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기의 가톨릭 교회(Ⅲ)
계몽사상
계몽사상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서 발전한 사조로서 18세기 유럽의 정신문화를 특징짓는 지성운동이다. 이 운동은 서양 정신사에 나타난 마지막 사상으로서 지적 문제에 있어서 모든 지식과 진리를 인간의 이성, 직접적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고 주장하는 경험론적 합리주의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사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존의 권위, 전통, 제도, 관습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배격하면서 관용의 인도적 이상, 정의사회 구현, 인간의 윤리와 복지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데에 학문적 방법을 사용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서양에서 중세기적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묶여있는 인간을 해방시킴으로써 현대적 발전을 가능케 한 사상가들이었다.
계몽사상은 중세기의 비인도적인 종교재판과 고문의 철폐, 종교 차별의 폐지뿐 아니라 인권 투쟁의 승리를 갖고 왔다. 이것은 1776년에 있었던 미국이 독립선언과 1789년에 프랑스 국회에서 공포한 인권선언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계몽사상에 의한 18세기의 긍정적 산물이다. 그러나 계몽주의자들 중에는 무신론자 또는 이신론자(理神論者)들이 있어 이들은 교회와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계몽사상이 일어나게 된 근원 중의 하나는 프로테스탄트의 등장과 이에 따른 종교전쟁이다. 16세기까지 그리스도교 세계는 일치, 단결되었으나, 종교개혁으로 그 단일성은 파괴되었다. 이러한 대변동은 신앙에 대한 회의의 원인이 되었다. 더우기 1550년경부터 1648년 사이에 일어난 비참했던 종교전쟁은 서구인에게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불러 일으켰다.
18세기에 이르러 서양에서는 종교가 잔인한 행위의 기원이 되었다는 확신이 고조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에 대한 적개심이 무르익었다. 또한 계몽사상은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이 시대의 종교적 관용주의에서 나타나고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라 보고 있었다.
계몽사상과 교회
이신론의 등장 : 계몽사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조는 합리주의 철학이었다. 이 근세의 새로운 사상은 가톨릭 교회에 대해 교회 사상 가장 큰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 철학적 합리주의는 르네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이성을 자율적으로 사용하여 사물에 대한 참된 지식과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합리주의가 영국에서는 종교 문제에 적용되어 신의 계시를 무시하는 학설을 내세운 신학적 합리주의와 더불어 종교를 하나의 자연적 현상으로 격하시키는 자연종교의 체계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사조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종교를 갖고 있으며 신의 계시는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롭다.
이러한 자연종교의 사상은 이신론으로 발전하여 가톨릭 교회와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신론의 특성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신은 존하며 인간의 숭배 대상인 동시에 윤리적 의무의 근거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에 대한 지식은 이성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여기서 이신론은 모든 종교문제는 인간 이성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세움으로써 이성의 역할을 중요시하였고, 그리스도교 진리의 기준은 성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서는 상식선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증명될 수 없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성서 연구는 인간의 윤리적 의무를 찾는 데에 그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이신론자들은 신은 선행을 행하는 이에게 상급을 주고 죄인에게는 벌을 내리기 때문에 회심하여야 한다는 상선벌악에 대한 믿음만이 참된 종교의 본질적 요소를 이룬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이신론은 종교를 윤리적 행위로 축소시켜 순전히 인간성의 교육 요인으로, 교양의 도구로 간주했다. 따라서 이신론자들은 종교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아 어느 종교든지 모두 좋은 것으로 주장하는 종교적 자유를 내세워 종교의 다양성의 정당화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후에 각 국가가 헌법에 종교적 관용 즉 종교의 자유를 넣는 데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종교적 전통이 없는 미국이 처음으로 헌법에 종교적 관용주의를 적용하였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유럽의 각 국가들도 신앙의 자유를 법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가톨릭교가 국교화되어 있던 국가에서 다른 종교의 신앙도 법으로 승인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교세는 외적으로 그만큼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프리메이슨 비밀결사 : 합리주의적 이신론은 지식층에 가장 많이 침투되어 있었다. 이 사상은 1717년에 영국에서 조직된 ꡐ프리메이슨ꡑ이라는 비밀단체에 의해서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 그리고 유럽 지역에서 널리 전파되었다. 이러한 성공적 전파의 이유는 이 운동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 사회정의 등의 계몽주의의 매력적인 정신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ꡐ프리메이슨ꡑ은 영국 지방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었으나 프랑스에서는 교회와 성직자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조직에 대해서는 정부당국도 호의를 갖지 않았다. 그것은 이 단체가 비밀결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 끌레멘스 12세(1730-1740)는 1738년 칙서를 반포하여 가톨릭 신자들이 ꡐ프리메이슨ꡑ에 가입하면 파문을 받으리라는 경고를 내렸다.
