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8/24)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다. 그는 필립보 사도가 예수님께 인도하였던 나타나엘이라고 여겨진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거짓이 없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요한 1,47 참조). 교회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소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와서 보시오.”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다. 그의 진실함과 정직성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타나엘은 훗날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옵니다. ◎ 알렐루야.
    복음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에 주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오니, 그의 전구로 저희를 자애로이 도와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내며 저희가 영원한 구원의 보증을 받았사오니, 이로써 저희에게 현세와 후세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우정이 두터운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작은 금덩이를 줍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둘은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배가 물 한가운데 왔을 때 금덩이를 가지고 있던 친구가 금덩이를 슬그머니 물속에 버렸습니다. 그제야 옆 친구가 놀라며 그 귀한 것을 왜 버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우정에 금이 갈까 봐 버렸다고 답했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과 통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 없이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려고 비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비워야 할 때를 알고 대처한다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와서 보시오.” 필립보의 이 한마디에 나타나엘은 자신의 뜻을 비우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질보다는 양을 내세우고 있는 요즈음 세상입니다. 무엇이든 많아야 하고, 숫자가 높아야 안심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교회마저 그러한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비우기보다는 닥치는 대로 채우려 든다면 어찌 주님의 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우정을 위하여 금덩이도 마다한 동화 속의 친구가 그립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베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Op.11(편곡 Agnus Dei : 천주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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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8/24)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로 갈릴래아 카나 출신이다. 그는 필립보 사도가 예수님께 인도하였던 나타나엘이라고 여겨진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거짓이 없는 참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하셨다(요한 1,47 참조). 교회 전승에 따르면, 바르톨로메오 사도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와 소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와서 보시오.”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을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다. 그의 진실함과 정직성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타나엘은 훗날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옵니다. ◎ 알렐루야.
      복음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5-51 그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에 주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오니, 그의 전구로 저희를 자애로이 도와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리라.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을 지내며 저희가 영원한 구원의 보증을 받았사오니, 이로써 저희에게 현세와 후세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우정이 두터운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작은 금덩이를 줍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둘은 서로 말이 없었습니다. 한참을 가다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배가 물 한가운데 왔을 때 금덩이를 가지고 있던 친구가 금덩이를 슬그머니 물속에 버렸습니다. 그제야 옆 친구가 놀라며 그 귀한 것을 왜 버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우정에 금이 갈까 봐 버렸다고 답했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과 통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 없이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려고 비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비워야 할 때를 알고 대처한다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와서 보시오.” 필립보의 이 한마디에 나타나엘은 자신의 뜻을 비우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질보다는 양을 내세우고 있는 요즈음 세상입니다. 무엇이든 많아야 하고, 숫자가 높아야 안심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교회마저 그러한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비우기보다는 닥치는 대로 채우려 든다면 어찌 주님의 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우정을 위하여 금덩이도 마다한 동화 속의 친구가 그립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베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Op.11(편곡 Agnus Dei : 천주의 어린양) 
    
    
    
    
    
    
    
    
    

  2. user#0 님의 말: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1. 말씀읽기 : 요한1,41-51

    오늘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바 있는 그분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분은 요셉의 아들로서 나자렛 출신 예수입니다.” 그러나 나타나엘은 믿지 않습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수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보잘 것 없는 동네에서 어떻게 메시아가 나오시겠습니까? 하긴 요즘 시골 출신들 별로 알아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겠죠. 뭐 예루살렘이나 뭐 특별한 도시에서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람이라면 좀 알아줄까. 그런데 필립보가 아주 멋있는 말을 합니다. “와서 보시오”

    설명하지 않습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말에 반신반의하면서 그를 따라 나섭니다. 촌동네에서 무슨. 그런데 나타나엘은 예수님을 만나서 그만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 베드로와 안드레아 역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생 안드레아가 예수님을 만나고 먼저 자기 형에게 알렸습니다.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소!” 안드레아는 기쁨에 가득 차 이 기쁜 소식을 자기 형에게 먼저 알렸던 것 같습니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안드레아는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리고 갔습니다. 안드레아는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감으로써 자신이 고백한 바를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게파라고 부르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의 모든 것을 한 눈에 보신 것입니다.

    나 또한 내가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내 가족을, 가까운 이웃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눈 여겨 보고 계실 것입니다. 지금 내가 그것을 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43 이튿날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그때에 필립보를 만나시자 그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를 부르십니다. 필립보는 어떤 변명을 하지도 않고 그냥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는 방법은 참으로 묘하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즉 “나를 따라 올 거야?” “나를 따라 오면 이런 저런 것을 해 줄 수 있는데…” 이런 것이 없습니다. 당연히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도 당연히 요구하십니다. 나는 그저 “예”하고 응답하고 따라야 합니다.

    44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고향인 벳사이다 출신이었다.

    필립보, 안드레아, 베드로 사도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메시아를 만났고, 따르게 됩니다. 필립보는 ‘말의 친구’,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벳사이다 출신이고, 스케디아 지방에서 전교하다가  78년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셨습니다. 유해는 로마의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45 이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나타나엘은 사도들의 목록에서 언제나 필립보와 나란히 기록되어 있는 바르톨로메오와 같은 인물입니다.

