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과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겸손과 마리아와 요셉의 의로움

 

제1과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겸손과 마리아와 요셉의 의로움

1. 말씀읽기: 루카 1,26-38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성모님의 믿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것은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앞당겨 입으시고 은총에 충만한 분으로 지극히 높은 성덕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께 은총이 충만하신 분,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뻐하여라.”라는 것은 기쁨을 청하는 그리이스인의 인사입니다. 소아시아 사람은 살렘, 히브리말로는 샬롬이라고 하며 평화를 청했고, 라틴 사람은 건강을 묻는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마음속에 어떠한 피조물보다 뛰어나게 완전히 깃드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그 누구보다도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는 성모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천사는 먼저 성모님을 안심시킵니다. 성모님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라고 전해줍니다. 총애를 받았다는 것은 마리아가 하느님 마음에 드셨다는 것입니다. 총애는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즐겨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늘 하느님께 기도하였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청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예수”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하느님께 늘 기도드렸고, 그 기도의 내용은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총애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천사에게 반문합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이지만 아직 요셉을 알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말씀 안에서 그녀가 동정녀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아직 완전히 순결한 처녀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로 계속 살고 싶으며 따라서 어머니가 될 수 없고, 또 그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하는 결심이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실 만일 마리아가 요셉과 혼인하여 평범한 가정생활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기가 태어나리란 말을 들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처녀로 한평생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기도하고 있었으므로, 이 처녀와 어머니로서의 구실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를 겸손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요셉과 약혼을 했을까요? 그것은 부모의 의향을 따르려 했다든가, 관습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던가, 요셉과 같은 사람과 맺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청혼을 피할 수 있고, 안심하고 자기 결심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그 당시 유다인에게 있어서 처녀로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평범한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에쎄네파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고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깁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이 종은 곧 노예란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주인은 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몸은 말씀이 강생하셨고, 그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믿음과 승낙을 통해서 예수님의 어머니로 삼으시고, 그녀를 온 인류의 구속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겸손한 믿음과 순종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성모님을 본받아 주님께 겸손한 믿음과 순종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3. 요셉 성인의 의로움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녀가 아이를 가진 것은 유다법으로 볼 때 간음한 것이었고, 간음한 여인들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유다법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도 적자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법은 명백히 약혼과 결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정식 결혼은 신부를 자기 집에 맞아들이고, 함께 산 때부터 성립되었습니다(신명기 20,7).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 했을 때는 저마다 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 약혼자는 혼인에 있어서 엄밀한 뜻의 결혼한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➀부정을 저지른 약혼자는 부정을 저지른 아내처럼 돌로 쳐 죽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➁약혼자를 잃은 여자는 과부와 똑같이 여겼다.

➂약혼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혼장을 써 주어야 했다.

➃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은 적자로 보았다.



 이제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요셉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일단 법대로 회당에 고발하여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도록 했을까요? 만일 내 아내가 될 사람이 그랬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요셉성인은 성모님을 나자렛의 회당에 고발하든가, 아니면 두 증인을 세우고 이혼장을 써 주고 인연을 끊든가,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에 고발하면 그녀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될 것이고, 또 마리아의 명예가 더럽혀 지는 것은 물론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어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마리아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성인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파혼하겠다는 결심을 하자, 하느님께서 급해지셨나 봅니다. 즉시 개입하십니다. 천사는 그에게 엄숙히 “다윗의 자손 요셉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예로운 호칭을 받은 또 하나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인간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임을 요셉에게 설명을 하십니다. 요셉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다른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요셉은 천사의 계시를 듣고서 즉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 아내의 그 남편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요셉은 단순하게 그리고 주저함 없이 그가 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신앙인의 모습이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의로운 사람이란 항상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은 지혜롭고 친절하며, 그의 성숙한 인간성이 하느님의 계획과 잘 융화되어 빛을 발합니다. 의인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조사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마리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의 아이를 가진 상황인데, 내가 그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요셉성인이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는지 요셉 성인의 의로움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우리 모두 요셉 성인처럼 사랑합시다.



