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그리스도께서 떠나신다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으나 세상에는 기쁨을 주게 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새로 오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한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의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들이 바치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그들이 주님의 보호와 도움으로 이미 얻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아울러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도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하신 저희를 언제나 지켜 주시어,
성자의 수난으로 구원된 저희가 그분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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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6주간 금요일(5/18)
말씀의 초대
그리스도께서 떠나신다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으나 세상에는 기쁨을 주게 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새로 오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한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의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들이 바치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받으시고, 그들이 주님의 보호와 도움으로 이미 얻은 것을 잃지 않고, 영원한 선물도 아울러 받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도다. 알렐루야.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하신 저희를 언제나 지켜 주시어, 성자의 수난으로 구원된 저희가 그분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현대 의학은 산모들의 ‘해산은 고통스럽다.’는 고정관념이 해산의 고통을 크게 좌우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곧, 고통은 실제적인 육체의 자극에서 온다기보다는 그것을 인식하는 뇌의 기능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아낸 것입니다. 따라서 두려운 마음을 극복하고 고통을 생명의 과정 안에 있는 것으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지면, 실제로 몸은 고통을 인지하지만 우리의 뇌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심하게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산모가 새 생명의 해산이라는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우리도 지금은 고통 중에 있지만 주님을 뵙게 될 때에는 그 모든 고통을 잊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엄밀히 말한다면, 주님께서 이러한 희망을 주셨으므로 사실 우리가 현재 체험하는 고통도 더 이상 고통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현재의 고통을 더 이상 고통으로 인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주님께서 마련하신 기쁨과 희망의 날을 생각하면 현재의 고통이 더 이상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결과를 약속해 주실 뿐 아니라 구원의 과정 안에서도 고통을 치유해 주시는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