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연중 제26주일(9/30)


    오늘의 전례
    오늘 복음에는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부자고, 다른 한 사람은 거지나 다름없는 라자로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평생을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죽어서는 고통 속에 놓입니다. 반면에 라자로는 아브라함 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첫째와 꼴찌가 바뀐 상황입니다. 주님의 이끄심을 따르면,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평화를 누립니다.
    말씀의 초대
    부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저세상에서는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라자로는 이승의 삶을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호화로운 상황에 놓였다. 급기야 부자는 라자로를 보내 자신의 형제들만이라도 고통스런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한다. 죽음 저쪽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너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해졌도다. ◎ 알렐루야.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이 제사를 통하여 온갖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주님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님께서 그 말씀에 희망을 두게 하셨으니, 그것이 고통 가운데 제 위로이옵니다.
    영성체 후 묵상
    세상에서는 부족함을 몰랐던 부자가, 죽어서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비웃던 라자로는 아브라함 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신분과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그러니 현실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이 그대로 저세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부자가 애원했듯이, 물질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영혼의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신비로 저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저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하며 그 수난에 참여하오니, 그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라자로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알려진 것은 거지나 다름없는 처지라는 것뿐입니다. 그는 부잣집 대문 앞에서 음식 찌꺼기로 연명하였습니다. 몸에는 종기가 돋아 개들이 핥았다고 하니 비참하기 짝이 없는 처지의 사람입니다. 부자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었으며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모릅니다. 날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었다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아무튼 두 사람의 생활은 극명하게 달랐고, 그렇게 살다가 둘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음 저쪽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라자로는 복된 사람의 대열에 들어갔고, 부자는 고통 속에 떨어졌습니다. 오늘 복음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삶이 저세상 삶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는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고, 라자로는 착한 일을 하였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신분과 상황은 죽는 순간에 바로 끝납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분이라 할지라도 저세상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승의 신분이 저승에서도 보장되겠지.’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Jesus, Joy of Man's desiring, Cantata BWV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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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6주일(9/30)


      오늘의 전례
      오늘 복음에는 극명하게 대립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부자고, 다른 한 사람은 거지나 다름없는 라자로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평생을 부족함 없이 살았지만 죽어서는 고통 속에 놓입니다. 반면에 라자로는 아브라함 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첫째와 꼴찌가 바뀐 상황입니다. 주님의 이끄심을 따르면,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평화를 누립니다.
      말씀의 초대
      부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저세상에서는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되었다. 반면에 라자로는 이승의 삶을 만회하고도 남을 만큼 호화로운 상황에 놓였다. 급기야 부자는 라자로를 보내 자신의 형제들만이라도 고통스런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청한다. 죽음 저쪽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너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해졌도다. ◎ 알렐루야.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드리는 이 제사를 받아들이시어, 이 제사를 통하여 온갖 복을 받아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주님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님께서 그 말씀에 희망을 두게 하셨으니, 그것이 고통 가운데 제 위로이옵니다.
      영성체 후 묵상
      세상에서는 부족함을 몰랐던 부자가, 죽어서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비웃던 라자로는 아브라함 품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신분과 상황이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그러니 현실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이 그대로 저세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부자가 애원했듯이, 물질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영혼의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 신비로 저희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저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하며 그 수난에 참여하오니, 그 영광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라자로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알려진 것은 거지나 다름없는 처지라는 것뿐입니다. 그는 부잣집 대문 앞에서 음식 찌꺼기로 연명하였습니다. 몸에는 종기가 돋아 개들이 핥았다고 하니 비참하기 짝이 없는 처지의 사람입니다. 부자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은 없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되었으며 어떤 신분의 사람인지 모릅니다. 날마다 호화로운 생활을 하며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었다는 사실만 알 뿐입니다. 아무튼 두 사람의 생활은 극명하게 달랐고, 그렇게 살다가 둘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음 저쪽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라자로는 복된 사람의 대열에 들어갔고, 부자는 고통 속에 떨어졌습니다. 오늘 복음의 가르침은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의 삶이 저세상 삶으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자는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고, 라자로는 착한 일을 하였기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신분과 상황은 죽는 순간에 바로 끝납니다. 아무리 위대한 신분이라 할지라도 저세상까지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승의 신분이 저승에서도 보장되겠지.’ 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Jesus, Joy of Man's desiring, Cantata BWV147
    
