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필주는 1774년 충청도 덕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기 한국교회의 여신도 회장인 강완숙 골룸바가 후처로 결혼한 홍지영의 전실 소생 아들이다. 그는 ꡒ본래 성품이 착해서 어머니를 따라 입교하였는데ꡓ처음에는 별로 신앙 생활에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홍필주는 언제나 친어머니처럼 모시는 강완숙을 따라 한양에 올라온 후에 자기 집에 주문모 신부를 모시면서 주위의 교우들이 감탄할 정도로 열성적 신자로 변했다. 그는 매일 미사에 복사하면서, 주문모 신부의 손발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의 어머니 만큼이나 신부를 위해 헌신하였다.
1801년 1월 10일(음력)에 조선 왕조의 정부 당국이 천주교를 사교로 정죄하여 엄금하고 신자들을 체포할 때에 그도 어머니와 함께 같은 해 2월 24일(음력)에 연행되어 문초를 받았다. 그는 취조 중에 특히 주문모 신부의 행방에 대해 갖은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 신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어머니처럼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홍필주는 처음에는 모든 어려운 고통을 잘 견디어 냈으나 점차로 마음이 나약하여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 때에 이러한 마음의 동요를 전해 들은 강완숙은 어느 날 문초 받으러 가는 도중에, 그의 아들을 멀리서 보면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ꡒ예수께서 네 머리 위에서 너를 보고 계시다. 네가 그와 같이 눈이 어두워 스스로 멸망할 수 있느냐. 내 아들아 용기를 내고 천당복을 생각하여라.ꡓ그의 어머니의 격려를 받은 홍필주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신앙의 증거자가 되었다. 그는 8월 27일(음력)에 참수형을 선고 받고, 한양의 서소문 밖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순교의 영광을 받았다.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