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탈출기 강좌(탈출기,민수기, 신명기)

들어가는 말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 모양일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그 판단에는 나는 언제나 모세와 같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뜨거운 태양과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갈증과 굶주림은 다양한 불평과 불만을 만들어 냈듯이,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나의 삶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오면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탈출기는 기원전 어느 과거에 있었던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의 이야기였고,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적지가 있었지만 그 목적지를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나 또한 목적지가 있는 지상의 순례자이지만 방랑자처럼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순례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셨습니다. 불평과 불만의 길은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순례자는 확신을 가지고 목자를 따르며, 사랑과 배려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고통스럽겠지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의로움과 정의를 실천하며,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모세와 함께 걷는 출애굽의 여정에서는 단순하고 강렬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너는 방랑자가 아니라 순례자이니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모세와 함께라면 방랑자가 아니라 순례자가 되어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라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으며, 하느님 백성답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세와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걸어가며 하느님 백성을 섬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모세의 손을 잡고 출애굽의 여정에 동참해 봅시다.

 

이 책은 신자들이 다 알고 있는 말씀들을 엮어서, 개인 묵상과 구역에서의 구역모임 교재로, 본당의 초보적인 성경공부 교재로 만들어졌습니다. 함께 읽어나가다가 나눔이 나오면 함께 그 주제를 나눕니다. 나눔을 통해 성경 말씀을 일상의 삶 안으로 끌어들여 더욱 깊이 있게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다시 성경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각 과의 마지막에는 정리해 봅시다. 실천사항. 말씀으로 기도하기가 반복이 됩니다. “정리해 봅시다.”는 그 과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심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실천사항은 심화시킨 내용을 삶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며, “말씀으로 기도하기는 그 기쁨을 하느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씀으로 기도하기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하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나누고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빠지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은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이는 지식으로 머물게 되고, 그 지식은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에 대해서 말하지만 신앙인은 못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하면서 중요하지만 힘든 부분이 묵상기도입니다. “묵상이라는 말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묵상해야 할지 모르고, 밀려오는 분심 속에서 상상이나 공상주님께 다가가려는 추리작용이 엉켜서 어떤 때는 묵상기도를 하면서 분심과 잡념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깊이 빠져들게 되면, 어느 순간 말씀 안에서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눈길을 체험하는 순간, 주님을 향한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면 묵상의 중심인 추리작용을 멈추고, 사랑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분심은 조금씩 줄어들고, “내 눈에는 주님만 보이고 주님 눈에는 나만 보이는 시간이 늘어나며 주님 향한 사랑만이 타오르는 순간을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나눔묵상기도의 큰 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말씀을 나누는 그 형제자매의 입을 통해서 나에게 기쁨을 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묵상을 나누는 것은 나와 공동체에게 큰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 마음을 열고 형제자매들의 나눔을 듣고, 그 형제자매의 나눔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기뻐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훈련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기뻐하게 만들어 주고,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배우는 것을 더 기뻐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런 훈련은 주님께 대한 나의 열정을 서서히 불타오르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실천사항들이 의미 있는 것들로 결정되며, 실천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홀로 주님 앞에 머물며 기도할 때는 자연스럽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 그 말씀 안에 머물며, 말씀으로 기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훈련이 반복된다면 모세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섬김의 리더쉽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귀한 자녀로 변화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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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탈출기 강좌(탈출기,민수기, 신명기)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들어가는 말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떻게 저 모양일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그 판단에는 나는 언제나 모세와 같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안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뜨거운 태양과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갈증과 굶주림은 다양한 불평과 불만을 만들어 냈듯이,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나의 삶도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오면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 순간, 탈출기는 기원전 어느 과거에 있었던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의 이야기였고,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적지가 있었지만 그 목적지를 바라보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나 또한 목적지가 있는 지상의 순례자이지만 방랑자처럼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순례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 주셨습니다. 불평과 불만의 길은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순례자는 확신을 가지고 목자를 따르며, 사랑과 배려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고통스럽겠지만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의로움과 정의를 실천하며,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모세와 함께 걷는 출애굽의 여정에서는 단순하고 강렬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너는 방랑자가 아니라 순례자이니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모세와 함께라면 방랑자가 아니라 순례자가 되어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목적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라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으며, 하느님 백성답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세와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하여 걸어가며 하느님 백성을 섬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모세의 손을 잡고 출애굽의 여정에 동참해 봅시다.