    
    
    
    
    
    
    

  2. user#0 님의 말: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과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부자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부자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없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인심을 쓰고 선행을 했다고 자부하며
    교만을 떠는 저의 모습이 바로 부자의 모습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솔직히 아직도 저는 부자만큼 인색하다고 생각하지는
    마음 또한 있으니 회개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주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부자처럼 인색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자로처럼 거지처럼 살고 싶은 마음 또한 없습니다
    부자처럼 살면서 선행도 베풀고 당신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며 그렇게 폼 나게 살고 싶습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의 말씀을 믿으며
    당신의 곁에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부자처럼 죽어서 회개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주님!

    부자처럼 죽어서 회개하는 미련한 사람이 아닌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살게 해주십시요
    어려운 이웃이나 형제들에게 인색하지 않으며
    아낌없이 내어주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개 해주십시요
    죽어서 후회하는 바보 같은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지금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며 어려운 이웃과
    형제들에게 인색하지 않으며 나누어 주는 신앙인 헬레나로
    살게 해주십시요

    주님!

    하느님의 사람이여,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십시오“

    제2독서 바오로사도의 말씀을 실천하며
    당신의 계명을 지키며 살게 해주십시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아멘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묵상하며

    218.150.125.25 ^*^: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이 아파오면…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자신이 그렇게 변화되는 것이겠지요…그리고 그렇게 변화되어 가면서 주변을 바라볼 때 변하지 않는 모습에 가슴 아프기도 하구요…..좋은 하루 되세요 [10/01-08:24]

  3. user#0 님의 말:

    오늘 제1독서에서는
    지도자들이 부패와 사치 그리고 불의에 물들어
    하느님을 잃어버리고 사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제 2독서에서 말씀 하셨듯이 세상을 살아갈때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실천하면서 살아야 잘 사는 것이겠지요.

    오늘 복음과 연결해서 묵상해 보면
    부자처럼 살지 말고
    의롭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영혼을 살 찌울수 있는 기회란
    바로 가난한 이웃에게 온유한 마음과 사랑으로 베푸는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은 수해를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2차 헌금을 했습니다.
    형식적으로 봉헌을 했네요…
    메스컴에서도 여기저기 불쌍한 사람들 뿐입니다.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나서 체널을 바꿉니다.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하는데…
    나 살기도 바쁘고…
    내 형제들 챙기기도 바빠서 그냥 눈 질끈 감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저의 모습…
    이 모습이 바로 오늘 부자의 모습이 아니고 뭘까 싶습니다.

    이렇게 느낌이 없는 제 심장…
    나자로의 모습을 닮은
    굶어 죽어가는 북한 어린이 보다 못하고
    홍수로 떠나려간 집터에 주저앉아
    울고 계신 할머니보다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영혼은 온유함도 사랑도 나눔도 인색합니다.
    그러니 믿음에 씨앗 또한 자랄수가 없겠지요.
    이렇게 살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
    갑자기 “기회있을때 잘 살어!” 이 말이 뒤통수를 칩니다.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현재 제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껴봅니다.
    그리고 수많은 예언자와 순교자들의 죽음이 왜 있었는가를…
    9월 마지막 순교자 성월을 보내면서 깊이 생각해 봅니다.

    218.150.125.25 ^*^: 기회 있을 때 잘 살라는 말씀이 참 와 닿네요…ㅎㅎ…오늘부터 베풀면셔…ㅎㅎ [10/0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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