교황이 금령을 내린 이유에 몇 가지 사실이 있었다. 교황은 종교의 보편성의 위험을 우려하였다. 왜냐하면 ꡐ프리메이슨ꡑ의 회원들은 각 종교를 일종의 자연적 덕행으로 아고 여기에 만족하였고 모든 종교를 동등한 바탕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비밀조직은 공공의 평화를 깨뜨리고 사회의 공동선을 파괴하였다. 아울러 교회는 ꡐ프리메이슨ꡑ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계몽사상의 긍정적 의미 : 계몽사상이 교회에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교회는 계몽사조로부터 얻은 것도 적지 않다. 교회는 낡아빠진 신심생활이나 의미를 상실한 전통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계몽사상가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주위 사회에 신뢰받을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기 위해서 관습의 폐단과 시대착오적 생활양식을 비판하면서 계몽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교회 개혁을 시도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 교리교육, 교회의 조직과 운영, 설교방식, 전례생활에 있어 개혁한 사실은 오늘날 인정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도 계몽주의의 정신을 갖고 있던 고위 성직자와 수도회의 장상들은 박학한 인물들이었고 그 직책을 신앙심 깊게 수행한 성직자들이었다. 이들은 계몽시대의 사조 속에서 교회생활을 위한 혁신에 큰 공헌을 하였다.

과도기의 가톨릭 교회(Ⅲ)
계몽사상
계몽사상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서 발전한 사조로서 18세기 유럽의 정신문화를 특징짓는 지성운동이다. 이 운동은 서양 정신사에 나타난 마지막 사상으로서 지적 문제에 있어서 모든 지식과 진리를 인간의 이성, 직접적 관찰과 경험을 통해서만 얻어진다고 주장하는 경험론적 합리주의의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사회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기존의 권위, 전통, 제도, 관습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배격하면서 관용의 인도적 이상, 정의사회 구현, 인간의 윤리와 복지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데에 학문적 방법을 사용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들은 서양에서 중세기적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묶여있는 인간을 해방시킴으로써 현대적 발전을 가능케 한 사상가들이었다.
계몽사상은 중세기의 비인도적인 종교재판과 고문의 철폐, 종교 차별의 폐지뿐 아니라 인권 투쟁의 승리를 갖고 왔다. 이것은 1776년에 있었던 미국이 독립선언과 1789년에 프랑스 국회에서 공포한 인권선언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계몽사상에 의한 18세기의 긍정적 산물이다. 그러나 계몽주의자들 중에는 무신론자 또는 이신론자(理神論者)들이 있어 이들은 교회와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계몽사상이 일어나게 된 근원 중의 하나는 프로테스탄트의 등장과 이에 따른 종교전쟁이다. 16세기까지 그리스도교 세계는 일치, 단결되었으나, 종교개혁으로 그 단일성은 파괴되었다. 이러한 대변동은 신앙에 대한 회의의 원인이 되었다. 더우기 1550년경부터 1648년 사이에 일어난 비참했던 종교전쟁은 서구인에게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불러 일으켰다.
18세기에 이르러 서양에서는 종교가 잔인한 행위의 기원이 되었다는 확신이 고조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에 대한 적개심이 무르익었다. 또한 계몽사상은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이 시대의 종교적 관용주의에서 나타나고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모든 종교가 근본적으로 좋은 것이라 보고 있었다.