     

    이 책은 신자들이 다 알고 있는 말씀들을 엮어서, 개인 묵상과 구역에서의 구역모임 교재로, 본당의 초보적인 성경공부 교재로 만들어졌습니다. 함께 읽어나가다가 나눔이 나오면 함께 그 주제를 나눕니다. 나눔을 통해 성경 말씀을 일상의 삶 안으로 끌어들여 더욱 깊이 있게 말씀을 이해하게 되고, 다시 성경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각 과의 마지막에는 정리해 봅시다. 실천사항. 말씀으로 기도하기가 반복이 됩니다. “정리해 봅시다.”는 그 과의 내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심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실천사항은 심화시킨 내용을 삶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며, “말씀으로 기도하기는 그 기쁨을 하느님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은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말씀으로 기도하기입니다.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하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나누고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빠지게 되면 하느님의 말씀은 그저 머리로만 받아들이는 지식으로 머물게 되고, 그 지식은 내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에 대해서 말하지만 신앙인은 못되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하면서 중요하지만 힘든 부분이 묵상기도입니다. “묵상이라는 말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제대로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묵상해야 할지 모르고, 밀려오는 분심 속에서 상상이나 공상주님께 다가가려는 추리작용이 엉켜서 어떤 때는 묵상기도를 하면서 분심과 잡념 속에서 괴로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에 깊이 빠져들게 되면, 어느 순간 말씀 안에서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주님의 눈길을 체험하는 순간, 주님을 향한 사랑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그 사랑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면 묵상의 중심인 추리작용을 멈추고, 사랑 안에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되면 분심은 조금씩 줄어들고, “내 눈에는 주님만 보이고 주님 눈에는 나만 보이는 시간이 늘어나며 주님 향한 사랑만이 타오르는 순간을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의 나눔묵상기도의 큰 부분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와 함께 말씀을 나누는 그 형제자매의 입을 통해서 나에게 기쁨을 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묵상을 나누는 것은 나와 공동체에게 큰 이익이 됩니다. 그런데 마음을 열고 형제자매들의 나눔을 듣고, 그 형제자매의 나눔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기뻐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훈련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기뻐하게 만들어 주고,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배우는 것을 더 기뻐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런 훈련은 주님께 대한 나의 열정을 서서히 불타오르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실천사항들이 의미 있는 것들로 결정되며, 실천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홀로 주님 앞에 머물며 기도할 때는 자연스럽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 그 말씀 안에 머물며, 말씀으로 기도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훈련이 반복된다면 모세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섬김의 리더쉽을 살아가는 하느님의 귀한 자녀로 변화 될 것입니다.

  2. guest 님의 말:

    하나. 소명을 받은 모세

    (읽어야 할 말씀: 탈출1,1-4,17)

    1. 시작기도: 탈출3,7-12 모세가 소명을 받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9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10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11 그러자 모세가 하느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12 하느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이것이 내가 너를 보냈다는 표징이 될 것이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면, 너희는 이 산 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

    하느님께서는 오묘하신 방법으로 요셉을 이끄시어 야곱 집안을 기근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 정착하여 살아간 기간이 430여 년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조가 바뀌면서 요셉의 치적을 모르는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게다가 19왕조의 람세스 2세가 즉위하면서 히브리인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습니다. 람세스 2세가 아버지 세티 1세보다 한층 더 열정적으로 건설 사업을 추진하면서 히브리인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노예로 전락한 자신들의 삶과 강제 노동의 비참함속에서 하느님을 기억했고, 하느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마지막 희망인 하느님의 도우심만을 바라게 되었고, 고역에 짓눌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는 하느님께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2.1. 히브리인들에 대한 파라오의 정책

