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연중 제9주간 수요일(6/6)


    말씀의 초대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께 달린 일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생명의 주인으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실 뿐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의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저희가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하나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어, 같은 천상 양식을 가득히 받아 먹은 저희가 한마음 한몸으로 주님을 섬기며 서로 화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부활은 소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생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두가이들이 엉뚱한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모르기에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죽은 다음의 세계는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질문하고 쉽게 답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 곧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혼인한다는 설정 또한 얼마나 유치한 생각입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조용히 이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잘못 질문하기 십상입니다. 억지를 부리고 고집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입니다. 익지 않은 벼는 알맹이가 없어 바람에 날립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읽지도 쓰지도 않는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서는 더 요란하게 이야기합니다. 사두가이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JOSEF ANTON BRUCKNER/Te Deum in C major-4악장/Salvum 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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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9주간 수요일(6/6)


      말씀의 초대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께 달린 일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생명의 주인으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실 뿐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여 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저희의 구원이 이루어지오니, 저희가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저에게 상을 차려 주시니, 저의 술잔도 가득하나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에게 주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어, 같은 천상 양식을 가득히 받아 먹은 저희가 한마음 한몸으로 주님을 섬기며 서로 화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부활은 소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생명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두가이들이 엉뚱한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모르기에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답하십니다. 죽은 다음의 세계는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질문하고 쉽게 답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 곧 한 여인이 일곱 형제와 혼인한다는 설정 또한 얼마나 유치한 생각입니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조용히 이르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잘못 질문하기 십상입니다. 억지를 부리고 고집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입니다. 익지 않은 벼는 알맹이가 없어 바람에 날립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읽지도 쓰지도 않는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서는 더 요란하게 이야기합니다. 사두가이들과 다를 바 없는 행동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JOSEF ANTON BRUCKNER/Te Deum in C major-4악장/Salvum fac
    
    
    
    
    
    
    
    

  2. user#0 님의 말: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주님!

    예전에….
    제가 당신이 좋이 당신의 자녀가 되고 싶어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려
    교리를 받고 있을 때 친구에게 함께 성당에 가자고 권유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친구가 그랬습니다
    옛날에는 하느님이 예수님이 살았는지 모르지만 부처님도 돌아가시고
    공자님도 맹자님도 모두 죽었다고 그리고 또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그럼 하느님을 본 적이 있니? 예수님을 본 적이 있니?
    제가 그랬습니다
    그럼 너는 본 사람만 믿니?
    그럼 너는 네 조상들을 모두 보고 믿었니?
    너네 5대조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생기셨니?
    고조 할아버지 할머니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 등등….
    저의 말에 친구가 그랬습니다
    그거야 내가 보지 않았지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증거잖아하고 자신있게 말을 했습니다

    저도지지 않고 자신있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 네 말대로 하느님이 예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옛날 분이시라면
    죽은 분이시라면 믿는 우리모두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하지만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증거는 곳곳에 있단다
    지금 이렇게 우리가 살아서 숨쉬고 있는 것부터 ……
    그리고 하느님께서 살아계신 분이 아니시라면……….
    주일이나 평일에도 피곤하고 힘들어도 새벽에나 주일에도 놀러가지 않고
    성당에 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니?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으로 생각해도 우리보다 더 잘나고
    능력있는 사람들도 성당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미사를 드리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 모두 쓸데없는 행동인데 그 사람들 모두
    할일이 없어 성당에 가는 것일까?
    나도 아직은 하느님이 어떤분이신지 잘 모르지만 확신하는 것은
    내가 성당에 갈 때 그리고 미사참례를 하면서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드는 것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등을 절제하는 것 등등…..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나의 이런 마음들이 성당에 나가고 나서 느끼는 감정
    이라는 사실이 바로 하느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단다
    내가 아직은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해 설명을 하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으며 성당에 다니고 있단다
    친구야! 너도 나와 함께 성당에 다니지 않을래?
    종교는 수학공식처럼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란다
    함께 가자 친구야!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생각을 해보니
    제가 참 당돌했던 것같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받으면서 어떻데 그렇게 당당하게 말을 할 수 있었는지….
    그때 저의말을 듣고 성당에 몇 명이 나와 교리를 받고 영세를 했습니다
    아쉽게도 그 친구는 아직도 외인이지만 ……..
    요즈음은 성당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전교를 했었는데………
    복음묵상을 한지 몇 년이 지난 요즈음은 외인권면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복음묵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아 당신께 죄만스럽습니다
    예비자교리를 할 때도 저의 말을 믿고 몇 명이 영세를 했는데….
    저의 게으름과 저의 교만과 이기심 아집등…..
    저의 이런 생각과 모습들이 지금은 예비자를 권면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전에도 살아계시고 지금도 살아 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실 당신을
    믿고 사랑하며 당신을 증거할 수 있는 신앙인헬레나가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의 사랑을 믿으며 오늘하루도 기쁘고 행복하게 지낼 수있도록
    축복을 주십시오
    아멘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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