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파시오 8세 교황 Bonifaz 8.

 225. 보니파시오 8세 교황 Bonifaz Ⅷ.  1294~1303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원래 이름은 베네딕토(Benedikt Gaetani)였다. 그는 1230년 아나니에서 출생하였다. 1281년 부제 추기경에 서임되었고, 1291년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사제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자신의 선임자 첼레스티노 5세의 은퇴를 권유한 바 있었다. 1294년 12얼 24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매우 총명하고,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를 소유하였으며, 결단력이 과감한 개성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재임 기간은 교황사에 있어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의 국왕 필립과의 마찰과 관련해서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성직자에 대한 견해를 밝혀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칙서 Clericis laicos를 통해 평신도를 성직자의 적으로 규정하였다. 1302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교황권이 세속의 권력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는 칙서 Unam Sanctam을 반포하기도 하였다. 이 칙서에서 교황은, 교회는 오로지 하나의 머리, 즉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리자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세속적인 칼과 종교적인 칼은 교회의 권력안에 예속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종교적인 권력은 세속적인 권력에 관여하고 필요에 따라 심판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권력의 관계는 신적인 질서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칙서의 마지막 부분은 교황의 수위권을 강조하였고, 로마의 주교에게 순종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선언하였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자신의 권력을 분명하게 확보하기 위해 1300년에 첫 번째 성년을 반포하였다. 퇴위한 교황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의 지지자들에 의해 구성된 반대파들 – 이들은 주로 로마의 귀족 콜론나 가문 출신들이었다 – 은 1301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아나니에서 체포하였다. 로마의 시민들은 사흘 뒤에 교황 보니파시오 8세를 다시금 자유의 몸으로 해방시켜 로마로 귀환시켰으나, 교황은 1303년 10월 11일 로마에서 서거하였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바티칸 대성전의 지하에 안장되었다.


  교회 정치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이후 교황권은 점점 그 영향력을 상실해 갔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반포하였던 칙서 Unam Sanctam은 이미 교황 그레고리오 7세와 인노첸시오 3세가 구상하였던 사상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아퀴나스와 베르나르도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의 권력 행사는 실패로 끝났고, 그 영향은 이후의 교황 재임 기간 동안 분명하게 드러났다.


  교회 내적인 시각에서 볼 때 1300년의 성년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반포한 성년의 대사는 수많은 순례객들을 로마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교황청 기구의 개편, 재속 사제와 수도 사제 사이의 관계 규정, 교황 그레고리오 9세 법령집의 보완 작업 등은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남긴 중요한 업적에 속한다.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서거 후 사람들은 그를 적대시하여 그에게 이단의 혐의를 덮어씌우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교황 보니파시오 8세에 대한 역사가들의 평가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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