    통치자가 바뀌면 정책도 바뀌게 됩니다. “이집트를 구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파라오가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불행이 닥쳤습니다. 요셉의 치적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가 보기에는 점점 늘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아마 요셉의 치적을 알고 있었어도 그랬을 것입니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탈출1,9-10)

     

    이집트의 제15-16왕조의 왕들은 힉소스족이었습니다. 힉소스족의 왕조는 제17왕조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힉소스족에게 승리하여 신왕국 시대를 연 이집트의 제 17왕조의 아흐모세 1세는 델타 지역에서 힉소스를 몰아냈습니다. 그는 나라의 행정 체제를 재조직했고, 대형 신전 건축 사업들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 남아 있는 셈족은 언제나 정치적 불안요소였습니다. 특히 히브리인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은 이민족이 이집트 땅을 침략해 올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지역이었습니다. 만일 히브리인들이 침략자들과 연합하여 이집트를 공격하게 되면 큰 재앙이기에, 고센 땅에 히브리인이 머물고 있다는 것은 신왕국의 파라오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강제 노역

    파라오는 공사 감독들을 두어 히브리인들에게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파라오는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나일강 삼각주 동북부에 곡식을 저장해 둘 성읍(피톰과 라메세스)을 짓게 하였습니다.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이 히브리인들의 몫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이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히브리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남아 살해 정책

    파라오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히브리인들이 번성하자 히브리인들의 남아 살해 정책을 실행하였습니다. 파라오는 이집트인 산파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였습니다.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탈출1,16)

     

    파라오는 히브리인의 사내아이는 죽이라고 명령하였지만 산파들은 파라오에게 순명하지 않았습니다. 산파는 아이를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아이를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양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라오의 명령을 거부해야 합니다. 또한 산파들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파라오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산파들은 이집트 임금이 그들에게 분부한 대로 하지 않고 사내아이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여자의 이름은 시프라였고, 다른 여자의 이름은 푸아였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산파들의 대표였을 것입니다. 산파들은 하느님을 파라오보다 더 경외하고 두려워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시프라와 푸아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임금이라 하지만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만이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다 살려 주었습니다.”

     

    산파들은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당연히 행동으로 옮기는 삶, 그 삶은 나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산파들이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자 파라오는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탈출1,22)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억압 받으면 억압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을 이렇게 박해하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서서히 펼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는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고 거듭 약속해 주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것

    이유가 있으니 죽이려 하겠지만 생명을 어찌 그리 죽일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가 어찌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파라오는 히브리인 사내아이들을 죽이라 명령하지만

    산파인 시프라와 푸아는 파라오의 말에 따를 수가 없었다네.

    그녀들의 임무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 죽이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며,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일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네.

     

    두렵다 하더라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고,

    강요한다 할지라도 거부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양심에 따라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은

    두려움 속에서도 인간이 당연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라네.

    얼마나 괴로웠을까? 파라오의 명령을 받았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파라오의 질책을 들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니,

    그녀들의 행동은 의롭다 칭송할 수밖에 없으리.

     

    원치 않는다 하여 생명을 없애려 한다면

    그 기준을 세우는 이는 하느님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처음에는 태아였고 어린 아기였다네.

    아무 힘없는 존재였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기에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한 이를 만났다면 이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지 못했으리.

    원치 않는다 하여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살인자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이라네.

    잘 생겨야만이, 똑똑해야만이, 아무런 질병이 없어야만이,

    더 나아가 원해야만이 태어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리오.

    내 몸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자리할 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또 한명의 인간임을 왜 인정하지 못하는가?

