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루카 5,1-11
2.말씀연구
허탕친 어부들이 있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람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저도 낚시를 가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올 때가 많은데 이때는 이런 말씀을 인용해서 핑계를 대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좌우지간 오늘 어부들이 예수님께 잡히게 되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1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고, 군중은 그분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였다.
회당과 호숫가. 어느 곳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좋은 곳일까요? 물론 회당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회당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안다는 사람들. 똑똑하다는 사람들. 백성의 지도자라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회당은 좁아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호숫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많은 이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나 또한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2 그분께서는 호숫가에 대어 놓은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거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씻고 있는 것을 보십니다. 그런데 그 어부들은 밤새 허탕 친 어부들입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이제 그 허탕 친 그물을 씻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그 두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그에게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신 다음, 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배는 시몬의 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시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시몬의 집에 계셨었고, 그의 장모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손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배에서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래서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뭍에서 조금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을 하십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알고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에서 힘을 느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이제 시몬의 배는 예수님을 모신 성전이요,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제대요, 세상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기 위한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시몬이 부르심을 받자 곧 예수님을 따랐다면, 우리는 이것이 조심스럽게 준비되어 있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힘찬 말씀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인간을 붙잡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루카복음에서 다른 공관복음서들과 달리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또 한 가지 점은 부르심과 전교사명의 예고에 대한 전 장면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베드로의 ‘우위성’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기 위해 택하신 것이 그의 배입니다(3절). 예수님께서 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라고 명한 것도 베드로입니다(4절). 밤새도록 헛수고를 한 후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을 선언한 장본인도 베드로입니다(5절). 그리고 또한 기적이 있은 뒤 놀라움에 차서(9-10절 참조)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도 베드로입니다.“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오(8절).”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에 앞서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 것도 베드로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10절).” 또한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루카 복음사가가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좀더 나중에 붙여주시게 된(루카 6,14 참조) 베드로라는 이름을 앞서 사용하고 있는 점입니다(8절). 이 모든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그리스도의 구원계획 안에서 베드로가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역할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리고 언제까지나 항상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시고 그 기적의 고기잡이를 행하시는 것은 베드로의 배 안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베드로 없이는 전교사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신교 사람들이 베드로(교황)를 교회일치를 이루는데 있어서 제일 큰 ‘장애물’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오히려 루카복음의 내용에 따르면 ‘다른 또 하나의 배는 베드로를 통해 이루어진 기적적인 고기잡이의 도움으로 가득 채워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두 배가 다 ‘가라앉을 정도가’(7절)됩니다. 모든 사람이 기뻐하고 만족할 만큼 풍성한 고기잡이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베드로의 배를 향해 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명령은 베드로를 군중들 및 배에 타고 있던 다른 어부들과 갈라놓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우선권을 주셨습니다. 세 개의 그물로 된 긴 저인망(4-5백 야드 정도:1야드는 1피트의 세 배로 91.44cm에 해당)은 깊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데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그물을 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네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은 베드로에게는 선택이요, 유혹의 기회가 됩니다.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지금은 고기가 나올 시간이 아니기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예”해야 할지, 아니면 “안 됩니다. 방금 그물을 씻었는데 이젠 쉬어야 합니다.”라고 말할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5 시몬이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고기잡이들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 시간에 그물을 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었습니다. 고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밤을 온통 지새우면서도 한 마리도 건져 올리지 못하였다면 하물며 아침나절에 고기가 잡힐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부르시고 선택하실 때에 조건 없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인간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지녔던 믿음과 희망이었으며, 아브라함이 믿은 것도 이러한 희망에서였습니다.
베드로는 아무런 표징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못 잡으면 보상 해 줘유!” “우리가 고기 잡는 것을 무엇으로 보증하시겠어요?”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표징들로써 인간의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십니다.
6 그렇게 하자 그들은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명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통해 헛된 행동이 아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말씀’의 창조적이고도 전폭적인 ‘힘’에 의해서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씀을 선포하시는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믿는 베드로의 이중적 차원에서 이루어집니다. 만일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반신반의하면서 믿지 않았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기적을 행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믿지 않고, 원치 않았기에 기적을 베풀지 않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 점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협력하기 위한 복음화 활동의 근원성을 깨닫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즉 복음이 선포되고 믿어짐으로써 구원이 가능케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복음은 그것을 선포하는 사람에 의해 철저히 믿어지고 생활되어야 하며 그 다음에 그것을 듣는 사람에 의해서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오직 그렇게 될 때에만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사람 낚는 고기잡이는 풍성한 결과를 가져오는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서 아무리 엄청난 일을 하고 싶어 하셔도, 내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침해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나를 억지로 행하게 만들지는 않으십니다. 내가 예수님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할 때, 나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7 그래서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대박입니다. 두 척의 배가 가라앉을 정도의 고기.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비록 처음에는 무모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말씀에 “예”하고 응답한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8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시몬은 예수님에게서 발생한 하느님의 힘, 곧 기적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체험은 그에게 자신이 죄 많고 보잘것없는 자라는 의식을 심어 주었습니다. 시몬은 지극히 거룩하시고 전적으로 “다르신 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시몬은 예수님께 탄복하여 마음이 끌렸으나 자기는 죄 많은 자라는 의식 때문에 예수님을 멀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함으로써 자신에게 관련된 이 기적 체험의 장엄함을 표현하였습니다.
