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독실한 어머니에게서
종교 교육을 받으며 자라
수도자들과 함께 엄격한 극기 생활을 하였다.
사제가 되어 주로 설교자로 활동하던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
임명된 뒤 특히 교회의 쇄신에 전력을 쏟았다.
그러나 로마 황실의 반대로 두 차례의
유배 생활을 한 끝에 407년 세상을 떠났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신앙을 해설하고
믿음의 실천을 독려하는 저술을 많이 남겼다.
탁월한 설교로 ‘금구’(金口: 황금의 입)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설교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현실적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라고 하신다.
또한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말라고까지 하신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삶을 사셨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를 기억하며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아 주시고, 그를 따라
저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로다.
영성체 후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를 기억하며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주님의 사랑 안에서 저희가
신앙을 용감히 고백하며, 주님의 진리를 충실히 증언하게 하소서.
우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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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9/13)
354년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태어난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독실한 어머니에게서 종교 교육을 받으며 자라 수도자들과 함께 엄격한 극기 생활을 하였다. 사제가 되어 주로 설교자로 활동하던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주교로 임명된 뒤 특히 교회의 쇄신에 전력을 쏟았다. 그러나 로마 황실의 반대로 두 차례의 유배 생활을 한 끝에 407년 세상을 떠났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신앙을 해설하고 믿음의 실천을 독려하는 저술을 많이 남겼다. 탁월한 설교로 ‘금구’(金口: 황금의 입)라는 별칭을 얻은 그는 설교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현실적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가르침이다.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라고 하신다. 또한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말라고까지 하신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삶을 사셨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7-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를 기억하며 바치는 예물을 기꺼이 받아 주시고, 그를 따라 저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라.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로다.
영성체 후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를 기억하며 성체를 받아 모셨으니, 주님의 사랑 안에서 저희가 신앙을 용감히 고백하며, 주님의 진리를 충실히 증언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우리가 정말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주님께서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추측컨대, 주님께서는 이웃 사랑의 답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데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해야 완벽할 수 있는지 그 답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타인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을 때, 비로소 이웃 사랑의 완벽한 실천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완전한 사랑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렵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식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부 사이에서는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천사의 행위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길을 다시 결심한다면 그는 이미 천사로 변신한 것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1. 말씀읽기:루카6,27-38
2. 말씀연구
자비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분명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누가 내 뺨을 쳤을 때 다른 한쪽마저 돌려대 주는 사람, 겉옷을 빼앗겼을 때 속옷마저 내어 주는 사람.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미워하고 나를 박해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남을 비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려운 말씀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분명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연습을 한번 해 봅시다.
27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제자들의 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제자들을 중상하고 박해하는 자들과 제자들 개개인의 원수들까지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복을 빌어 주며 변호해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며,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학대하고 증오하며 저주를 내리는 그 사람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단지 자신이 당한 모욕을 용서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용서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면 그의 원수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증오를 선행으로써 갚아야 한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단지 자신이 당한 모욕을 용서하는 문제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용서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십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면 그의 원수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해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증오를 선행으로써 갚는 사람입니다.
완전한 사랑의 특수한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수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의를 거스르는 폭력에 저항하지 말고, 탄식하지 말고 참고 견디며, 자기 권리까지도 희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명하신 계명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권고입니다. 덧셈을 못하는 아이에게 미분 적분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사랑으로 지도되어야 합니다. 이 사랑의 덕의 완성을 바란다면 제자들은 이 세상의 명예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29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이 말씀을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에서 따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른 뺨을 때린 다는 것은 오른손잡이들에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손등으로 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치를 당하고 속으로 “1818”욕을 하는 것 보다는 “그래! 원한다면 왼쪽도 대줄 수 있다. 자 때려 보거라”하는 것이 훨씬 더 주도적입니다.
겉옷을 빼앗은 사람에게 “그래 속옷도 필요할 테니 이것마저 가지고 가거라.”라고 한다면 “얼씨구나”하면서 가지고 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30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줄 수는 없지만 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들, 재주들, 시간, 물질적인 것들. 줄 수 있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지만 그것들을 나를 위해서만 사용하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봉사를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산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하는데, 너는 왜 하지 않느냐고 말해서도 안 되고, 나보다 잘한다고 질투해서도 안 됩니다. 나의 봉사를 통해서 다른 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편안해 질 수 있습니다.
