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사도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분이다.
요한 복음 11장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죽은 라자로가
다시 살아날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주님의 부활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께서 나타나시자 그의 불신은 씻은 듯 사라진다.
그리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8)이라는 유명한 고백을 남겼다.
토마스 사도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인도 사람들은
토마스 사도에 대한 신심이 무척 뛰어나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를 인도의 사도로 선언하였다.
6세기경 사도의 유물을 옮긴 기념일을
7월 3일에 지내면서 이 축일이 고정되었다.
말씀의 초대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그러자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외친다.
예수님께서 제 운명의 주인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토마스는 예수님께 감동하고 승복하였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마음에
들어오시어 그의 삶을 바꾸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모퉁잇돌이 되어 주셨던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알렐루야.
복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4-29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성 토마스 사도를 기억하며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에게 언제나 구원의 은총을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고 못 자국을 확인해 보아라.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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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사도 축일(7/3)
토마스 사도는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분이다. 요한 복음 11장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죽은 라자로가 다시 살아날 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주님의 부활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스승께서 나타나시자 그의 불신은 씻은 듯 사라진다. 그리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요한 20,28)이라는 유명한 고백을 남겼다. 토마스 사도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인도 사람들은 토마스 사도에 대한 신심이 무척 뛰어나다.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를 인도의 사도로 선언하였다. 6세기경 사도의 유물을 옮긴 기념일을 7월 3일에 지내면서 이 축일이 고정되었다.
말씀의 초대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그러자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외친다. 예수님께서 제 운명의 주인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토마스는 예수님께 감동하고 승복하였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의 마음에 들어오시어 그의 삶을 바꾸어 주셨다. 예수님께서 모퉁잇돌이 되어 주셨던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알렐루야.
복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4-29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성 토마스 사도를 기억하며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에게 언제나 구원의 은총을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 보고 못 자국을 확인해 보아라.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아버지, 성자의 살과 피로 저희를 기르시니, 성 토마스 사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주님이며 하느님으로 알아보고, 저희가 고백하는 믿음을 삶으로 증언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토마스는 스승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스승의 상처 난 손과 옆구리를 보지 않고서는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동료 제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살아생전에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고 기적의 음식을 먹으며 감격하던 그 토마스가 그분의 부활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스승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의 능력을 지녔던 스승이 그토록 허무하게 죽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동료 제자들이 말하는 부활 소식은 혼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의 의심은 천성적이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도 꼬치꼬치 따져야만 직성이 풀렸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그러한 성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토마스 앞에 한 번 더 발현하셨습니다. 이 발현으로 토마스는 무너지고 맙니다. 의심 많고 따지기를 좋아하는 자신을 위하여 한 번 더 나타나신 스승의 사랑에 감동하였던 것입니다. 단순히 스승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함으로써 바뀐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가 토마스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언제나 이론을 앞섭니다. 토마스의 마음을 변화시키신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라는 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토마스 사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믿지 못했을 때의 모습과,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모습이. 나도 그렇게 변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토마의 불신앙은 다른 이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나는 예수님께 뭔가를 보여 달라고 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마스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고, 신앙인으로서 내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봅시다.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열두 제자 가운데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었습니다. 토마스 사도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대하지 못했던 토마사도와 직접 목격한 제자들과의 접촉이 없는 나는 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토마스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부활의 기쁜소식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사도는 보고 믿으려고 하였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손바닥의 상처에 자신의 손가락을, 창에 찔린 상처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토마스 사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너무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너무도 극단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이 말씀 안에서 공동체의 모습을 발견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0명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고 토마스에게 말 하였습니다. 그런데 토마스는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너무도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기에 믿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부활을 전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동료들입니다.
어찌 보면 열두 제자들은 아직 한 팀이 되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누가 더 높은 사람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높고 낮은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주님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서(참조 2,19-22)에서 하느님의 한 가족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아니라 무척 중요한 사람입니다. 내가 바닥이라면 그는 천장이고, 기둥이요, 벽인 것입니다. 바닥만 있는 집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장만 있는 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멋진 집이라 할지라도 문이 없다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으며, 어떻게 도둑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이 처음에 잊은 것이 바로 “하나”라는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섬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그를 받아들이고, 섬겼다면 나는 그의 말을 듣습니다.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한 말씀만 하시면 제 종이 낫겠습니다.”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이가 말하니 나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나에게 이익이 될 것 같은 말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신자들이 신자를 권면하면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타종교의 신자나, 신흥종교의 신자가 유혹을 하면 그곳으로는 넘어갑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가톨릭 신자들도 성당에 봉헌이나 교무금을 내는데 있어서 인색한 사람들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타 종교나 신흥종교로 간 사람들은 많은 것을 기부합니다. 뭔가 방법이 잘못 된지도 모르겠지만 좌우지간 진실한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상한 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내 마음이 닫혀 있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열려 있어야 보이고, 들리는데 닫혀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고, 형제요 자매라고 지내왔지만, 동료로서 함께 지내왔지만 그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문제요, 귀를 기울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우리 예수님 만났어!”