    새끼를 잡아먹는 부모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이들이 종종 있으니

    시프라와 푸아의 의로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명의 길이 어디인지를 비추어 주는 것이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리…,

     

    생명은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인간은 생명의 관리자이지 생명의 주인이 아닙니다. 살인을 명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스파르타에서는 더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군국주의를 지향하던 스파르타는 아이가 태어나면 부족의 장로에게 보내졌고, 허약한 아이로 판명되면 국가를 위해서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 자리에서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려졌습니다. 건강한 아이만 키워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스파르타도 멸망하였습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됩니다. 시프라와 푸아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큰 빛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생명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 의로운 여인들을 바라보면서 생명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명의 관리자로서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나눔 1: 가끔은 어쩔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나 자신의 불합리한 행동을 변명합니다. 시프라와 푸아의 모습과 파라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산파들과 파라오와의 관계에서 예수님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무딘 마음을 질책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병자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문제가 아니었고, 예수님을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혹에 빠지면 교만과 옹졸함이 양심을 감싸고 있기에 사랑과 겸손이 양심을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유혹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앞날이 불안했습니다. 원치 않았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태어날 아기가 불쌍했습니다.

    다들 하는데 왜 저라고 못하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숨기고 싶었습니다.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구속당하기 싫었습니다.

    내 몸이니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러나 그 후로,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또 다른 보속을 하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그날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죄에 눌려 살게 됩니다.

     

    내가 흔들릴 때, 악마는 흔들리는 나에게 손을 내밀고

    나를 위로합니다.

    이번만 하고 싶은 대로 해봐.”

    그 위로의 손을 잡으면

    잠시 편안해지지만

    벗어날 수 없는 죄의 늪에 빠진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악마는 기뻐합니다.

     

    유혹…,

    넘어가면 언제나 후회하는 것입니다.

    산파들이 유혹을 이겨낸 것처럼, 그렇게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으니

    기도하며 하느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유혹은

    그저 지나가는 한 줌의 먼지와도 같아지게 됩니다.

     

  3. guest 님의 말:

    . 모세와 파라오

    (읽어야 할 말씀: 탈출 4,18-13,16)

    1. 시작기도: 탈출 12,1-14 파스카 축제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9 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모세와 파라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모세는 아론과 함께 이집트로 가서 백성의 원로들을 모아 놓고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구원의 말씀이 전해지자 백성의 원로들은 모세의 말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에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를 만나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큰 고통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닥쳤습니다. 파라오는 자유를 향해서 꿈도 꾸지 못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무거운 짐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너무 쉬웠다면 모세가 부르심을 받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시련은 주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그 시련 앞에서 무너지지 말고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또한 완고한 파라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파라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 또한 그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파라오의 완고한 모습은 나의 완고함을 변화시키는데 큰 거울이 될 것입니다.

     

  4. guest 님의 말:

     

    . 출애굽

    (읽어야 할 말씀: 탈출 12,37-15,21)

    1. 시작기도: 탈출 14,21-31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 땅으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22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23 뒤이어 이집트인들이 쫓아왔다. 파라오의 모든 말과 병거와 기병들이 그들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24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5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집트 병거들의 바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어, 병거를 몰기 어렵게 만드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 하고 말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위로 손을 뻗어,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로 물이 되돌아오게 하여라.” 27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날이 새자 물이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도망치던 이집트인들이 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 28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의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30 그날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해 주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인들을 보게 되었다. 31 이렇게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에게 행사하신 큰 권능을 보았다. 그리하여 백성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이집트 땅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하느님께서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모든 맏배들을 치시자 파라오는 마침내 항복하였습니다. 파라오는 그 밤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어서 일어나 내 백성에게서 떠나라.”고 말하였습니다. 자유와 해방이 선포되자 이스라엘 자손들은 라메세스를 떠나 수콧으로 향하였습니다. 수콧은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집합 장소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곳에서 모여 약속의 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아이들을 빼고, 걸어서 행진하는 장정만도 육십 만 가량이나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이국인들이 그들과 함께 올라갔고, 양과 소 등 수많은 가축 떼도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빵 반죽이 부풀기도 전에, 반죽 통째 옷에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산 기간은 사백삼십 년입니다. 그날 밤, 주님께서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려고 밤을 새우셨기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도 대대로 주님을 위하여 이 밤을 새우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갈대 바다를 통해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모세는 이집트를 떠나면서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요셉이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창세50,25)라고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며 일렀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요셉의 마지막 유언을 실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수콧을 떠나 광야 가장자리에 있는 에탐에 진을 쳤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장엄합니다. 또한 불기둥이 광야에서 불을 밝힐 때, 백성들은 경외심과 함께 황홀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특히 아카바의 붉은 바위산들을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비출 때는 넋을 잃고 바라보며 하느님의 전능을 찬미하였을 것입니다.

