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취득(노렌죠)

 

  박취득 노렌죠는 1770년(英祖 46) 경에 홍주 고을에서 태어났다. 비록 기록으로는 그의 어렸을 때 행적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1791년 신해 교난(辛亥敎難) 때에 묘인 박일득(朴一得)이 천주교 사건으로 투옥된 사실로 보아 그 집안에 이미 천주교의 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795년(英祖 19)에 순교한 지 홍(池洪) 사바에게서 천주교를 배웠다고 자백한 사실이 문초기록에 나타난다.


  신해 교난으로 지방에서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 노렌죠는 면천(沔川) 고을에서 체포되어 옥에 갇혀 있는 교우들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였다. 하루는 옥에 있는 교우들이 아침을 들고 있는 중에 그가 용감하게 관문을 두드리고 나아가, ꡒ무죄한 사람들을 혹독하게 매질하고, 옥에 가두어 놓는 것은 무서운 죄가 아닙니까?ꡓ라고 관장에게 외쳤다. 관장은 그가 이미 천주교 사건으로 옥에 갇혀 있던 박일득의 동생임을 알자 화가 나서 체포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내 그는 체포되어 가혹한 매질을 당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흔들리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가벼운 나무칼 대신에 쇠로 된 것을 씌워달라고 관장에게 요청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때 관장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였다. 노렌죠가 그 지방에서 대단한 인심을 얻은 사람이었으므로 백성들이 동요하고 불평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관장은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그를 멀리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해미와 홍주 관아에 차례로 출두하게 되었으며, 홍주 관아에서는 잔인한 매질까지 당하였다. 이렇듯 용감하게 행동하면서 용기를 굽히지 않던 그가 옥에 갇힌지 한달 가량 지났을 때, 조정에서는 그를 석방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으며, 그는 곧 석방되는 몸이 되었다. 이 석방의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그의 열성적인 신앙활동은 머지 아니하여 그를 다시 체포당하게 하였다.




  1797년 홍주 고을에 다시 박해가 일어나자 노렌죠에게도 곧 체포령이 내렸다. 그는 겸손하여 자기 힘을 믿지 않았으므로 처음에는 숨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아버지 대신 잡혀가자 그는 이제 자수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고 8월 19일 자진하여 관아로 갔다.


  관장은 노렌죠가 스스로 출두하여 관청에 이르자, 우선 그가 도망했던 일을 꾸짖고는 ꡒ너는 어찌하여 국왕과 관장들이 금하는 나쁜 도를 따르느냐?ꡓ고 힐문하였다.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ꡒ저는 나쁜 도리를 따르지 않고, 다만 만물을 창조하신 천주를 숭배하라고 가르치는 참다운 종교의 몇가지 계명을 지킬 뿐입니다. 저는 그 천주를 공경하고, 다음에는 임금님과 관장들과 제 부모와 다른 어른들을 공경하며, 제 친구들과 은인들과 형제를,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ꡓ ꡒ너는 부모와 형제가 있느냐? 네가 사는 동네에서는 모두가 천주교를 믿는 다는 말이 있으니, 모든 것을 바른대로 고하라ꡓ ꡒ저는 모친만을 모시고 있을 뿐 아우는 없습니다. 동네에서는 저만이 천주교를 믿습니다.ꡓ 이렇게 노렌죠가 대답하자, 관장은 화가 나서 ꡒ너는 네 부모와 국왕과 관장들을 무시하고 남들의 아내를 범하고 재산을 쓸 데 없이 낭비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는데, 어째서 그렇게 모든 인륜을 어기느냐?ꡓ고 말한 후 포졸들을 돌아보며 고문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그는 비굴하거나 마음을 굽힘이 없이, ꡒ천주의 말씀 중 제4계는 부모와 어른과 임금님과 관장을 공경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륜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우리가 드리는 것을 잡수러 오지 못하시므로 그분들에게 음식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도리는 헛된 일을 물리치고 실제적인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들은 모든 규칙과 예의를 갖추어 죽은 이들을 장사지냅니다. 제6계에서는 일체의 외설(猥褻)을 금하고, 제9계에서는 남의 아내를 원하는것 조차 금합니다. 얼마 안되는 저의 재산을 쓰는 것은 헐벗고 곤궁한 저치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아니, 그것은 재산을 쓸 데 없이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ꡓ라고 천주의 「十誡」와 참다운 종교의 실천을 설명하였다. 관장은 그에게 칼을 씌우도록 하고 다시 공범자들을 대라고 위협하였으나, 그는 순교의 의지를 나타낼 뿐 조금도 나약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곤장은 그를 다시 옥으로 데려가라고 명하였다. 옥리들은 그에게서 돈을 좀 뜯어내려고 그의 두 발에 쇠고랑을 채우고 갖은 학대를 가하였지만, 그는 정의를 위하여 죽을 각오는 되어 있으나 돈을 줄 마음은 없다고 분명히 대답하였다.


