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복(요한)

 

최양복(요한)의 집안은 본디 홍주 다래골에서 살았었고 또 최경환 프란치스꼬의 먼 형제가 되는 사람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1801년에 귀양을 가게 되어 자녀들이 고향을 떠나 귀양에 따라갔는데, 요한은 거기서 태어났다. 그리스도교적 교육의 영향으로 최 요한의 성격은 온순하고 곧게 되었다. 그후 천주교를 더 자유롭게 봉행하기 위하여 그는 가족을 데리고 산골에 있는 서지동네로 이사가서 몹씨 가난하게 살며 특히 자기 영혼을 보살피는 일에 전심했고,재산이 보잘 것 없는데도 자기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애국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자주 교우들을 격려하며 천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말해주므로써 그들의 신앙을 굳세게 하였다. 자기 자신도 순교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1839년 1월에 그 기회가 왔다. 그는 힘이 장사였으므로 관가에서는 쇠도리깨로 무장한 군사들을 보냈는데 이들이 그를 싸고 일제히 매질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요한은 저항할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고 붙잡혀 결박을 당하고 그 동네를 관할하는 원주진영으로 압송되었다. 관장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사교를 믿는다는 것이 사실이냐?” “저는 사교를 알지 못하고 다만 천주교를 봉행합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또 그의 가족과 이웃들이 숨어 있는 장소를 대라고 몹씨 매질하였으나, 그는 한마디도 불지를 않았다. 감옥에 다시 갇히게 되었는데 옥졸들과 하인배들이 어찌나 포악하게 다루었는지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되었다. 상처가 낫자 그는 다시 진영으로 끌려 나갔다. 관장은 상냥하게 말하였다. “네 종교를 배반하면 다시 임금님의 충실한 백성이 되는 것이니 네 재산을 모두 돌려줄 것이다.그러나 고집을 부리면 모진 형벌을 당하게 할 수 밖엔 없겠다.” 요한은 대답하였다. “원주고을을 통째로 주신다해도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천주를 배반할 수도 없습니다.” 이 용감한말은 그때부터 이 곳에선 격언(格言)처럼 되어 교우와 외교인을 막론하고 어린이들까지도 진리의 가장 엄숙한 주장처럼 쓰게 되었다. 관장은 볼기 백대 이상을 치게하고 다시 옥에 가두라 하였다. 부활주일 이튿날 월요일에 다시 출두하니 관장은 그에게 말하였다. “꼭 죽을 생각이란 말이냐?” “죽기를 무서워하고 살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義를 위하여 죽기를 거부하겠습니까?” “ 만일 이렇게 죽으면 대관절 어디로 간단 말이냐?” “천국에 갑니다?” “그러면 배교를 안하겠다는 것이냐?” “못하겠습니다.” 이리하여 다시 고문을 받았으나 요한은 그것을 기꺼이 참아 받았다. 천주께 대한 그의 사랑은 매를 맞는 중에 더 커지는 것이었다.


        그 다음 요한은 감사 앞에 끌려갔다. 거기서 태형, 곤장, 팔과 다리의 주리 등 온갖 형벌을 가하여 교우들을 밀고하라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에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라 하니 기꺼이 응하였다. 그의 몸은 참혹한 상태에 이르렀으나 불평하지 않고 예수,마리아의 도움만 빌었다. 2일이 지난 뒤 심문을 받고 또 다시 고문을 당하였다. 밤새도록 매를 맞아 살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고 뼈가 여기저기 불거져 나와 의식을 잃게 되었다. 형리들은 이런 꼴이 된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발에 족가(足枷)를 채워 한나절이나 거꾸로 매달아 두었다. 나졸배 중에 하나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를 끌어내려 주고 물을 좀 먹여 주었다. 그러나 오래 있다가야 정신이 돌아왔는데, 정신이 들자 천주와 성모마리아께 그를 위로해 주신 것을 감사하였다. 이것은 그 긴 고문을 받는 동안 어떤 천상발현이 있었다는 증거인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인내심과 무슨 일이든지 천주의 뜻대로 하겠다는 소심한 주의는 탄복할 만한 것이었다. 하루는 족쇄속에 숨어 있는 빈대를 잡도록 그것을 잠깐만 벗겨달라고 옥리에게 청했는데 빈대를 잡은 다음에 도로 그것을 채우라고 했다한다. 옥리가 그에게 그 괴로운 짐을 잠시 풀어 놓으라고 했더니 요한은 대답하였다. “안되오, 관장이 그것을 끼고 있으라고 했으니 끼고 있겠소.”


        여러 주간동안 2일이나 3일만에 한번씩 진영으로 끌려나갔다. 형리들은 악착같이 새로운 고문을 생각해 내느라고 애를 쓰고 매를 때려서 천천히 죽이려 하였는데 어떻게 그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기운을 다시 차리라고 약 20일가량 그대로 두었다가 다시 관장 앞으로 끌고가니 관장은 그에게 말하였다.“올바른 정신이 좀 들었느냐?” 요한은 대답하였다. “못하겠습니다. 제가 제몸에 얼마되지 않는 시간의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면 제 영혼이 영원히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임금과 義를 위해 죽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배반하는 백성이 있다면 그는 불충하고 반역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하늘과 땅의 위해한 천주를 섬기겠다고 맹세한 제가 형벌이 두려워서 오늘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관장은 화가 치밀어 매질을 한층 더 심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다리뼈가 부러져 두세치나 되는 뼈조각 두개가 땅에 떨어졌다. 그의 등과 배가 빠끔히 구멍이 나서 창자가 밖으로 삐져 나왔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받는 중에도 최 요한은 여전히 평온하였으니,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구세주만을 생각하고 사랑을 사랑으로, 목숨을 목숨으로 갚고자 한 것이었다. 이무렵, 천주께서는 당신 일꾼의 영혼을 한층더 깨끗하게 하시려고 요한이 심한 실망의 유혹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마음이 불안한 가운데 그는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었고 거기서 쇠약해져가는 인성(人性)의 부르짖음을 누를 힘을 다시 얻었다. 오래지 않아 기쁨과 평화가 그의 마음속에 다시 찾아왔고 그의 충성심의 깊음으로 마침내 사형이 선고되었다. 그러나 사형이 집행되기까지는 약 2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사형집행일이 되자 그는 사자밥을 한 그릇 다먹었다. 사형장에 가려고 옥에서 나오자 옥리들은 모두 섭섭하다는 뜻을 나타냈으니 그 만큼 그의 아름다운 모범이 그들에게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옥에 갇힌지 8개월 후인 8월 29일, 즉 1839년 10월 6일(양력)에 그는 참수형(斬首形)을 당하였다. 이 일은 용기부족으로 그를 본받지 못한 교우들이 끊임없이 요한을 지켜본 후 옥에서 풀려나와 증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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