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창설과 박해

 

  1.  고대교회






  1-1. 교회의 창설과 박해




  1-1-1.  교회의 탄생


  가톨릭교회는 30년경 유대교의 축일인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군중 앞에 나아가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로 3천명이 개종하고 이어 5천명이 개종함으로써 예루살렘에 주님의 사도들과 제자들, 새 개종자들로 구성된 최초의 유대인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1-1-2.  첫공동체의 삶


  이 공동체는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마음 한몸이 되어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또 날마다 성전에 모여 기도를 드리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는 사랑과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1-1-3.  최초의 박해와 뻗어가는 공동체


  이 무렵 박해가 일어나 사도들의 협력자이던 부제 스테파노가 순교했고 신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기 시작했다.  박해는 스테파노의 처형에 동참했던 사울에 의해 계속 되었으며 42년경, 사도 요한의 형인 야고보 사도의 순교는 사도들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모든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거듭된 박해로 예루살렘을 떠난 사도들과 신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고 안티오키아에 최초의 이방인 그리스도 교회가 탄생하였다.




  1-1-4.  안티오키아와 이방인의 사도 바울로


  신자들을 박해하던 사울은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을 보고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아울러 바울로로 이름을 바꾸고 일약 ‘이방인의 사도’가 된 그는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던 무렵 안티오키아로 와서 바르나바 사도를 도왔다.  안티오키아는 당시 로마   그리스 문화의 중심도시의 하나였다. 이러한 도시에 처음으로 이방인이 주축이 된 교회가 세워졌고, 뿐만 아니라 그 신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불리며 독립된 종교단체로 나타날 만큼 주목을 받고 있었다.  바울로를 맞은 안티오키아 교회는 그의 세번에 걸친 전교여행을 통해 로마 그리스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는 중심지가 되었다.


                           


  1-1-5.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


  마침내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일어났다.  64년 네로 황제 때 최초의 박해가 시작되어 이 박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허용하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는 313년까지, 거의 3세기에 걸쳐 계속되었다.




  1-1-6.  박해가 일어난 까닭은


  첫째, 신자들은 예수만이 하느님이며 그리스도교만이 참된 종교라는 믿음때문에 신자들은 로마제국의 이교적 경신행위(敬神行爲)의 참여와 황제숭배를 거부했다.  따라서 로마인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무신론자요 국가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둘째, 로마제국이 그리스도와 신자들을 오해하고 있었고 증오심을 갖고 있었다.  일반 대중은 자연재해나 패전 등의 원인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로마의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전가하여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그들과 다른 신자들의 종교적, 윤리적 생활이 본능적으로 그들의 반감을 샀던 것이다.




  세째,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범세계적이고 초국가적인 성격의 그리스도교가 국가를 전복시킬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리하여 3세기에 걸친 박해로 많은 신자들이 희생되었다.  교회가 일찍부터 순교자들을 공경하여 그들에게 하늘의 영광을 돌린 것은 그들이야말로 참으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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