  두 번째 심문 때 관장은 그를 형틀에 올려 놓고 때리며, ꡒ아직도 부모와 국왕과 관장들을 무시하겠다고 고집하겠느냐? 책과 십자가와 그림들을 불사르라. 그 물건은 모두가 고약한 것이다ꡓ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노렌죠는 절대로 그것들을 불사를 수 없다고 대답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재림에 대하여 몇 마디 덧붙였다. 그로 인하여 그는 매를 여러 대 맞고 다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옥 중에 있은지 석 달이 되었을 때, 여러 교우들이 그를 보러 와서 옥사장이에게 돈을 옥 안에서는 칼을 벗기게 하였다. 세째번 심문 이후에는 모두 죽인다는 위협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관장은 그에게 ꡒ너는 조선의 백성인데 어찌하여 우리의 모든 성현이 일찌기 하지 않는 일을 고집하느냐? 국법을 어기는 데서 무슨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냐?ꡓ고 물었다. 노렌죠는 ꡒ임금님은 육체의 주인이 될 수 있으나, 천주만이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죽은 후의 상과 벌을 정해 놓으셨으며 아무도 그것을 면하지는 못합니다. 인생이란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고,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ꡓ라고 하여 영혼과 죽음에 대한 합당한 이치를 설명하였다.


  일곱달 후에 신관이 부임하자 네째번 공식 심문이 있었는데, 이 관장도 그에게 배교하여 목수을 구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노렌죠는 여전히 ꡒ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니, 살기를 원하고 죽음을 무서워 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공통된 감정입니다. 그러나 천주는 사람들의 첫째 아버지시고 만물의 최고 주재자이시니 저는 죽을지라도 그분을 배반치 못하겠습니다ꡓ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신임 관장은 어쩔 수 없는 놈이라고 말하고는 혹독히 매질을 시킨 후 해미 진영으로 이송하였다.


  해미 진영에서도 노렌죠는 마찬가지 질문을 받았으며 똑같은 답변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가해지는 고문을 인내심으로 견뎌내었다. 처음 신문에서는 곤장 열 다섯 대만을 맞고 옥에 갇히었다. 다른 심문에서 노렌죠는 천당과 지옥에 관한 천주교 교리를 더 힘있게 설명하여, ꡒ사또께서는 오늘 당장 저를 죽이려 하시고 또 우리 종교를 헛된 미신으로 여기시니, 저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스니다. 세상이 끝나 모든 나라가 없어진 다음에는 양반과 서민, 임금과 백성의 구별이 없이 모든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천주 성자 앞에 모일 것이고, 그분은 과거와 당시의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인들과 함께 천당에 올라 가서 이 세상의 모든 영광과 즐거움보다 말할 수 없이 더 큰 행복을 누릴 것이고 악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이 세상의 괴로움보다 말할 수 없이 더 심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ꡓ라고 한 후에 순교하기를 원하였다. 관장은 그의 말을 듣고는 치도곤(治盜棍)으로 죽이겠다고 하며 20대를 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음 심문에서도 다리에 심한 혹형을 가한 후 옥에 집어 넣도록 하였다.