토마스: “정신들 차려! 너무 충격이 커서 그럴 거야.”
제자들: “진짜라니까?”
토마스: “3일전에 돌아가실 때 그 모습 생각 안나? 어떻게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살아나셔. 너무 보고 싶으니까 환영을 본거야!”
제자들: “진짜라니까?”
토마스: “난 내 손가락으로 그분의 손에 난 상처에 넣어보고,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 보지 않기 전에는 결코 믿지 못하겠어.”
이럴 때 내가 제자들 중의 하나라면 어떻게 말할까요?
제자들의 공동체도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다음에는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 신앙인다워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입니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토마스도 같이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잠겨 있는 문을 통과하셔서 그들 가운데 서시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그리고 토마스 사도 앞에 서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1주일 동안 토마스는 아마도 홀로 의심 속에서 움츠리고 있었으며 다른 제자들과 함께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토마스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보통의 경우 고집 부리다가도, 일 한번 당해야 그제야 정신을 차립니다. 토마스 사도가 믿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토마스 사도도 그렇게 고집을 부렸다가 예수님께 한 방(^^) 먹는 것입니다.
그러자 토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렇습니다. 그분의 부활을 내가 믿어야 만이 그분께서 부활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믿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결코 내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토마스는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어 보아야만이 믿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의 상처에 손가락을 넣어 보았겠지요. 토마스 사도는 다른 사도들이 본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 모든 것이 사랑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너무도 예수님을 사랑했기에 자신도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겠습니까?
토마스 사도는 예수님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공의회 이전에는 신자들이 거양성체 때 “내 주시요, 내 천주시로다.”라고 고백을 했는데, 지금 어르신들은 속으로 나지막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면 내 삶도 바뀌겠지요.
그런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지 않았음에도 믿고 있는 나를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욱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나도 보지 않고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듣고, 그분께 지금 믿음을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행복한 사람입니까?
3.함께 생각해 봅시다.
1. 토마스의 불신앙은 다른 이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나는 예수님께 뭔가를 보여 달라고 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토마스와 같은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었는지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신앙인으로서 내가 해결해야 될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나눠 봅시다.
2.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
예전에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말씀에 제가 그랫습니다
저는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으며…..
저는 당신을 보지 않고도 사랑하며…
저는 당신을 보지 않고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으니……..
저는 토마사도보다 더 많은 은총을 주셔야 한다고….
당신께서 친히 뽑으신 12제자들은 당신을 보고 믿었지만…..
저는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었으니 저는 12제자들보다 더 믿음이 있다고….
제가 그랫습니다 주님!
그때는 농담이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 ….
저의 마음 속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말에 친구들이 그랫습니다
자신들은 생각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그리고 함께 웃었습니다
주님!
저 참 겁이 없죠?
감히 어떻게 토마사도와 비교할수 있는지…
엉감생신 12제자들과 비교할수 잇는지….
하지만 주님!
저는 당신께서 자녀로 인정해 주셧기에 비록 버릇이 없을지라도….
감히 토마사도 비교를 할수 있고….
엉감생신 12제자들과 비교도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는 당신이 계시기에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엇습니다
다만….
저에게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당신을 진심으로 살아하고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고 잇는 것이 큰 흠이 되지만……
아무려면 어떠냐고….
저는 당신의 자녀인데…….
저의 생각 저의 마음을 솔직히 할수 있다고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생각이 비록 버릇없고 당돌할지라도…..
얼마든지 저의 생각을 말 할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는 세상에 없는 큰 빽 인 당신이 계시니까요?
주님! 제가 그렇습니다
간댕이가 부었습니다
감히 토마사도와 비교를 하고….
엉감생신 12제자들과 비교하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예전에 토마사도와 비교를 하며 자신의 믿음이 강한 것처럼 생각했던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으로….
굳게 다짐해봅니다
아멘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