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


누가 있어 이 슬픔을 위로할 것이며, 누가 있어 이 아픔을 알아주리오. 어머니 앞에서 죽음을 보여야만 하는 아들의 마음을,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되는 아들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가 있어 어머니와 아들의 슬픔을 알아주리오.




25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을 사랑한 사람들 중에 용기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지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분과 함께 하는 것. 어떠한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여인들의 모습 안에서 참다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어떤 처지에 있던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상황이 어려움에 처하게 될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계신 성모님. 성모님의 고통은 그렇게 엄청나게 컸습니다.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보통 성모칠고를 생각합니다. 그 하나는 시메온이 예고한 성모님의 고통입니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두 번째 고통은 이집트로의 피난입니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헤로데를 피해서 이집트까지 피난을 가야한다는 것.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럽겠지만 마음은 더욱 아프셨을 것입니다. 무죄한 어린이들의 학살까지도 보아야 했고, 갓난아기이신 예수님이 먼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고통은 파스카 축제 때 예루살렘에서 어린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사흘을 찾아 헤매실 때의 성모님의 고통입니다.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1-48)




네 번째 고통은 예수님께서 붙잡히셔서 매 맞고 가시관 쓰실 때 그것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성모님의 고통입니다.




다섯 번째 고통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의 고통입니다. 망치소리가 울릴 때 성모님의 가슴은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찢어지셨을 것입니다.




여섯 번째 고통은 아들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아들의 고통 앞에서 울 수도 없었던 어머니.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어머니, 마지막으로 자신을 요한 사도에게 맡기시고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 그 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부둥켜안고 울고 계시는 성모님.


피에타 (pieta)상에서 우리는 성모님의 처절한 고통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피에타란 이탈리아어로 “경건한 마음 또는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뜻으로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무릎에 안은 구도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다비드상“, “모세상“과 더불어 그의 3대 작품 중 하나라 합니다.




성모님의 일곱 번째 고통은 예수님을 무덤에 안장하심에 있습니다.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이제 무덤에 묻히시는 예수님. 성모님의 마음도 그렇게 어두운 무덤 속으로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이렇듯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서 나 또한 나에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27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마지막 유언.” 서서히 죽음의 고비에 다다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아래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기십니다. 이제부터 요한은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게 됩니다.


탈출기 30장 12절을 보면 아들은 어머니를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이상 이 책임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제자를 자신의 형제로 지명하면서 그 의무를 떠맡기는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여인의 남자 친척은 여인을 항상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그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아래에서의 요한 사도는 우리 모두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사도 요한의 어머니가 되신 것처럼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시고, 어머니께서 요한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렇게 어머니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언제부터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을까요? 십자가 아래에서 비롯되었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거룩한 동정녀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 그 순간부터 벌써 구원받아야  할 인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골고타(해골산)에서 성모님께 온 인류가 위탁된 것은, 이미 그러했던 사실에 대한 장엄한 확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요한사도께서 어머니를 공경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성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숨죽이시며 한생을 살아오신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받들어 공경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길을 걷고, 예수님의 일을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성모님의 눈에서 눈물을 가시게 하고, 성모님의 가슴에서 슬픔을 몰아내고 기쁨을 담아 드릴 것입니다.




3.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성모님의 생애를 생각해 보면서 언제가 힘이 드셨고, 또 언제가 가장 행복했었는지를 이야기해 봅시다.




2.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게 하십니다. 나는 성모님을 어떻게 공경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지난 묵상 보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