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 마귀들린 사람을 치유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루카 4,31-37
2. 말씀연구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체 하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을 모르지만 예수님을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그분을 알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으며, 그분을 전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습니까?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나자렛은 언덕 위에 있었지만 카파르나움은 호숫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려가시게 되는 것입니다. 고향 나자렛으로부터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집회가 열리는 회당에서 가르치시면서 성경을 새로운 의미로 풀이하여 주셨는데 그 가르치심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말을 인용하시지 않으십니다. “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여라.”이렇게 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런 소리를 들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하여라.”굉장히 권위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로서 군중들을 가르치셨습니다.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백성들을 가르치던 사람들은 율법학자들이었습니다. 그들과는 차원이 달랐기에 사람들은 놀라고 있습니다. 마치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과, 자신이 연구하여 발표하는 것이 엄청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잠깐 율법학자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원전 450년경 예루살렘에서 활약한 에즈라를 율사의 시조로 꼽습니다. 예수님 시대 율사들은 대부분 바리사이파에 속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예수님의 적수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파 율사들 가운데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가 양대 산맥을 이루어 맞섰으나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부터는 힐렐 학파가 우세하게 되었습니다. 율사들은 주로 규범(할라카)과 사화(하가다)를 익히고 전하기를 업으로 삼았습니다. 즉, 율법을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는 결의론을 전개하고 송사를 판결했습니다(할라카).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전설을 학당이나 회당에서 가르쳤습니다(하가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위 있는 말씀에 행동을 동반하셨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에게 깃든 그 영은 사람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악마였습니다. 그런데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악령은 인간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악령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인간의 말로가 어떠한 것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서 내가 놀래야 하는 것은 “회당에는 더러운 귀신의 영을 지닌 사람이 하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을 찬미하려고 모인 회당에도 더러운 영을 지닌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게 나는 아닐까요?
열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기를 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신앙가들이 사기를 치고, 이용하려 합니다. 입으로만 살려고 합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신앙인으로 살지 못하면 그렇게 유혹하는 사람들의 말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다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 그 악령 들린 사람에게 외치도록 합니다. 악령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마귀는 발악을 합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알고 있기에 예수님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귀는 지금 이 상황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부르는 이유는 신앙을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필립피 2,9-11)
이 구절은 내가 예수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웃어보자고…
예전에 아주 유명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이론을 강의했고,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사진 기술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서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얼굴은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학자가 어느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너무 심하게 열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운전기사가 그 학자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수님! 제가 강의를 할까요?”
“아니! 자네가 뭘 안다고 강의를 하겠나! 쿨럭 쿨럭…”
“제가 교수님 모시고 강의 다닌 게 몇 년인데요. 이젠 교수님 강의 내용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학자는 운전기사의 자신감을 믿고서 한번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강단에 선 운전기사는 그 학자와 똑같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강의를 듣던 학생이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설명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그 운전기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은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단 말인가? 그건 내 운전기사도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야. 가서 저 뒤에 앉아 있는 내 운전기사에게 물어보게. 그래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뒤에 있던 학자는 그 기사의 재치를 보고 크게 감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낫군……,”
(그런 면에서 보면 옆에 있는 사람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예수님께서는 그 부정한 영의 신앙 고백을 경멸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믿음에는 행동이 따라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니기에 그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하느님을 진실 되게 섬기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17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8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19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20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실천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 “(야고보 2,17-20).
신앙 고백에는 언제나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생활이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자 악마는 그를 한가운데에 쓰러뜨린 다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그로부터 떠나갔습니다. 마귀는 저항하여 외쳐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마귀는 상처를 입힐 힘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하신 분이셨으며, 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거룩하신 분, 완전하신 분, 지극히 힘 있는 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악마는 복종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복종하고 있습니까?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라고 서로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마귀를 쫓아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예수님 안에서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보지 못했고, 놀라기만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저이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저 분께서”도 아니고 “스승님”도 아닙니다. 그들은 놀랐습니다. 하지만 아직 예수님께 믿음을 드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못하고 있습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해야 될 말을 다르게 하고 있는 나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모습을 바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사방으로 퍼져 나갑니다. 나 또한 예수님의 놀라우심을 전해야 합니다. 내 입을 통해서, 내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3.나눔 및 묵상
1. 내 삶 안에서 나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는 알아 뵙고 있습니까?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2.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놀랐습니다. 신앙생활 하시면서 나는 어떤 때 놀랍니까? 그리고 신앙의 행동 중에 어떤 행동을 보고 놀랍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