31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은 사랑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 방식대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고급 양주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이유식 대신 술을 마시게 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남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기를 바라면서 남에게는 내가 해 주고 싶은 대로 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이방인이 랍비 샴마이(기원전 30년경의 사람)에게 면회를 청하러 왔습니다. “나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곧 당신은 내가 한 쪽 발로 서 있는 동안에 모든 율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샴마이는 화를 내며 그 사나이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랍비 힐레르는 그 사나이를 제자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다. 다른 것은 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가서 이같이 가르쳐라.”
32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우리에게는 벗을 사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는 원수를 사랑하는 의무보다도 앞선 것이고 또한 큰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가 우정을 우정으로 갚는 것으로 그친다면, 초자연적 샘으로 말미암아 덕을 길러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실 보수, 곧 영원한 생명을 받을 가치는 없습니다. 제 친구를 사랑하는 것만으로써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더라도 그런 사랑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3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당연한 것을 했다고 해서 칭찬받을 것은 없습니다. 가끔은 평화의 인사를 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 아는 사람에게만 하는 인사,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밖에 나오면 아는 체도 안하는 나의 모습. 어찌 보면 이 말씀은 성당에서 내가 아는 사람과만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내가 아는 사람과만 인사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사해 줄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4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구약에서도 이웃을 사랑하는 계명이 있었으나 이웃이란 유다인에게 있어서 오직 유다인들 만을 가리켰습니다. 한 사람의 유다인이 고통을 받고 있는 이방인을 보고 그를 도와 줄 의무가 있냐고 물었을 때, 율법학자는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 원수를 미워하여라…”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말렉 사람(탈출17,14)과 암몬 사람과 모압사람(신명23,4-6)을 적으로 보라는 말이 있으므로,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미워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사실 모세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람은 될 수 있는 한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느님에 대한 흠숭을 우상숭배로 타락시키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 이 명령이 이방인을 미워하는 구실의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방인과 교제하지 말라고 한 이스라엘인은 이방인에 대해서라면 정의를 행할 의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그들을 속여도, 그들로부터 물건을 훔쳐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아마 그래서 지금도 유다인들은 그렇게 무차별하게 보복을 하고, 자기 민족 외에는 박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안에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를 미워한다는 본능적인 마음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사람에게서나 자연히 솟아나는 이 무서운 욕망의 흐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수련을 해야만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나를 박해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의 악에 대해서 우리는 기도로써, 사랑으로써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필요하다면 물질적으로도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마태25,35-45). 곧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구별 없이 은혜를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상대방에게 바라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똑같이 대해 주시지만 보잘 것 없는 내가 그것이 가능한가? 너무도 힘든 조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너무도 힘든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어떤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일까요? 타인을 자신의 틀 안에 가두려 하지 않는 사람이 자비로운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단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여섯 가지로 구분을 했습니다.
①자비 ②심판 ③단죄 ④용서 ⑤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⑥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그리고 위의 여섯 가지를 가지고 투표를 했습니다. 그런데 1등이 용서였습니다. 용서가 제일 많이 와 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용서하면서 살아간다고 착각을 하면 안 됩니다. 나는 용서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심판입니다. 저것은 옳고, 저것은 옳지 않고, 저 사람은 잘 하고, 저 사람은 못하고, 저 사람은 협조적이고, 저 사람은 비협조적이고……, 그 판단에서 사람을 판단하고, 상처주고, 상처 받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위의 여섯 가지를 통합 할 수 있는 단어는 “자비”인 것 같습니다. 자비를 베풀 수 있다면, 아니 내가 자비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알게 된다면 나 또한 위의 여섯 가지를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 분명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나를 학대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 또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누가 내 뺨을 쳤을 때 다른 한쪽마저 돌려대 주는 사람, 겉옷을 빼앗겼을 때 속옷마저 내어 주는 사람.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해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미워하고 나를 박해하고,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잘 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원수 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남을 비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는 이 말씀. 참으로 어려운 말씀만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분명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께서 말씀하셨으니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겠습니다.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이웃에 대한 나의 행동은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행동의 척도가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도 이웃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도 심판 받을 사람이기에 남을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남을 나쁘게 단정 지어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내가 제일 많이 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 사람은 어떻고, 이 사람은 어떻고……, 이것은 하느님만이 하시는 것이니 내가 그것을 하면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용서를 받기를 원한다면 남을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에게는 용서받기 원하면서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은 왜 그리도 용서가 안 되는지……, 마치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주님께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인자하시고 자비하신 그분의 성품을 본받아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역할을 대신하여 다른 사람을 함부로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대할 때 너그럽게 대해준다면 자신도 역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넘치도록 받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은 심판하시는 엄한 분이 아니라 선하시고 희망을 약속하시는 너그러운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반가운 이웃이나 친구 그리고 성당 사람들과 수다를 떨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하다보면 유익한 얘기보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확실한 근거도 없이 나오는 대로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애가 그렇구 그렇다더라……,
우리 신부님은 누구와 어쩌고저쩌고……,
수녀님이 그럴 수가 있냐……,
어떤 자매와 형제님은 어떻더라……,
저 사람은 인간이하야……,
이렇게 내입에서 판단하고 심판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이 씨가 되고 싹이 돋아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열매냐? 비판에 열매이지요. 이렇게 부풀려진 비판에 열매가 터지면 어떻게 될까요? 난리가 나겠지요. “네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니?”“그게 아니라,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이웃은 저를 믿고 좋게 봤는데 배신감 때문에 상처를 받겠지요.