  얼마 후 해미 관장에게서 명령을 내려 달라는 청을 받은 감사는 ꡒ서양 사람들의 도는 악하고 흉측하다. 그러니 그것을 신봉하는 그의 다리를 치되, 열 네 번을 때려도 항복하지 않거든 죽여버리도록 하라ꡓ는 답장을 보냈다. 진영에서는 이 명령에 따라 모든 형구를 갖추어 놓은 가운데 노렌죠에게 이 관문(關文)을 읽어준 다음 관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ꡒ너는 모친이 보고 싶지도 않으냐? 죽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좋단 말이냐?ꡓꡒ제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은 형언할 수 없스니다. 그러나 죽을지라도 배교는 할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이제 더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ꡓꡒ그러나 다른 천주교인들은 국왕께 순종하지 않았느냐?ꡓꡒ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그들의 행실을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천주를 위하여 죽을 따름입니다.ꡓ관장은 이 말이 끝나자 그에게 무서운 고문을 시켰다. 그리고 이후 여러 달 동안 그는 며칠에 한 번씩 심문을 당하였다. 포졸들의 잔인성은 그에게 고통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리하여 때때로 상처 입은 몸을 진흙 속에 버려두고 밤새껏 추위를 겪게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 무렵에 노렌죠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심경을 적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모친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ꡒ불효자식은 옥 중에서 어머니께 제 심정을 알려 드립니다. 저는 항상 천주를 지성으로 섬기고 부모께 효성을 다하며 형제와 화목하고 천주의 명을 지켜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취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저는 천주께 죄를 범하고 부모와 형제에 대한 제 본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3구(三仇)를 이기지 못한 죄는 수 없이 많습니다. 어머니, 제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삼촌과 형과 형수는 제가 더 잘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천주께 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제 영혼을 구해 주시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천주께서는 당신들의 모든 죄도 사해 주실 것입니다. 천주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십시오. 제가 옥에 갇힌 지 두 달쯤 된 어느날 잠결에 자신의 고난을 따르라는 예수의 십자가를 얼핏 보았습니다. 저는 이 발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ꡓ   




  이렇게 글을 적어 보냄으로써 노렌죠는 주님을 따르도록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자신의 순교가 닥쳤음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1799년 2월 25일에는 다시 가족들에게 천주의 명을 따르라는 부탁의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승리의 시간은 점차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편지를 쓴지 이틀 후의 심문에서 그는 다시 곤장 50대를 맞았고, 관장은 그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하여 그를 치는 동안 물을 붓게 하였다. 그의 몸은 이제 더 없이 참혹하게 되었다. 그는 곤장이나 몽둥이로 도합 1천 4백 대 이상이나 맞았고, 8일 동안을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였다. 옥사장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옷을 벗긴 다음 찬물로 씻어 밖에 내던졌다.


  그러나 노렌죠는 죽지 않았었다. 밤 사이에 교우들이 몰래 가서 그에게 약간의 음식을 먹였는데, 옥사장은 그것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이튿날 2월 28일에 그는 관장 앞에 다시 끌려 나가 또 매질을 당하였다. 관장과 형리들과 구경꾼들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교우들은 그가 다시 옥에 갇히자 스스로 칼을 벗고 자리에 누웠다고 한다. 다음날 그의 모든 상처는 기적적으로 나아서 흔적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이 때 옥사장이 그를 죽이도록 명령한 관장의 말을 따라 새끼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하니, 때는 1799년 2월 29일이요, 그의 나이는 30세 가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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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취득(노렌죠)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박취득 노렌죠는 1770년(英祖 46) 경에 홍주 고을에서 태어났다. 비록 기록으로는 그의 어렸을 때 행적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1791년 신해 교난(辛亥敎難) 때에 묘인 박일득(朴一得)이 천주교 사건으로 투옥된 사실로 보아 그 집안에 이미 천주교의 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795년(英祖 19)에 순교한 지 홍(池洪) 사바에게서 천주교를 배웠다고 자백한 사실이 문초기록에 나타난다.