     바르톨로메오는 ‘톨마이의 아들’이란 뜻으로 ‘높은 곳에 계시는 분의 아들’ 또는 ‘물을 높은 곳에 바치는 분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바르톨로메오는 성(姓)이고 이름은 아마 ‘나타나엘’인 듯 합니다.

     필립보는 나타나엘을 찾아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해줍니다. 필립보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립보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예사롭게 믿고 있던 그 예수님이 바로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글에 기록되어 있는 분”이라고 간단하게 나타나엘에게 알려 줍니다.


    46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나타나엘은 나자렛 시골 동네를 무시합니다. 시골에서 특별한 사람이 나올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번듯한 교육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학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타나엘은 “나자렛에서 무슨 신통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하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목수의 아들이라고만 생각되어 온 그 예수님이, 곧 예언자들이 알려 준 메시아아록 쉽게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권고합니다. “와서 보시오”. 필립보는 예수님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마치 도덕경 1장의 구절을 그냥 자연스럽게 道라는 것은 道라고 말할 때 道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 설명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립보는 와서 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도 비 신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전해주기 보다는 “와서 보시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미사에 참례하면서 기뻐하는 모습, 평안해 하는 모습,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모습, 옆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와서 기쁨을 얻지 않겠습니까?


    47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와 동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타나엘은 참으로 현명합니다. 그저 예수님을 어떻게 해서든지 박해하려고 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의 마음을 들여다 보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나 또한 예수님께로부터 이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정말로 참된 신앙인이구나!”하는 말씀을…,

    48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조금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나타나엘은 깜짝 놀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열심히 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하고 있는지를 아셨고, 나타나엘 또한 그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면서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하고 예수님께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욱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필립보가 너를 찾아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앉아서 천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능력에 나타나엘은 놀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내 머리카락 수까지도 세어 두셨다는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늘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 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놀랄 것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하셨으니…,


    49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나타나엘은 그동안의 자신의 불신과 판단을 모두 버립니다. 그리고 주님께 고백합니다.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그런데 나타나엘이 예수님에 대해서 더 알았더라면 이렇게 고백하겠지요.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온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50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십니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나타나엘은 더 큰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치유하시는 능력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수님의 승천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더 큰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51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야곱의 사다리를 떠 올리게 됩니다. 야곱은 베델에서 꿈에 하늘에 닿는 신비스러운 사다리에서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그 광경을 보았지만 이제 제자들은 장차 주님이신 예수님께 하늘이 열려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하느님과 대화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주변에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맴도셨고, 하늘에서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 말씀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이 지상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던 것 까지도 알고 계신 주님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2. 주님께서는 나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느껴지신 때가 있습니까?

  3. user#0 님의 말: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말씀에 저도 나타니엘처럼 당신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헬레나는 거짓이 없다
    헬레나는 나를 사랑한다
    헬레나는 진정한 신앙인이다

    주님!
    저는 언제쯤이면 나타니엘 처럼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당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저는 언제쯤이면 나타니엘 처럼 당신께 인정 받을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거짓없는 진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저의 뜻이 아닌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나타니엘처럼………
    자신의 판단이 잘못 된 것임을 인정하며 거짓이 없는 진실한 신앙인
    헬레나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나타니엘처럼……
    저의 머리카락 수까지 세어놓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나타니엘처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저도 나타니엘처럼 당신께 거짓없는 진실한 신앙인헬레나로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도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멘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묵상하며

    .

    211.224.229.173 요한신부: 헬레나 자매님은 거짓이 없습니다…헬레나 자매님은 멋집니다.. [08/25-10:07]

  4. user#0 님의 말:

    “와서 보시오”
    이말을 묵상하다보니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자식한테 뭔가 이해를 시키려고 하는데 말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실때
    흔히 쓰시는 말씀이지요.
    와서 보라고…
    가보면 대부분 건강에 좋다는 식품이나 의료기구들이지요.
    그걸 선전하는 사람들의 언변이란…
    먹고살기 위해서 입에 거품이 납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 보지요.
    직접 듣다 보면 그말에 넘어가 사기도 합니다.

    이렇게
    와서 보라고 권할때
    보는 즉시 주님한테 넘어가야 하는데…
    제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입은 건강식품 판매원보다 못하니…

    지금 삶을 보면
    뭘 제대로 몰랐던 어렸을때 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그땐 친구들을 꼬셔서 성당으로 몰고 다녔는데 말입니다.
    친구엄마한테 몽둥이로 맞아가면서도
    매일마다 성당가자고 불러 냈었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땐 혼자가기 싫어서
    친구들을 꼬셨나 봅니다.

    맞을까봐 무서워 벌벌 떨면서도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성당을 다녔습니다.
    그때 다녔던 친구들
    모두가 열심한 신자가 됐지요.
    이렇게 해야 하는데…

    오늘부터라도
    이웃집 문을 두드려 봐야 겠습니다.
    말로 못하면
    파라도 까주면서…
    부침개라도 나누면서…
    아이들 까까라도 사주면서…
    직장에 가서는
    꼴보기 싫은 사람 커피라도 한잔 사 주면서
    꼬셔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와서 보시오”
    당당하게 초대해야 겠습니다.

    요한신부: “와서 보시오!” 참 좋은 말입니다. 그것 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여 줄것이 없을 때는 참 어렵습니다…ㅎㅎ 좋은 하루 되세용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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