또한 이웃을 냉담자로 만들 수도 있고 고통 속으로 밀어 넣어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 저의 판단은 하느님 앞에 심판을 받겠지요. 심판자는 오직 하느님 한분이심을 인식하고 살아야겠습니다. 그분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제 혀, 그리고 제 생각과 행동이 무서운 것임을……, 좌우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비판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그분의 깊으신 자비는 제가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한 상황에 의해 좌우되겠지요.
주님에 측은지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답답하고 부족한 사람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슬퍼집니다. 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그럼 나누어 줬는가? 주긴 뭘 줍니까! 이런 저런 생각이 가로 막지요. “해주면 바랄 것이다.” 라는 생각, 네가 선택한 결과니깐 당연히 받아들이고 살아야지. 내 말을 안 들었으니 미워……, 아! 그래도 뒷모습을 보면 왜 이리도 가슴이 아픈지……,
주님! 이웃에게 베풀고 용서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용서와 선물을 충만히 받을 것이고 주지도 않고 용서하지도 않는다면 그분의 용서나 선물을 결코 바랄 수 없겠지요. 주님! 주님처럼 자비롭고 넘치도록 베풀 줄 아는 제가 되도록 절 이끌어주소서. 입을 열 때 마다 한 번 더 생각하게 하시고 칼 같은 말로 이웃을 베지 않게 도와주소서.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원칙 하나를 말씀해 주십니다. 남에게 주면 받을 것이라는 것. 황금률에서도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넘치도록 후하게……,
3. 나눔 및 묵상
1. 미운 사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 욕 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나 덜 미워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얼마나 남 욕 안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2.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습니다. 용서해주면 나 또한 용서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내가 남에게 주면 나 또한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물론 주시면 좋고 안 주시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만. 내가 남에게 주어서 혹시 도로 받은 적이 있으면 함께 나눠 주세요. 후하게 받은 적이 있으면 ……,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
오늘….
아침부터 몸이 불편하여 하루종일 잠을 잤습니다
자면서도 복음묵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
누워있는데도 오늘복음말씀이 머릿 속에서 뱅뱅 돌았지만
눈을 딱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복음묵상도 하지 않고…..
청소도 설거지도 모두 포기하고 ….
하루종일…
방콕에서 방글라데시로 동남아로…..
주일에 고해성사를 보니 신부님께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말씀을 생각하며 ….
아! 지키지 않은 것이 있어요 주님!
신부님께서 시간이 있을 때 평일미사를 참석하라고 권고하셨는데…
성당이 바로 코 앞에 있는데 평일미사도 가지 않고 잠을 잤습니다
하루종일….
한참을 신나게 자고 있는데 …
엄마! 밥 주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꿈인 줄알았습니다
감기가 들은 아들녀석이 병원에 갔다 왔다면서
약을 먹어야 한다며 밥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누워서 그랬습니다
“네 손은 이민갔니? “
엄마도 피곤해서 누어있는데 네가 차려 먹어라
알았슈 엄니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말씀을 깊이 새기며
당신의 말씀처럼
저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비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노력은 하겠습니다
당신께서 자비로운 분이시니……..
당신의 자녀인 저 또한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있다는 희망을 갖으며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 헬레나가 되도록….
생각만해도 신이 납니다
제가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있다는 생각을 하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요 주님!
당신의 자녀이니……
희망을 갖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당신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아멘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