     

  5. guest 님의 말:

    . 광야에서의 생활

    (읽어야 할 말씀: 탈출 15,22-18,27)

    1. 시작기도: 탈출16,1-8 만나와 메추라기

    1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3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5 엿샛날에는, 그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날마다 모아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 6 그리하여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 말하였다. “저녁이 되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 주님이심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7 그리고 아침이 되면, 너희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주님께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불평하느냐?” 8 모세가 다시 말하였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저녁에는 먹을 고기를 주시고, 아침에는 배불리 먹을 빵을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주님께 불평하는 소리를 들으셨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냐? 너희는 우리가 아니라 주님께 불평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광야에서의 생활

    이스라엘 백성은 갈대 바다를 건너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기쁨과 희망은 광야의 뜨거움과 갈증 속에서 서서히 불평과 불만으로 변해갔습니다. 갈증과 굶주림을 겪게 된 백성들은 계속해서 모세를 괴롭혔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오늘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나도 일상 삶 안에서 조금만 불편하거나 내 생각이랑 맞지 않으면 쉽게 감정을 표현하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판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쏟아부어 주셨듯이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나에게 당신 사랑을 쏟아부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탈출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통해서 나를 보게 만드시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오늘도 나에게 힘과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6. guest 님의 말:

    다섯. 십계명

    (읽어야 할 말씀: 탈출 19,1-20,21)

    1. 시작기도: 탈출 20,1-17 십계명

    1 그때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 2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 3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4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 5 너는 그것들에게 경배하거나, 그것들을 섬기지 못한다. 주 너의 하느님인 나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조상들의 죄악을 삼 대 사 대 자손들에게까지 갚는다. 6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 7 주 너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당하게 불러서는 안 된다. 주님은 자기 이름을 부당하게 부르는 자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는다.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 하여라. 10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과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11 이는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 12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 살인해서는 안 된다. 14 간음해서는 안 된다. 15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16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17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십계명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백성이 당신의 사랑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지킴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계명을 지키는 삶을 통해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십계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을 바탕으로 주어졌기에, 긴 시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도 쉽게 지킬 수 있는 기본적인 삶의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통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의무와 권리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십계명이 지켜지는 사회는 이집트의 노예사회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사회요, 안정과 평화가 지속되는 사회입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인간의 기본 권리인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십계명을 받은 하느님 백성의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십계명은 하느님의 큰 선물입니다.

     

    그런데 계명은 선포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지켜야 할 계명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분명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모세는 계명을 스스로 지키며 이 백성이 지킬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모세를 본받아 나 또한 스스로 지키며, 내 가족과 우리 공동체가 주님의 계명 안에서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7. guest 님의 말:

    여섯.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들(계약의 책)

    (읽어야 할 말씀: 탈출 20,22-31,18)

