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루치오 3세 교황 Lucius Ⅲ. 1181~1185
루치오 3세 교황의 원래 이름은 우발도(Ubald Allucingoli)였다. 그는 시스테르시안 수도회의 수도승이었으며, 1141년부터 추기경으로 재임하였다. 1159년부터 오스티아의 주교 추기경으로 봉직하다 1181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아르놀드(Arnold von Brescia)가 일으킨 소요로 말미암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즉위식을 치르지 못하였다. 루치오 3세 교황은 벨레트리(Velletri)로 도피하였고 끝내 로마로 귀환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교황 루치오 3세는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의 연합을 모색하였고, 이 연합에 대한 합의는 1184년 베로나(Verona)에서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십자군 운동에 대한 새로운 결정도 이루어졌다.
교황 루치오 3세와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베로나에서 연합을 위한 회담을 진행하고 있던 중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이 노르만족의 국왕 로제르의 딸과 약혼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 결혼식은 1186년 1월 26일에 개최되었다 – 이 약혼은 교회 국가를 배제시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 루치오 3세는 이 위험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못하였다. 루치오 3세 교황은 베로나에서 십자군 출정을 준비하던 도중 1185년 11월 25일에 서거하였고 베로나에 안장되었다.

203. 루치오 3세 교황 Lucius Ⅲ. 1181~1185
루치오 3세 교황의 원래 이름은 우발도(Ubald Allucingoli)였다. 그는 시스테르시안 수도회의 수도승이었으며, 1141년부터 추기경으로 재임하였다. 1159년부터 오스티아의 주교 추기경으로 봉직하다 1181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아르놀드(Arnold von Brescia)가 일으킨 소요로 말미암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즉위식을 치르지 못하였다. 루치오 3세 교황은 벨레트리(Velletri)로 도피하였고 끝내 로마로 귀환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 아래 교황 루치오 3세는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의 연합을 모색하였고, 이 연합에 대한 합의는 1184년 베로나(Verona)에서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 기회에 십자군 운동에 대한 새로운 결정도 이루어졌다.
교황 루치오 3세와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베로나에서 연합을 위한 회담을 진행하고 있던 중 프리드리히 1세의 아들이 노르만족의 국왕 로제르의 딸과 약혼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 결혼식은 1186년 1월 26일에 개최되었다 – 이 약혼은 교회 국가를 배제시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 루치오 3세는 이 위험에 대해 별로 의식하지 못하였다. 루치오 3세 교황은 베로나에서 십자군 출정을 준비하던 도중 1185년 11월 25일에 서거하였고 베로나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