루카는 “시몬”이라는 이름을 단독으로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이름에 “베드로”, “ 바위” 라는 이름을 대동시킵니다. 시몬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믿음의 입장을 표명한 바로 그 때에,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마태 16,18)라는 약속과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다오”(22,32)라고 하신 예수님의 요청, 그리고 그가 받은 사목직(요한 21,15이하)의 기초가 놓여진 것입니다.
9 사실 베드로도,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자기들이 잡은 그 많은 고기를 보고 몹시 놀랐던 것이다.
그런데 저 같으면 “예수님! 이번에는 어디에다 그물을 던질까요? 우리 오늘부터 동업하지요? 50대 50으로 할까요? 아니면 예수님 7,저 3 해도 됩니다. 아마 뻔뻔스럽게도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참으로 우리 신앙의 모범이십니다. 부족한 것을 인정할 줄 아는 신앙인의 모범이십니다. 그리고 청하기만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줄 아는 신앙인의 모범이십니다.
10 시몬의 동업자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그러하였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뜻하지 않게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놀라고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그들 외에 적어도 한 사람이 더 있었음이 틀림없지만 루카는 다만 이 세 사람에 대해서만 언급합니다. 시몬, 야고보, 요한, 이 세 사람은 예수님에 관한 지극히 비밀스런 계시들을 목격한 증인들로서 특권을 누린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소생시키셨을 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때, 그리고 예수님께서 동산에서 고통에 잠기셨을 때 예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갈릴래아에서의 예수님의 초기 활동들은 시몬 베드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리래아의 변경 지대인 겐네사렛 호숫가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환영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회당에서의 악령 추방, 베드로의 장모 치유, 그리고 베드로의 집에서 저녁 때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은 모두 고기잡이 기적으로 집약되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자신의 모든 옛 환경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섬기고 예수님의 능력에 찬 말씀에 봉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라 하시면 하면 됩니다. 내가 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있는 아이가 두려워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11 그들은 배를 저어다 뭍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철저히 믿어진 복음만이 생활을 변화시킵니다. 마치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여기서는 명백히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안드레아에게 있어서 일어났던 것처럼 생활을 변모케 합니다. 이에 대해 루카복음사가는 오늘 복음 끝에서 강조합니다.“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 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11절).” 새로운 생활의 시작은 예수님과 역사가 매순간순간 보여줄 미래를 향해 자신을 투신하기 위해 과거와 단절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과거의 고기잡이 기술은 그것이 요구하는 신체적인 자질 외에 윤리․도덕적 자질 즉 인내, 강인성, 주위의 위험에 대처할 능력, 희생정신 등으로 변모되어 남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모범적 예” 입니다.
“따른다는 것은 부르신 분이 정해놓은 길을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르심을 받고 행한 첫 걸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그의 과거 생활과 갈라놓습니다. 이렇게 해서 따르라는 부르심은 즉시 새로운 상황을 만듭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전에 있던 삶의 방식은 버려야 합니다. 그물도 버리고, 배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따르겠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순명하는 정신으로 예수님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순명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부르심에 결코 응답할 수가 없으며, 참된 신앙생활도 불가능하게 됩니다.
내가 가진 그물(아집, 교만, 위선, 게으름, 욕심, 불신, 불순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봅시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어 봅시다.
3. 나눔 및 묵상
1.내가 밤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 사도였다면,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었다면 나는 그물을 던졌을까요? 내가 밤새 허탕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면 베드로 사도가 그물을 치려고 할 때 어떻게 했을까요? “한번 해보자!” 라고 했을까요. 아니면 “야! 어려워 죽겠다. 보나마나 뻔한데, 그리고 예수님은 고기 잡는 것 모르시잖아. 예수님 좀 설득해봐. 난 못해!” 했을까요?
2. 버리고 떠난다는 말씀을 묵상해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나를 부르시고, 나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 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