      신해 교난으로 지방에서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 노렌죠는 면천(沔川) 고을에서 체포되어 옥에 갇혀 있는 교우들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였다. 하루는 옥에 있는 교우들이 아침을 들고 있는 중에 그가 용감하게 관문을 두드리고 나아가, ꡒ무죄한 사람들을 혹독하게 매질하고, 옥에 가두어 놓는 것은 무서운 죄가 아닙니까?ꡓ라고 관장에게 외쳤다. 관장은 그가 이미 천주교 사건으로 옥에 갇혀 있던 박일득의 동생임을 알자 화가 나서 체포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내 그는 체포되어 가혹한 매질을 당하였다. 그러나 마음이 흔들리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가벼운 나무칼 대신에 쇠로 된 것을 씌워달라고 관장에게 요청하기도 하였다.

      사실 이때 관장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였다. 노렌죠가 그 지방에서 대단한 인심을 얻은 사람이었으므로 백성들이 동요하고 불평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관장은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그를 멀리 보내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해미와 홍주 관아에 차례로 출두하게 되었으며, 홍주 관아에서는 잔인한 매질까지 당하였다. 이렇듯 용감하게 행동하면서 용기를 굽히지 않던 그가 옥에 갇힌지 한달 가량 지났을 때, 조정에서는 그를 석방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으며, 그는 곧 석방되는 몸이 되었다. 이 석방의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그의 열성적인 신앙활동은 머지 아니하여 그를 다시 체포당하게 하였다.


      1797년 홍주 고을에 다시 박해가 일어나자 노렌죠에게도 곧 체포령이 내렸다. 그는 겸손하여 자기 힘을 믿지 않았으므로 처음에는 숨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아버지 대신 잡혀가자 그는 이제 자수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고 8월 19일 자진하여 관아로 갔다.

      관장은 노렌죠가 스스로 출두하여 관청에 이르자, 우선 그가 도망했던 일을 꾸짖고는 ꡒ너는 어찌하여 국왕과 관장들이 금하는 나쁜 도를 따르느냐?ꡓ고 힐문하였다. 이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ꡒ저는 나쁜 도리를 따르지 않고, 다만 만물을 창조하신 천주를 숭배하라고 가르치는 참다운 종교의 몇가지 계명을 지킬 뿐입니다. 저는 그 천주를 공경하고, 다음에는 임금님과 관장들과 제 부모와 다른 어른들을 공경하며, 제 친구들과 은인들과 형제를,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ꡓ ꡒ너는 부모와 형제가 있느냐? 네가 사는 동네에서는 모두가 천주교를 믿는 다는 말이 있으니, 모든 것을 바른대로 고하라ꡓ ꡒ저는 모친만을 모시고 있을 뿐 아우는 없습니다. 동네에서는 저만이 천주교를 믿습니다.ꡓ 이렇게 노렌죠가 대답하자, 관장은 화가 나서 ꡒ너는 네 부모와 국왕과 관장들을 무시하고 남들의 아내를 범하고 재산을 쓸 데 없이 낭비하며,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지 않는데, 어째서 그렇게 모든 인륜을 어기느냐?ꡓ고 말한 후 포졸들을 돌아보며 고문을 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그는 비굴하거나 마음을 굽힘이 없이, ꡒ천주의 말씀 중 제4계는 부모와 어른과 임금님과 관장을 공경하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인륜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우리가 드리는 것을 잡수러 오지 못하시므로 그분들에게 음식을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도리는 헛된 일을 물리치고 실제적인 것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들은 모든 규칙과 예의를 갖추어 죽은 이들을 장사지냅니다. 제6계에서는 일체의 외설(猥褻)을 금하고, 제9계에서는 남의 아내를 원하는것 조차 금합니다. 얼마 안되는 저의 재산을 쓰는 것은 헐벗고 곤궁한 저치에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아니, 그것은 재산을 쓸 데 없이 낭비하는 것이 아닙니다ꡓ라고 천주의 「十誡」와 참다운 종교의 실천을 설명하였다. 관장은 그에게 칼을 씌우도록 하고 다시 공범자들을 대라고 위협하였으나, 그는 순교의 의지를 나타낼 뿐 조금도 나약함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곤장은 그를 다시 옥으로 데려가라고 명하였다. 옥리들은 그에게서 돈을 좀 뜯어내려고 그의 두 발에 쇠고랑을 채우고 갖은 학대를 가하였지만, 그는 정의를 위하여 죽을 각오는 되어 있으나 돈을 줄 마음은 없다고 분명히 대답하였다.