4. 족보의 의미

 당시 사람들이 이 족보를 읽으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을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참 자유를 주시러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란 말로써 구약시대를 통하여 모든 유다인의 조상들과 왕에게, 그리고 예언자의 말을 통하여 비추어 주었던 초자연적 빛이 “예수님”께 집중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괴로움의 바다인 인생 항로를 걸어 온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것은 그 괴로움의 바다에서 구해 주실 구세주의 오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이 구세주는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그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족보는 14대씩 세 시대로 (성조의 시대, 왕의 시대, 사제의 시대)나눠서 전해지고 있는데, 14란 숫자가 히브리인이 “거룩하고 완전한 수”라고 보고 있던 7의 배수이고,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14대이므로 그것을 모델로 삼아 다른 시대도 14대로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성조의 시대, 왕의 시대, 사제의 시대로 구분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때가 차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족보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족보에 등장하는 타마르, 라합, 룻, 바세바는 정숙하거나 거룩한 여인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인생을 개척하였고, 그렇게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구원역사를 이루심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내 삶 또한 구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도구로 써 주실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 손길을 펼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5. 강생의 의미

①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

이와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 그리고 하느님의 독생 성자가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강생의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 되는 교리입니다.

세상 창조의 그 먼 순간,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벌써 말씀이 계셨습니다.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서의 그리스도 찬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1,17)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하느님과 말씀의 위격적 일치와 결속관계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공생활을 하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늘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늘 기도하셨고, 성령께서도 늘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하느님이십니다. 이것은 말씀의 신적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계시기에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육화(인간의 몸을 취하신)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지상 활동은 바로 이 본성에 근거합니다.



② 구원을 위한 강생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 14)는 사도 요한의 증언을 따라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일을 “강생” 또는 육화라고 표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피2,6-7)

 그렇다면 왜 말씀이 사람이 되셨는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한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나이다.”



또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1요한 4, 10).

둘째,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요한 3, 16).

셋째, 우리에게 거룩한 표양이 되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 29).

넷째,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 4)하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과 같이 거룩한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을 취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유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전능하신 분인데 구태여 인간이 되지 않고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들처럼 결코 이해타산 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역사 안에 직접 개입하심으로써 그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이렇게 무조건적이며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분의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무슨 낯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어떻게 아버지 앞에 서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③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한없는 겸손과 사랑을 묵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 중의 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죄 많은 인간의 모습”(로마 8, 3)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나약함과 미천한 신분을 함께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들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의 겸손과 사랑을 본받아 나 또한 그렇게 겸손하게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과 함께 하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6. 동방박사의 경배(마태 2,1-12)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성탄 대축일입니다. 곧 성탄을 대외적으로 공적으로 알리는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이 축일을 지냅니다. 주님께서는 탄생하신 뒤 사람들에게 점차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목동들, 동방의 세 박사들로 시작하여 성전에 머무는 의인 시메온과 한나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시라는 사실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민족 전체에게 차츰차츰 전해지게 됩니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분을 경배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동방 박사들은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파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며 아마도 별의 운행과 출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바빌론 사제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별의 기이한 현상 때문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새로 태어난 아기 왕의  별을 “그분의 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대 동양의 믿음에 따르면, 별들의 움직임과 인간의 운명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틈없는 조사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동방박사들이 보았던 그 별이 어떤 성좌 혹은 어떤 혜성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은 전혀 기적적인 현상이었는지 등등 그 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천 년 전의 별의 위치를 추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떤 천문학자들은 이 천 년 전에 태양계의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섰다는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들과 우주의 하느님께서 보내신 징표라고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현상의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의 본질적인 목적과 대상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마구간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들은 복됩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구간의 주인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나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그 이면에 있는 깊이 있는 가치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임금의 상징으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선물로 드림으로써 예수님께서 세상의 임금이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향을 피운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유향처럼 감미로운 향기를 뿜고 백합처럼 꽃피어 향내를 풍기어라. 찬미의 노래로 주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여라\”(집회 39,14). 향의 연기가 위로 피어오르듯 우리들의 기도도 하느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  기도와 찬미를 바치는 마음으로 유향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몰약은 향기와 쓴맛이 있어 옛날부터 향료 또는 의약으로도 쓰이고 아울러 시체의 방부제로도 쓰여 왔습니다.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 쯤 가지고 왔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요한19,39-40)고 하였습니다.구약시대에는 사제나 왕에게 부어주는 기름에 몰약을 넣었습니다(탈출기30,23-25). 또 몰약은 \’메시아와 왕의 특별한 향기\’로 통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선물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며,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실천사항

① 성모님의 믿음과 요셉성인의 의로움을 본받아야 합니다.

