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라시오 2세 교황 Gelasius 2.

185. 젤라시오 2세 교황  Gelasius Ⅱ.  1118~1119


교황 젤라시오 2세의 본래 이름은 가에타(Gaeta)의 요한(Johannes)이었고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속하는 수도승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추기경으로서 교황의 재상으로 재직하였다. 교황 파스칼 2세 서거 후 독립 황제의 압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교황 선거는 비밀리에 진행되었고, 나이가 많은 지원자를 교황으로 선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젤라시오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로마의 귀족들은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교황 젤라시오 2세를 체포하여 구금시켰다. 하지만 곧 로마 백성들에 의해 구금으로부터 풀려났다. 그 결과 교황 젤라시오 2세는 교황좌에 등극할 수 있었다.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 5세는 로마로 와서 교황 젤라시오 2세의 선출을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8세를 대립 교황으로 옹립하였다. 교황 젤라시오 2세는 1118년 사제 서품과 주교 서품을 받은 가에타로 피신하였다.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가 로마를 떠나자 교황 젤라시오 2세는 로마로 귀환할 수 있었다. 교황 젤라시오 2세는 로마로 귀환하기 전에 독일의 황제 하인리히와 대립 교황 그레고리오 8세에게 파문의 처벌을 내렸다. 교황 젤라시오 2세는 로마로 귀환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의 귀족 가문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들에 의해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습격을 받았으나 습격을 피하여 피사(Pisa) – 교황 젤라시오 2세는 피사의 대성당을 축성하였다 -를 거쳐 프랑스로 도피하는 데 성공하였다. 교황 젤라시오 2세는 프랑스의 클뤼니에서 1119년 1월 29일에 서거하였고, 그곳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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