      두 번째 심문 때 관장은 그를 형틀에 올려 놓고 때리며, ꡒ아직도 부모와 국왕과 관장들을 무시하겠다고 고집하겠느냐? 책과 십자가와 그림들을 불사르라. 그 물건은 모두가 고약한 것이다ꡓ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노렌죠는 절대로 그것들을 불사를 수 없다고 대답한 후,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재림에 대하여 몇 마디 덧붙였다. 그로 인하여 그는 매를 여러 대 맞고 다시 옥에 갇히게 되었다.

      옥 중에 있은지 석 달이 되었을 때, 여러 교우들이 그를 보러 와서 옥사장이에게 돈을 옥 안에서는 칼을 벗기게 하였다. 세째번 심문 이후에는 모두 죽인다는 위협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관장은 그에게 ꡒ너는 조선의 백성인데 어찌하여 우리의 모든 성현이 일찌기 하지 않는 일을 고집하느냐? 국법을 어기는 데서 무슨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냐?ꡓ고 물었다. 노렌죠는 ꡒ임금님은 육체의 주인이 될 수 있으나, 천주만이 영혼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죽은 후의 상과 벌을 정해 놓으셨으며 아무도 그것을 면하지는 못합니다. 인생이란 사라져 버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고,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ꡓ라고 하여 영혼과 죽음에 대한 합당한 이치를 설명하였다.

      일곱달 후에 신관이 부임하자 네째번 공식 심문이 있었는데, 이 관장도 그에게 배교하여 목수을 구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노렌죠는 여전히 ꡒ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중에서 가장 큰 것이니, 살기를 원하고 죽음을 무서워 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공통된 감정입니다. 그러나 천주는 사람들의 첫째 아버지시고 만물의 최고 주재자이시니 저는 죽을지라도 그분을 배반치 못하겠습니다ꡓ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신임 관장은 어쩔 수 없는 놈이라고 말하고는 혹독히 매질을 시킨 후 해미 진영으로 이송하였다.

      해미 진영에서도 노렌죠는 마찬가지 질문을 받았으며 똑같은 답변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가해지는 고문을 인내심으로 견뎌내었다. 처음 신문에서는 곤장 열 다섯 대만을 맞고 옥에 갇히었다. 다른 심문에서 노렌죠는 천당과 지옥에 관한 천주교 교리를 더 힘있게 설명하여, ꡒ사또께서는 오늘 당장 저를 죽이려 하시고 또 우리 종교를 헛된 미신으로 여기시니, 저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스니다. 세상이 끝나 모든 나라가 없어진 다음에는 양반과 서민, 임금과 백성의 구별이 없이 모든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천주 성자 앞에 모일 것이고, 그분은 과거와 당시의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인들과 함께 천당에 올라 가서 이 세상의 모든 영광과 즐거움보다 말할 수 없이 더 큰 행복을 누릴 것이고 악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이 세상의 괴로움보다 말할 수 없이 더 심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ꡓ라고 한 후에 순교하기를 원하였다. 관장은 그의 말을 듣고는 치도곤(治盜棍)으로 죽이겠다고 하며 20대를 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다음 심문에서도 다리에 심한 혹형을 가한 후 옥에 집어 넣도록 하였다.

