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 – 대사(大赦)

 

  3-2.  대사(大赦)




  죄를 범한 죄인은 고행성사를 통해서 죄의 잘못을 용서받고 영원한 벌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죄의 벌은 고해신부가 부과하는 보속의 실천을 통해서 탕감할 수 있고,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연옥에서 보속을 해야만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11세기 초기에 등장한 참된 의미의 대사(大赦)는, 고해신부가 사목적 배려에서 고백자의 죄를 사죄한 후 남아 있는 죄벌(잠벌)에 대해 부과하는 속죄 행위인 보속을 원화하여 신심행위(기도)나 선업(자선)을 실천하는 조건으로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사면하는 대체 행위를 의미한다.




  초대교회에서도 사도들은 신자가 죄를 범하며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단죄하여 축출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죄인이 지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경우에는 하느님게 용서를 받고 다시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또한 사도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죄인인 교우의 속죄(贖罪)에 동참하여 하느님께 그의 용서를 간구할 것을 권유하였다.  다른 형제들의 속죄에 참여하여 그의 사죄(赦罪)를 하느님께 기도하는 대속(代贖)의 정신은 지상, 연옥, 처국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 사이의 영적 교류인 ‘성인들의 통공(通攻)’이라는 교리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이 신비체의 지체로서 갖는 연대성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기도와 고행 그리고 선행을 통해서 고통받는 형제를 돕게 하는 연대책임의 원칙은 후일 대사의 길을 마련한 근거가 되었다. 


  6세기에 들면서 속죄 규율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우선 주교가 집전하던 사죄예절에 신부도 주례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속죄 관습에 있어서 공동 고백 대신 개인 비밀 고백이 도입되는 길을 열어 놓았으며 동시에 고해성사의 주요 요소로 죄를 뉘우치는 통회, 죄의 고백, 죄벌에 대한 교회벌인 보속이 확정됨에 따라 자연히 고해 신부는 보속을 부과하는 재량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보속 방법이 매우 엄격하였고, 속죄 기간도 매우 길어 신자들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지장을 주었다.  그리고 보속을 완수하지 못할 채 다시 죄를 짓고 고백하여 보속을 받는 신자들도 있다.  이러한 많은 속죄자들이 보속이 천문학적인 비례로 증가하여 그들은 죄벌에 대한 보속을 끝내지 못하고 죽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해 생존한 신자들의 대속(代贖)을 허가하였고, 살아있는 속죄자들을 위해서는 장기간의 엄격한 보속을 완호하는 뜻에서 실천 가능한 신심 행위(기도, 성지 순례, 성당 참배)와 선행(자선)으로 대치시켰다.  이러한 보속의 대체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에서 교회가 엄격한 보속에 대한 취한 완화 조치였다. 




  이렇게 하여 용서받은 죄에 대한 아직 남아 있는 벌(잠벌(暫罰))은 개인의 보속 행위로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9세기에 들어 교회가 신자들이 잠벌을 사해주는 사면(赦免)의 관습이 생겼다.  특히 교황들의 잠벌에 대한 조건부 사면이 구체적으로 발전한 관습이 대사(大赦)였고, 이것은 중세 그리스도교 신심을 활성화시키고 교회 예술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처음에 대사 설교가들은 신자들에게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인 죄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고해성사의 의무를 완성하도록 가르쳤고 권유하였다. 


그리고 일반 대중의 대상에 대한 열의는 중세 시대의 진지하고 깊은 종교심의 앙양에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중세인의 영성에 대한 관심, 죄에 대한 경계심, 사죄를 얻으려는 노력은 대사가 붙은 성지순레와 성당참배 등 신심행위로 표현되었고, 이것이 신자 개인의 신앙 열의를 증진시켰다. 이는 대사 시행을 위한 설교의 결과였고 이러한 점에서 이 시대보다 더 종교적인 시대가 없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중세인의 신앙열은 대사 시행을 성공시켰고, 결과적으로 대사를 얻기 위해 선행의 수단으로 등장한 기부금은 목적대로 사용되어 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건립, 개축, 장식, 보수되었다.  그러나 보수의 남용은 그 기차가 떨어지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서구 대이교 시대의 교항들, 즉 로마 교황들과 아비뇽의 교황들은 시대의 교황들, 즉 로마 교황들과 아비뇽의 교황들은 대립적 권위의식에서 상대방을 능가하고 사도적 전통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서도 경쟁하듯 대사를 남발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대사 획득에 요구되는 전제 조건인 선행이, 현금 지불로 가능해진 후에는 소위 ‘대사판매’라고 하는 대사 남용이 만연하였다. 




