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4세 교황 Leo 4.

 116. 레오 4세 교황 Leo Ⅳ.  847~855

황제 로타르는 교황 선거는 황제의 허락하에, 그리고 황제가 파견한 특사의 임석하에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시한 바 있었다. 그러나 847년 4월 10일에 있었던 레오 4세의 교황 선거는 로타르의 지시에 따라 진행되지 않았다. 사라센족들이 태베레 강까지 침공하여 들어왔고 성 바오로 성전을 초토화시켰다. 그래서 레오 4세를 교황으로 선출할 때 황제의 허락을 기다릴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레오 4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후 취한 첫 번째 직무 수행은 로마 시의 방어였다. 그래서 레오 4세 교황이 방어한 로마의 외곽 시는 오래 전부터 ꡐ레오 시(市 )ꡑ라고 불리고 있다.


  레오 4세 교황은 드디어 849년 오스티아의 해전에서 사라센족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 주었다. 레오 4세 교황은 850년 황제 로타르 1세의 아들 로타르 2세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다. 레오 4세 교황은 자신의 통치권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라벤나(Ravenna)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라벤나는 동로마 제국에 속하는 도시로서 라벤나의 대주교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가 특별권리를 주장하고, 교회의 재산을 장악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모색하고 있었다. 853년 레오 4세 교황은 라벤나의 대주교와 타협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861년에 다시금 갈등이 재연되었다. 아울러 랭스(Reims)의 대주교 사이에도 불화가 발생하였다. 로마의 수위권 문제를 둘러싼 이러한 갈등과 불화는 이른바 「위(僞)이시도르 위조 문서」의 출현을 위한 동인으로 작용하였다. 레오 4세 교황은 855년 7월 17일 서거하였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ata2020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