      얼마 후 해미 관장에게서 명령을 내려 달라는 청을 받은 감사는 ꡒ서양 사람들의 도는 악하고 흉측하다. 그러니 그것을 신봉하는 그의 다리를 치되, 열 네 번을 때려도 항복하지 않거든 죽여버리도록 하라ꡓ는 답장을 보냈다. 진영에서는 이 명령에 따라 모든 형구를 갖추어 놓은 가운데 노렌죠에게 이 관문(關文)을 읽어준 다음 관장은 이렇게 말하였다. ꡒ너는 모친이 보고 싶지도 않으냐? 죽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좋단 말이냐?ꡓꡒ제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은 형언할 수 없스니다. 그러나 죽을지라도 배교는 할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저는 이제 더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ꡓꡒ그러나 다른 천주교인들은 국왕께 순종하지 않았느냐?ꡓꡒ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저는 그들의 행실을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천주를 위하여 죽을 따름입니다.ꡓ관장은 이 말이 끝나자 그에게 무서운 고문을 시켰다. 그리고 이후 여러 달 동안 그는 며칠에 한 번씩 심문을 당하였다. 포졸들의 잔인성은 그에게 고통을 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리하여 때때로 상처 입은 몸을 진흙 속에 버려두고 밤새껏 추위를 겪게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 무렵에 노렌죠는 자신이 갖고 있는 심경을 적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모친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ꡒ불효자식은 옥 중에서 어머니께 제 심정을 알려 드립니다. 저는 항상 천주를 지성으로 섬기고 부모께 효성을 다하며 형제와 화목하고 천주의 명을 지켜 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취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저는 천주께 죄를 범하고 부모와 형제에 대한 제 본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3구(三仇)를 이기지 못한 죄는 수 없이 많습니다. 어머니, 제 불효를 용서하십시오. 삼촌과 형과 형수는 제가 더 잘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천주께 제 죄를 사하여 주시고 제 영혼을 구해 주시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천주께서는 당신들의 모든 죄도 사해 주실 것입니다. 천주의 명령을 충실히 지키십시오. 제가 옥에 갇힌 지 두 달쯤 된 어느날 잠결에 자신의 고난을 따르라는 예수의 십자가를 얼핏 보았습니다. 저는 이 발현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ꡓ   


      이렇게 글을 적어 보냄으로써 노렌죠는 주님을 따르도록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자신의 순교가 닥쳤음을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1799년 2월 25일에는 다시 가족들에게 천주의 명을 따르라는 부탁의 편지를 쓰기도 하였다.

      그러는 동안 승리의 시간은 점차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편지를 쓴지 이틀 후의 심문에서 그는 다시 곤장 50대를 맞았고, 관장은 그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하여 그를 치는 동안 물을 붓게 하였다. 그의 몸은 이제 더 없이 참혹하게 되었다. 그는 곤장이나 몽둥이로 도합 1천 4백 대 이상이나 맞았고, 8일 동안을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였다. 옥사장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옷을 벗긴 다음 찬물로 씻어 밖에 내던졌다.

      그러나 노렌죠는 죽지 않았었다. 밤 사이에 교우들이 몰래 가서 그에게 약간의 음식을 먹였는데, 옥사장은 그것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이튿날 2월 28일에 그는 관장 앞에 다시 끌려 나가 또 매질을 당하였다. 관장과 형리들과 구경꾼들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하였다. 교우들은 그가 다시 옥에 갇히자 스스로 칼을 벗고 자리에 누웠다고 한다. 다음날 그의 모든 상처는 기적적으로 나아서 흔적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이 때 옥사장이 그를 죽이도록 명령한 관장의 말을 따라 새끼로 목을 졸라 숨지게 하니, 때는 1799년 2월 29일이요, 그의 나이는 30세 가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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