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신자들의 교회 생활

 

교회 생활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는 날로 높아져 갔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교회는 결국 종교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나햐면 종교분열의 원인은 대단히 복합적이어서 그렇게 간다히 설명될 수 없기 때무이다.


  물론 개혁이 절실했을 만큼 교회의 페해만 하더라도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과장이 없지 않다.  그리고 폐해 자체도 교회를 떠나 종교분열을 일으켜야 할 정도로 전반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일부에서는 이미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신자들의 신심에도 긍적적이고 밝은 면이 적지 않았다. 




  신자들의 종교생활은 출생에서 사망까지 완전히 그라스도교적인 세계관으로 지배되고 있었으며, 도시에 성당과 수도원이 있었고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이 많았다.  또한 양로원과 병원 등의 자선시설도 크게 증거되었다. 


  또한 성인 설교가들이 많이 출현하여 속죄와 회개를 주장하였다. 그들의 설교는 마침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여서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게 했다.




  한편 14세기에 크게 번창한 신비주의는 교회에 새로운 신심과 여성을 불러 일으켰다.  내적 정신을 강조한 이 신비사상은 15세기 네델란드의 ‘공주 수도회’에서 도극한 형식으로 발전되어 소위 ‘근대적 신심’을 낳게 했다. 


전레와 성사보다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면을 강조한 이 새로운 신싱은 영신주의에 치우칠 위험이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 영성에 기여하는 바가 켰다. 이러한 영성의 작품으로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한 것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준주성범’이다.




  이 시기는 불안과 공포의 시기였다.  백 년 동안 다서 차례나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면서 무려 2천5백만의 희생자를 냈다.  게다가 끊임없는 전쟁은 도시들을 황폐화하고, 가난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재난은 종교생활 전반에 걸쳐 질서와 균형을 잃게 하여 외면적이고 피상적인 신심, 성인 축일의 과잉, 기복(祈福)적인 성인공경, 지옥과 마귀에 대한 지나친 공포, 마녀 사상, 그 밖에도 신심과 혼합된 많은 미신 등으로 매우 위험하게 발전했다.  또한 과열된 순례, 특히 지나친 유해 공경은 유해 수집을 부채질하여  제후들까지 유해를 수집하여 장사하게 하였다.



  대사의 남용은 종교분열의 구실을 만들 만큼 가장 큰 악폐의 하나였다. 


  대사가 십자군과 성년 등을 게기로 너무 많아지고 또 그것을 얻는 조건도 기도와 애긍 등 많이 이완되었음 마침내 대사가 연옥 영혼에도 적용될 수 있게 되자 ‘돈이면 연옥 연혼도 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교가들이 대사의 본 뜻을 왜곡시켰고 마침내 대사 거래까지 생기게 되었다.




  특히 성직자 세계에서는 성직록을 둘러싼 겸직과 성직매매, 르네상스 교황들의 지나친 족벌주의, 파문과 성무정시 남용 등의 폐해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폐해들이 개인적인 배신행위 보다는 교회의 뿌리깊은 악순환적 제도에 근거하고 있었다는데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황직과 주교직이었다.  교황직은 악순환이 벗어나지를 못했다.  왜나햐면 나쁜 추기경들이 나쁜 교황을 선풀하고 다시 나쁜 교황이 나쁜 추기경을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주교직은 봉건제도의 구속에서, 다시 말해서 귀족들의 독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교들은 거의 예외없이 귀족들이었고 또 종종 주교품도 받지 않은 속인들도 있었다.




  수도원도 일반적으로 규칙이 이완되고 타락해 있었다.  그 주요 원인은 수도원이 너무 부유해진 데 있었다.  수도원장은 종종 속인으로 수도원 밖에서 살았고 수도자 중에는 성소없이 입회한 사람도, 도망친 수도자도 많았다.  종교적인 폐해 중에서 교황청의 과도한 재정적 요구는 자연 교황청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초래했다.  로마에서 대한 이러한 불만이 가장 컸던 곳이 독일이었다.  그 불만은 루터가 종교분열의 불씨를 당기는데 무시못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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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신자들의 교회 생활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교회 생활


      교회의 개혁을 요구하는 소리는 날로 높아져 갔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고, 교회는 결국 종교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왜나햐면 종교분열의 원인은 대단히 복합적이어서 그렇게 간다히 설명될 수 없기 때무이다.

