척을 받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거짓 예언자들을 따를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대중과 영합하였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화해하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반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어떠했습니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과 멸망에 이를 수 있는 길은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까? 불행한 사람입니까?




2.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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