  15세기에 이르러 대사는 교회의 주교 수입원으로 오용되어 설교가들은 모금의 성공을 위해서 대사응 효과를 과대 설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죄의 잘못과 죄와 벌 사이의 구분이 불투명해졌고 무지한 신자들은 대사를 구원과 혼동하여 대사 부여를 약속하는 고해성사표(대사부 大赦付)를 천국 통행증쯤으로 오해하였다.  신자들은 고헤성사표에서 강조하는 대사를 얻기 위한 내적 정화의 노력을 등한시하여 돈이면 구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사 설교가들들은 과장된 표현은 일반 대중에게 ‘면벌(免罰)’의 효과를 지닌 대사를 ‘면죄(免罪)’의 효과를 갖는 것으로 오도하였고, 오늘날까지 대사부 또는 대사증서를 면죄부(免罪符)로 잘못 표현케 하였다. 이제 교회 안에서는 잘못된 대사 시행에 대한 개혁의 소리가 드높았고 대사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재확인하여 공식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루터가 ‘대사’교리에 대한 토의를 제기하기 위해 ’95개항 면제’를 공표한 사실은 자연스러운 사건이라 하겠으나 교회 안에서의 개혁이 아니란 사살이 지극히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루터의 사상과 대사 논쟁은 결국 루터의 파문과 함께 그리스도교 세계가 양분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독일의 루터 종교개혁, 그리고 제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영국에서도 성공회(국교회)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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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 – 대사(大赦)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2.  대사(大赦)


      죄를 범한 죄인은 고행성사를 통해서 죄의 잘못을 용서받고 영원한 벌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죄의 벌은 고해신부가 부과하는 보속의 실천을 통해서 탕감할 수 있고,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연옥에서 보속을 해야만 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11세기 초기에 등장한 참된 의미의 대사(大赦)는, 고해신부가 사목적 배려에서 고백자의 죄를 사죄한 후 남아 있는 죄벌(잠벌)에 대해 부과하는 속죄 행위인 보속을 원화하여 신심행위(기도)나 선업(자선)을 실천하는 조건으로 전부 또는 부분적으로 사면하는 대체 행위를 의미한다.


      초대교회에서도 사도들은 신자가 죄를 범하며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 단죄하여 축출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죄인이 지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경우에는 하느님게 용서를 받고 다시 교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또한 사도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죄인인 교우의 속죄(贖罪)에 동참하여 하느님께 그의 용서를 간구할 것을 권유하였다.  다른 형제들의 속죄에 참여하여 그의 사죄(赦罪)를 하느님께 기도하는 대속(代贖)의 정신은 지상, 연옥, 처국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 사이의 영적 교류인 ‘성인들의 통공(通攻)’이라는 교리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모든 신자들이 이 신비체의 지체로서 갖는 연대성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 공동체가 기도와 고행 그리고 선행을 통해서 고통받는 형제를 돕게 하는 연대책임의 원칙은 후일 대사의 길을 마련한 근거가 되었다. 

