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지도자 : 한국교회 첫 회장
초창기의 한국교회는 양반뿐 아니라 중인 출신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 벽(요한세자)이나 권일신(프란치스꼬 사베리오)을 통해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들은 지혜와 덕망을 갖춘 이들이었는데 그 대표적 인물들로서 한양의 최창현(요한), 전라도(전주)의 유항검(아우구스띠노), 충청도(내포)의 이존창(곤자가의 루도비꼬) 등이 있었다. 이들은 가성직 교계제도(假聖職 敎階制度)의 초창기 한국교회에서 신부로서 활동하였다. 진산사건 이후로 세 창설자인 이승훈, 이 벽, 권일신이 교회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순교한 후에 새로운 지도층으로 중인 계급이 등장하였는데 바로 이때에 세 사람들이 한국교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박해 때문에 흔들린 교회의 질서를 다시 정돈하는 데에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였고 주문모 신부를 성공적으로 입국시킨 후에는 각 지방의 회장으로서 성직자의 사목활동을 영성적으로 돕는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

교회 지도자 : 한국교회 첫 회장
초창기의 한국교회는 양반뿐 아니라 중인 출신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 벽(요한세자)이나 권일신(프란치스꼬 사베리오)을 통해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들은 지혜와 덕망을 갖춘 이들이었는데 그 대표적 인물들로서 한양의 최창현(요한), 전라도(전주)의 유항검(아우구스띠노), 충청도(내포)의 이존창(곤자가의 루도비꼬) 등이 있었다. 이들은 가성직 교계제도(假聖職 敎階制度)의 초창기 한국교회에서 신부로서 활동하였다. 진산사건 이후로 세 창설자인 이승훈, 이 벽, 권일신이 교회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순교한 후에 새로운 지도층으로 중인 계급이 등장하였는데 바로 이때에 세 사람들이 한국교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박해 때문에 흔들린 교회의 질서를 다시 정돈하는 데에 온갖 노력을 다하면서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였고 주문모 신부를 성공적으로 입국시킨 후에는 각 지방의 회장으로서 성직자의 사목활동을 영성적으로 돕는 초기 한국교회의 지도급 인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