②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심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나를 낮추어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③ 또 하나의 동방박사가 되어 예수님께 마음담긴 선물을 드리는 내가 됩시다.





8. 나눔 및 묵상

① 어떤 모습이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입니까?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② 예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또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의 어떤 것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조건 없이 내 놓을 수 있을까요?





③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보고 헤로데는 무척 당황을 했습니다. 내가 헤로데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경배를 드렸을까요? 아니면 헤로데처럼 예수님을 해치우려고 했을까요? 또한 주변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을 발견하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8.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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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과 예수님의 탄생

    예수님의 겸손과 마리아와 요셉의 의로움

    1. 말씀읽기: 루카 1,26-38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성모님의 믿음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는 것은 은총을 가득히 받았다는 것이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앞당겨 입으시고 은총에 충만한 분으로 지극히 높은 성덕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께 은총이 충만하신 분,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뻐하여라.”라는 것은 기쁨을 청하는 그리이스인의 인사입니다. 소아시아 사람은 살렘, 히브리말로는 샬롬이라고 하며 평화를 청했고, 라틴 사람은 건강을 묻는 인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마음속에 어떠한 피조물보다 뛰어나게 완전히 깃드시고,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셨습니다. 성모님은 그 누구보다도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는 성모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천사는 먼저 성모님을 안심시킵니다. 성모님의 두려움을 제거해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라고 전해줍니다. 총애를 받았다는 것은 마리아가 하느님 마음에 드셨다는 것입니다. 총애는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은총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즐겨 받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늘 하느님께 기도하였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청을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예수”는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제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하느님께 늘 기도드렸고, 그 기도의 내용은 “하느님의 뜻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총애하셨고,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하여 구원 역사를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천사에게 반문합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이지만 아직 요셉을 알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말씀 안에서 그녀가 동정녀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아직 완전히 순결한 처녀임을 나타낼 뿐 아니라, 언제까지나 이러한 상태로 계속 살고 싶으며 따라서 어머니가 될 수 없고, 또 그것이 자기의 소원이라고 하는 결심이 엿보인다는 것입니다. 사실 만일 마리아가 요셉과 혼인하여 평범한 가정생활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기가 태어나리란 말을 들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처녀로 한평생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기도하고 있었으므로, 이 처녀와 어머니로서의 구실을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를 겸손하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바라면서 어떻게 요셉과 약혼을 했을까요? 그것은 부모의 의향을 따르려 했다든가, 관습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했다던가, 요셉과 같은 사람과 맺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청혼을 피할 수 있고, 안심하고 자기 결심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쨌거나 그 당시 유다인에게 있어서 처녀로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평범한 결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에쎄네파 사람들은 동정을 지키고 독신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리아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깁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이 종은 곧 노예란 뜻입니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하고, 주인은 종을 통해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당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하느님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하는 동시에 마리아의 몸은 말씀이 강생하셨고, 그녀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믿음과 승낙을 통해서 예수님의 어머니로 삼으시고, 그녀를 온 인류의 구속사업의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 겸손한 믿음과 순종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나 또한 성모님을 본받아 주님께 겸손한 믿음과 순종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3. 요셉 성인의 의로움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녀가 아이를 가진 것은 유다법으로 볼 때 간음한 것이었고, 간음한 여인들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유다법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도 적자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법은 명백히 약혼과 결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정식 결혼은 신부를 자기 집에 맞아들이고, 함께 산 때부터 성립되었습니다(신명기 20,7).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 했을 때는 저마다 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 약혼자는 혼인에 있어서 엄밀한 뜻의 결혼한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➀부정을 저지른 약혼자는 부정을 저지른 아내처럼 돌로 쳐 죽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➁약혼자를 잃은 여자는 과부와 똑같이 여겼다.