    1. 시작기도: 탈출 23,1-9 정의 실현에 관한 법

    1 너희는 헛소문을 퍼뜨려서는 안 된다. 악인과 손잡고 거짓 증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2 너희는 다수를 따라 악을 저질러서는 안 되며, 재판할 때 다수를 따라 정의를 왜곡하는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3 또 힘없는 이라고 재판할 때 우대해서도 안 된다. 4 길을 잃고 헤매는 너희 원수의 소나 나귀와 마주칠 경우, 너희는 그것을 임자에게 데려다 주어야 한다. 5 너희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에 눌려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을 경우, 내버려 두지 말고 그와 함께 나귀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 6 너희는 재판할 때 가난한 이의 권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7 그리고 거짓 고소를 멀리해야 한다.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나는 악인을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 너희는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뇌물은 온전한 눈을 멀게 하고, 의로운 이들의 송사를 뒤엎어 버린다. 9 너희는 이방인을 학대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으니, 이방인의 심정을 알지 않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할 규정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규정들을 지켜야 합니다. 제단에 관한 법, 종에 관한 법, 폭력에 관한 법, 상해에 관한 법, 절도에 관한 법, 손해 배상법, 처녀를 범한 자에 관한 범, 그 밖에 사형에 처할 죄인, 약자 보호법, 하느님을 섬기는 몇 가지 법, 정의 실현에 관한 법,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 연중 삼 대 축제에 관한 법, 가나안 땅 입주에 관한 약속과 경고 등,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규정들을 온 마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규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규정을 바탕으로 서로가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살아가면 평화롭고 기쁨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규정해 놓고, 서로 함께 지켜 나갈 때 공동체는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반대로 규정들에서 벗어나는 순간 공동체에는 분열과 갈등이 생겨나고 평화는 사라지게 됩니다. 하느님 백성은 이러한 규정들 안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법은 구속이 아니라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8. guest 님의 말:

    일곱. 하느님과의 계약

    (읽어야 할 말씀: 탈출 32,1-40,38)

    1. 시작기도: 탈출 34,5-11하느님께서 나타나시다

    5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7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계약을 맺는다. 나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어떤 민족에게서도 일어난 적이 없는 기적들을 너의 온 백성 앞에서 일으키겠다. 너를 둘러싼 온 백성이 주님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할 이 일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11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잘 지켜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하느님과의 계약

    모세가 하느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해 성실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는데, 백성들은 아론을 협박하여 엉뚱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에 진노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며, 이 백성을 대신해서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배신하고 불평하는 이 백성을 사랑으로 용서하시며 다시 계약을 맺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선포된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을 성실하게 지키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제 하느님 백성이 섬겨야 할 대상은 금송아지가 아닙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을 지키며 하느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모세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백성들과 함께 성막을 세워 봉헌하였습니다.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느님과 함께하며, 구름이 성막에서 올라갈 때마다 길을 떠났습니다.

     

    나는 오늘도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날마다 순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물론 금송아지도 언제나 내 옆에 있습니다. 내가 만일 이 순례의 여정 안에서 하느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순례의 길은 모세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 이 순례의 길을 걸어갈 때, 나는 하느님과의 계약에 더욱 충실하게 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한 나의 여정이 험난할지라도 길을 잃지 않고 그 목적지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9. guest 님의 말:

    여덟. 하느님의 종 모세

    (읽어야 할 말씀: 민수11,24-17,28;21,4-9;신명 31,14-34,12)

    1. 말씀읽기: 신명 32,48-52 모세가 느보 산으로 올라가라는 명령을 받다

    48 바로 그날에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49 너는 예리코 맞은쪽,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맥의 느보 산으로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소유하라고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아라. 50 그리고 너의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간 것처럼, 너도 네가 올라간 산에서 죽어 선조들 곁으로 가야 한다.

    51 그것은 너희가 친 광야에 있는 므리밧 카데스 샘에서, 이스라엘 자손들 한가운데에서 나를 배신하였고, 이스라엘 자손들 한가운데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52 너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을 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 들어가지는 못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 하느님의 종 모세

    모세는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섬기는 영도자(領導者)였습니다. 그러나 그 섬김의 삶은 모세에게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백성들은 기쁨과 희망이 있을 때는 잘 따르는 듯 했지만,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즉시 불평과 불만을 모세에게 터트리고, 원망과 분노를 쏟아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섬김의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섬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삶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8,34)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삶을 잘 보여 주었습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보속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이 백성을 돌보며, 그들과 운명을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도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죽어야 하는 모세를 떠올려본다면 사랑과 섬김의 삶은 눈물의 길이요 온전한 의탁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그렇게 응답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모세를 본받아서 내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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