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연중 제9주간 목요일(6/7)


    말씀의 초대
    그러니 온몸으로 믿어야 한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계명의 본질을 자신도 모르게 깨닫게 될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가 깨끗하고 거룩한 예물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에게 더욱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감동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감동을 준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그러한 자세로 다가간다면 그가 어찌 감동받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계명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온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과 온몸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동일시했습니다. 율법 준수와 하느님 사랑을 같은 자리에 놓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율법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동이 생략된 채 형식으로만 흐른다면 참으로 삭막한 일입니다. 온몸으로 애정을 쏟는다는 말만 앞세운 채 실제로는 메마른 행동의 되풀이라면,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성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감동을 주라는 말입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그러한 감동을 준다면 자신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감동은 주는 만큼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JOSEF ANTON BRUCKNER/Te Deum in C major- 5악장/In te, Domine, sper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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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9주간 목요일(6/7)


      말씀의 초대
      그러니 온몸으로 믿어야 한다.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섬겨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계명의 본질을 자신도 모르게 깨닫게 될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28ㄱㄷ-34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 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가 깨끗하고 거룩한 예물이 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충만하게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주님 면전에서 넘치는 기쁨을 누리리이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를 받아 모시고 힘을 얻은 저희에게 더욱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사랑은 감동을 주는 행위입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감동받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과 정성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감동을 준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그러한 자세로 다가간다면 그가 어찌 감동받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계명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온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과 온몸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을 동일시했습니다. 율법 준수와 하느님 사랑을 같은 자리에 놓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율법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동이 생략된 채 형식으로만 흐른다면 참으로 삭막한 일입니다. 온몸으로 애정을 쏟는다는 말만 앞세운 채 실제로는 메마른 행동의 되풀이라면,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정성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그렇게 감동을 주라는 말입니다.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그러한 감동을 준다면 자신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감동은 주는 만큼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JOSEF ANTON BRUCKNER/Te Deum in C major- 5악장/In te, Domine, sper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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