    ➂약혼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혼장을 써 주어야 했다.

    ➃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은 적자로 보았다.


     이제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요셉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일단 법대로 회당에 고발하여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도록 했을까요? 만일 내 아내가 될 사람이 그랬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요셉성인은 성모님을 나자렛의 회당에 고발하든가, 아니면 두 증인을 세우고 이혼장을 써 주고 인연을 끊든가,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에 고발하면 그녀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될 것이고, 또 마리아의 명예가 더럽혀 지는 것은 물론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어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마리아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성인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파혼하겠다는 결심을 하자, 하느님께서 급해지셨나 봅니다. 즉시 개입하십니다. 천사는 그에게 엄숙히 “다윗의 자손 요셉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예로운 호칭을 받은 또 하나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인간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임을 요셉에게 설명을 하십니다. 요셉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다른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요셉은 천사의 계시를 듣고서 즉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 아내의 그 남편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요셉은 단순하게 그리고 주저함 없이 그가 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신앙인의 모습이 바로 이러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의로운 사람이란 항상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은 지혜롭고 친절하며, 그의 성숙한 인간성이 하느님의 계획과 잘 융화되어 빛을 발합니다. 의인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조사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마리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의 아이를 가진 상황인데, 내가 그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요셉성인이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는지 요셉 성인의 의로움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우리 모두 요셉 성인처럼 사랑합시다.


    4. 족보의 의미

     당시 사람들이 이 족보를 읽으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느꼈을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해방시키고 참 자유를 주시러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자손”이란 말로써 구약시대를 통하여 모든 유다인의 조상들과 왕에게, 그리고 예언자의 말을 통하여 비추어 주었던 초자연적 빛이 “예수님”께 집중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괴로움의 바다인 인생 항로를 걸어 온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 온 것은 그 괴로움의 바다에서 구해 주실 구세주의 오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이 구세주는 아브라함의 후손, 그리고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고 예언되어 왔습니다. 그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족보는 14대씩 세 시대로 (성조의 시대, 왕의 시대, 사제의 시대)나눠서 전해지고 있는데, 14란 숫자가 히브리인이 “거룩하고 완전한 수”라고 보고 있던 7의 배수이고,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가 14대이므로 그것을 모델로 삼아 다른 시대도 14대로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성조의 시대, 왕의 시대, 사제의 시대로 구분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즉 때가 차서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족보를 통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족보에 등장하는 타마르, 라합, 룻, 바세바는 정숙하거나 거룩한 여인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그녀들은 인생을 개척하였고, 그렇게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당신의 구원역사를 이루심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내 삶 또한 구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도구로 써 주실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 손길을 펼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5. 강생의 의미

    ①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 2,6-7).

    이와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 그리고 하느님의 독생 성자가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강생의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 되는 교리입니다.

    세상 창조의 그 먼 순간, 우주가 창조되기 전에 벌써 말씀이 계셨습니다.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콜로새서의 그리스도 찬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1,17)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하느님과 말씀의 위격적 일치와 결속관계를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공생활을 하실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늘 하느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늘 기도하셨고, 성령께서도 늘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바로 그 말씀이 하느님이십니다. 이것은 말씀의 신적 본질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을 가지고 계시기에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육화(인간의 몸을 취하신)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지상 활동은 바로 이 본성에 근거합니다.


    ② 구원을 위한 강생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 14)는 사도 요한의 증언을 따라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일을 “강생” 또는 육화라고 표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6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피2,6-7)

     그렇다면 왜 말씀이 사람이 되셨는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한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시고 사람이 되심을 믿나이다.”


    또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구원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1요한 4, 10).

    둘째,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습니다.”(요한 3, 16).

    셋째, 우리에게 거룩한 표양이 되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 29).