      6세기에 들면서 속죄 규율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다.  우선 주교가 집전하던 사죄예절에 신부도 주례자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속죄 관습에 있어서 공동 고백 대신 개인 비밀 고백이 도입되는 길을 열어 놓았으며 동시에 고해성사의 주요 요소로 죄를 뉘우치는 통회, 죄의 고백, 죄벌에 대한 교회벌인 보속이 확정됨에 따라 자연히 고해 신부는 보속을 부과하는 재량권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보속 방법이 매우 엄격하였고, 속죄 기간도 매우 길어 신자들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지장을 주었다.  그리고 보속을 완수하지 못할 채 다시 죄를 짓고 고백하여 보속을 받는 신자들도 있다.  이러한 많은 속죄자들이 보속이 천문학적인 비례로 증가하여 그들은 죄벌에 대한 보속을 끝내지 못하고 죽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회는 죽은 이들을 위해 생존한 신자들의 대속(代贖)을 허가하였고, 살아있는 속죄자들을 위해서는 장기간의 엄격한 보속을 완호하는 뜻에서 실천 가능한 신심 행위(기도, 성지 순례, 성당 참배)와 선행(자선)으로 대치시켰다.  이러한 보속의 대체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에서 교회가 엄격한 보속에 대한 취한 완화 조치였다. 


      이렇게 하여 용서받은 죄에 대한 아직 남아 있는 벌(잠벌(暫罰))은 개인의 보속 행위로 없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9세기에 들어 교회가 신자들이 잠벌을 사해주는 사면(赦免)의 관습이 생겼다.  특히 교황들의 잠벌에 대한 조건부 사면이 구체적으로 발전한 관습이 대사(大赦)였고, 이것은 중세 그리스도교 신심을 활성화시키고 교회 예술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이바지 하였다.  처음에 대사 설교가들은 신자들에게 대사를 얻기 위한 조건인 죄에 대한 진정한 뉘우침과 고해성사의 의무를 완성하도록 가르쳤고 권유하였다. 

    그리고 일반 대중의 대상에 대한 열의는 중세 시대의 진지하고 깊은 종교심의 앙양에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중세인의 영성에 대한 관심, 죄에 대한 경계심, 사죄를 얻으려는 노력은 대사가 붙은 성지순레와 성당참배 등 신심행위로 표현되었고, 이것이 신자 개인의 신앙 열의를 증진시켰다. 이는 대사 시행을 위한 설교의 결과였고 이러한 점에서 이 시대보다 더 종교적인 시대가 없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중세인의 신앙열은 대사 시행을 성공시켰고, 결과적으로 대사를 얻기 위해 선행의 수단으로 등장한 기부금은 목적대로 사용되어 많은 성당과 수도원이 건립, 개축, 장식, 보수되었다.  그러나 보수의 남용은 그 기차가 떨어지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서구 대이교 시대의 교항들, 즉 로마 교황들과 아비뇽의 교황들은 시대의 교황들, 즉 로마 교황들과 아비뇽의 교황들은 대립적 권위의식에서 상대방을 능가하고 사도적 전통성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서도 경쟁하듯 대사를 남발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대사 획득에 요구되는 전제 조건인 선행이, 현금 지불로 가능해진 후에는 소위 ‘대사판매’라고 하는 대사 남용이 만연하였다. 


      15세기에 이르러 대사는 교회의 주교 수입원으로 오용되어 설교가들은 모금의 성공을 위해서 대사응 효과를 과대 설명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죄의 잘못과 죄와 벌 사이의 구분이 불투명해졌고 무지한 신자들은 대사를 구원과 혼동하여 대사 부여를 약속하는 고해성사표(대사부 大赦付)를 천국 통행증쯤으로 오해하였다.  신자들은 고헤성사표에서 강조하는 대사를 얻기 위한 내적 정화의 노력을 등한시하여 돈이면 구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대사 설교가들들은 과장된 표현은 일반 대중에게 ‘면벌(免罰)’의 효과를 지닌 대사를 ‘면죄(免罪)’의 효과를 갖는 것으로 오도하였고, 오늘날까지 대사부 또는 대사증서를 면죄부(免罪符)로 잘못 표현케 하였다. 이제 교회 안에서는 잘못된 대사 시행에 대한 개혁의 소리가 드높았고 대사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재확인하여 공식적으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루터가 ‘대사’교리에 대한 토의를 제기하기 위해 ’95개항 면제’를 공표한 사실은 자연스러운 사건이라 하겠으나 교회 안에서의 개혁이 아니란 사살이 지극히 아쉬운 점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루터의 사상과 대사 논쟁은 결국 루터의 파문과 함께 그리스도교 세계가 양분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독일의 루터 종교개혁, 그리고 제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영국에서도 성공회(국교회)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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