계몽사상과 교회
이신론의 등장 : 계몽사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조는 합리주의 철학이었다. 이 근세의 새로운 사상은 가톨릭 교회에 대해 교회 사상 가장 큰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 철학적 합리주의는 르네 데카르트에서 시작되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기의 이성을 자율적으로 사용하여 사물에 대한 참된 지식과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적 합리주의가 영국에서는 종교 문제에 적용되어 신의 계시를 무시하는 학설을 내세운 신학적 합리주의와 더불어 종교를 하나의 자연적 현상으로 격하시키는 자연종교의 체계가 성립되었다. 이러한 사조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종교를 갖고 있으며 신의 계시는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롭다.
이러한 자연종교의 사상은 이신론으로 발전하여 가톨릭 교회와 대립하기에 이르렀다. 이신론의 특성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우선 신은 존하며 인간의 숭배 대상인 동시에 윤리적 의무의 근거이다. 그러나 신의 존재에 대한 지식은 이성에 의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여기서 이신론은 모든 종교문제는 인간 이성을 통해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세움으로써 이성의 역할을 중요시하였고, 그리스도교 진리의 기준은 성서가 아니라 인간의 이성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성서는 상식선에서 해석되어야 하며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증명될 수 없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성서 연구는 인간의 윤리적 의무를 찾는 데에 그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이신론자들은 신은 선행을 행하는 이에게 상급을 주고 죄인에게는 벌을 내리기 때문에 회심하여야 한다는 상선벌악에 대한 믿음만이 참된 종교의 본질적 요소를 이룬다고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이신론은 종교를 윤리적 행위로 축소시켜 순전히 인간성의 교육 요인으로, 교양의 도구로 간주했다. 따라서 이신론자들은 종교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아 어느 종교든지 모두 좋은 것으로 주장하는 종교적 자유를 내세워 종교의 다양성의 정당화를 강조하였다.
이것은 후에 각 국가가 헌법에 종교적 관용 즉 종교의 자유를 넣는 데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종교적 전통이 없는 미국이 처음으로 헌법에 종교적 관용주의를 적용하였고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는 유럽의 각 국가들도 신앙의 자유를 법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가톨릭교가 국교화되어 있던 국가에서 다른 종교의 신앙도 법으로 승인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교세는 외적으로 그만큼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프리메이슨 비밀결사 : 합리주의적 이신론은 지식층에 가장 많이 침투되어 있었다. 이 사상은 1717년에 영국에서 조직된 ꡐ프리메이슨ꡑ이라는 비밀단체에 의해서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 그리고 유럽 지역에서 널리 전파되었다. 이러한 성공적 전파의 이유는 이 운동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 사회정의 등의 계몽주의의 매력적인 정신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ꡐ프리메이슨ꡑ은 영국 지방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었으나 프랑스에서는 교회와 성직자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조직에 대해서는 정부당국도 호의를 갖지 않았다. 그것은 이 단체가 비밀결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황 끌레멘스 12세(1730-1740)는 1738년 칙서를 반포하여 가톨릭 신자들이 ꡐ프리메이슨ꡑ에 가입하면 파문을 받으리라는 경고를 내렸다.
교황이 금령을 내린 이유에 몇 가지 사실이 있었다. 교황은 종교의 보편성의 위험을 우려하였다. 왜냐하면 ꡐ프리메이슨ꡑ의 회원들은 각 종교를 일종의 자연적 덕행으로 아고 여기에 만족하였고 모든 종교를 동등한 바탕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비밀조직은 공공의 평화를 깨뜨리고 사회의 공동선을 파괴하였다. 아울러 교회는 ꡐ프리메이슨ꡑ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계몽사상의 긍정적 의미 : 계몽사상이 교회에 부정적 결과만을 초래한 것은 아니다. 교회는 계몽사조로부터 얻은 것도 적지 않다. 교회는 낡아빠진 신심생활이나 의미를 상실한 전통에서 벗어나야 된다는 계몽사상가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가 주위 사회에 신뢰받을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기 위해서 관습의 폐단과 시대착오적 생활양식을 비판하면서 계몽주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교회 개혁을 시도하였다.
오스트리아에서 교리교육, 교회의 조직과 운영, 설교방식, 전례생활에 있어 개혁한 사실은 오늘날 인정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도 계몽주의의 정신을 갖고 있던 고위 성직자와 수도회의 장상들은 박학한 인물들이었고 그 직책을 신앙심 깊게 수행한 성직자들이었다. 이들은 계몽시대의 사조 속에서 교회생활을 위한 혁신에 큰 공헌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