    넷째,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 4)하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과 같이 거룩한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서 사람의 모습을 취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유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전능하신 분인데 구태여 인간이 되지 않고서도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들처럼 결코 이해타산 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역사 안에 직접 개입하심으로써 그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이렇게 무조건적이며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분의 사랑받는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사람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무슨 낯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까? 어떻게 아버지 앞에 서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③ 예수님의 겸손과 사랑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한없는 겸손과 사랑을 묵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참으로 우리 중의 한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죄 많은 인간의 모습”(로마 8, 3)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나약함과 미천한 신분을 함께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들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의 겸손과 사랑을 본받아 나 또한 그렇게 겸손하게 주님께로 향하고, 주님과 함께 하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6. 동방박사의 경배(마태 2,1-12)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성탄 대축일입니다. 곧 성탄을 대외적으로 공적으로 알리는 것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2일과 8일 사이의 주일에 이 축일을 지냅니다. 주님께서는 탄생하신 뒤 사람들에게 점차로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목동들, 동방의 세 박사들로 시작하여 성전에 머무는 의인 시메온과 한나에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시라는 사실은 제자들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민족 전체에게 차츰차츰 전해지게 됩니다.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분을 경배하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동방 박사들은 발타사르, 멜키오르, 가스파르라고 합니다. 그들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며 아마도 별의 운행과 출현에 관해 잘 알고 있는 바빌론 사제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별의 기이한 현상 때문에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새로 태어난 아기 왕의  별을 “그분의 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고대 동양의 믿음에 따르면, 별들의 움직임과 인간의 운명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틈없는 조사와 연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동방박사들이 보았던 그 별이 어떤 성좌 혹은 어떤 혜성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은 전혀 기적적인 현상이었는지 등등 그 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천 년 전의 별의 위치를 추적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떤 천문학자들은 이 천 년 전에 태양계의 행성들이 일직선으로 섰다는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들과 우주의 하느님께서 보내신 징표라고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현상의 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의 본질적인 목적과 대상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마구간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들은 복됩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구간의 주인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나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그 이면에 있는 깊이 있는 가치를 알아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황금은 임금의 상징으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선물로 드림으로써 예수님께서 세상의 임금이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향을 피운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유향처럼 감미로운 향기를 뿜고 백합처럼 꽃피어 향내를 풍기어라. 찬미의 노래로 주님을 찬송하고 그분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여라”(집회 39,14). 향의 연기가 위로 피어오르듯 우리들의 기도도 하느님 앞으로 올라갑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께  기도와 찬미를 바치는 마음으로 유향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몰약은 향기와 쓴맛이 있어 옛날부터 향료 또는 의약으로도 쓰이고 아울러 시체의 방부제로도 쓰여 왔습니다.  “언젠가 밤에 예수를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침향을 섞은 몰약을 백 근 쯤 가지고 왔다. 이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요한19,39-40)고 하였습니다.구약시대에는 사제나 왕에게 부어주는 기름에 몰약을 넣었습니다(탈출기30,23-25). 또 몰약은 ‘메시아와 왕의 특별한 향기’로 통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선물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며,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실천사항

    ① 성모님의 믿음과 요셉성인의 의로움을 본받아야 합니다.

    ②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이 되심을 기억하면서, 나 또한 나를 낮추어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③ 또 하나의 동방박사가 되어 예수님께 마음담긴 선물을 드리는 내가 됩시다.



    8. 나눔 및 묵상

    ① 어떤 모습이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입니까?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② 예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까요? 또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의 어떤 것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조건 없이 내 놓을 수 있을까요?



    ③ 자신이 왕임에도 불구하고 왕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을 보고 헤로데는 무척 당황을 했습니다. 내가 헤로데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경배를 드렸을까요? 아니면 헤로데처럼 예수님을 해치우려고 했을까요? 또한 주변에서 나보다 나은 사람을 발견하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8. 말씀으로 기도하기

  2. 기쁜마음으로 님의 말:

    충분히 읽고, 느낀 점, 어려운 점, 의문 점, 나누고 싶은 점을 기쁜 마음으로 적어 보세요.

    말씀 안에서 주어지는 기쁨들을 나눠 보세요.

    그리고 “함께 생각해 봅시다”를 잘 적어 보세요 ^*^

    말씀안에서 행복합시다.!!!!

  3. 김숙희비비아나 님의 말:

    안녕하세요? 계룡대 삼위일체성당 비비안나입니다.동참하게 허락해주신 요한 신부님,감사드리고 부족함을 채워주시려는 주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4. 요한신부 님의 말:

    반갑습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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