      물론 개혁이 절실했을 만큼 교회의 페해만 하더라도 심각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는 과장이 없지 않다.  그리고 폐해 자체도 교회를 떠나 종교분열을 일으켜야 할 정도로 전반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일부에서는 이미 개혁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신자들의 신심에도 긍적적이고 밝은 면이 적지 않았다. 


      신자들의 종교생활은 출생에서 사망까지 완전히 그라스도교적인 세계관으로 지배되고 있었으며, 도시에 성당과 수도원이 있었고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이 많았다.  또한 양로원과 병원 등의 자선시설도 크게 증거되었다. 

      또한 성인 설교가들이 많이 출현하여 속죄와 회개를 주장하였다. 그들의 설교는 마침 개혁이 절실히 요구되던 때여서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하게 했다.


      한편 14세기에 크게 번창한 신비주의는 교회에 새로운 신심과 여성을 불러 일으켰다.  내적 정신을 강조한 이 신비사상은 15세기 네델란드의 ‘공주 수도회’에서 도극한 형식으로 발전되어 소위 ‘근대적 신심’을 낳게 했다. 

    전레와 성사보다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면을 강조한 이 새로운 신싱은 영신주의에 치우칠 위험이 없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적 영성에 기여하는 바가 켰다. 이러한 영성의 작품으로 가장 큰 영향을 행사한 것이 우리에게도 친숙한 ‘준주성범’이다.


      이 시기는 불안과 공포의 시기였다.  백 년 동안 다서 차례나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면서 무려 2천5백만의 희생자를 냈다.  게다가 끊임없는 전쟁은 도시들을 황폐화하고, 가난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재난은 종교생활 전반에 걸쳐 질서와 균형을 잃게 하여 외면적이고 피상적인 신심, 성인 축일의 과잉, 기복(祈福)적인 성인공경, 지옥과 마귀에 대한 지나친 공포, 마녀 사상, 그 밖에도 신심과 혼합된 많은 미신 등으로 매우 위험하게 발전했다.  또한 과열된 순례, 특히 지나친 유해 공경은 유해 수집을 부채질하여  제후들까지 유해를 수집하여 장사하게 하였다.

      대사의 남용은 종교분열의 구실을 만들 만큼 가장 큰 악폐의 하나였다. 

      대사가 십자군과 성년 등을 게기로 너무 많아지고 또 그것을 얻는 조건도 기도와 애긍 등 많이 이완되었음 마침내 대사가 연옥 영혼에도 적용될 수 있게 되자 ‘돈이면 연옥 연혼도 구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설교가들이 대사의 본 뜻을 왜곡시켰고 마침내 대사 거래까지 생기게 되었다.


      특히 성직자 세계에서는 성직록을 둘러싼 겸직과 성직매매, 르네상스 교황들의 지나친 족벌주의, 파문과 성무정시 남용 등의 폐해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폐해들이 개인적인 배신행위 보다는 교회의 뿌리깊은 악순환적 제도에 근거하고 있었다는데 더욱 큰 문제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교황직과 주교직이었다.  교황직은 악순환이 벗어나지를 못했다.  왜나햐면 나쁜 추기경들이 나쁜 교황을 선풀하고 다시 나쁜 교황이 나쁜 추기경을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주교직은 봉건제도의 구속에서, 다시 말해서 귀족들의 독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주교들은 거의 예외없이 귀족들이었고 또 종종 주교품도 받지 않은 속인들도 있었다.


      수도원도 일반적으로 규칙이 이완되고 타락해 있었다.  그 주요 원인은 수도원이 너무 부유해진 데 있었다.  수도원장은 종종 속인으로 수도원 밖에서 살았고 수도자 중에는 성소없이 입회한 사람도, 도망친 수도자도 많았다.  종교적인 폐해 중에서 교황청의 과도한 재정적 요구는 자연 교황청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초래했다.  로마에서 대한 이러한 불만이 가장 컸던 곳이 독일이었다.  그 불만은 루터가 종교분열의 불씨를 당기는데 무시못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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