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니콜라오 5세 교황 Nikolaus Ⅴ. 1447~1455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원래 이름은 토마소(Tomaso Parentucelli)였다. 그는 1397년 11월 15일 의사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1444년 볼로냐의 주교로 재직하였으며, 1446년 독일 주재 교황 사저로서 성공적으로 활약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직전에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교황 선출을 위한 선거는 1447년 3월 6일에 개최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균형 감각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유럽 각국의 군주들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모색하였다. 1448년 교항 니콜라오 5세는 프리드리히 3세와 비엔나 정교 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독일의 모든 제후들은 이 조약을 인정하였고, 1803년까지 효력을 발생하였다. 비엔나 정교 조약은 주로 교구장의 선출과 관련된 내용을 규정하였다. 1449년 4월에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대립 교황 펠릭스 5세로 하여금 스스로 퇴위하도록 움직였고, 그사이 중요성을 상실해 버린 바젤 공의회는 마지막 회기에서 니콜라오 5세를 교황으로 선출하고1449년 4월 25일 자진해서 해산하였다. 이로써 교회 분열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450년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성년을 선포하였고 성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울러 성년의 선포가 교회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기 이해 각국에 교황 특사를 파견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5세 재임 중 1453년 터키 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교황의 십자군 운동 제창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하지만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로마를 위해서는 황금 시기를 창조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바티칸에 도서관을 개관하였고, 학자, 문학가 그리고 예술가들이 로마로 몰려들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바티칸과 성 베드로 대성전의 신축을 위한 기본적인 기초를 다졌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신앙인들의 믿음을 고취시키기 위해 로마를 화려하게 장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니콜라오 5세 자신은 매우 소박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자신의 친인척을 위한 삶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삶을 살았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오랜 중병 끝에 1455년 3월 25일 서거하였다. 역사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고상한 인물 가운데 속한다.

247. 니콜라오 5세 교황 Nikolaus Ⅴ. 1447~1455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원래 이름은 토마소(Tomaso Parentucelli)였다. 그는 1397년 11월 15일 의사의 아들로 출생하였고, 1444년 볼로냐의 주교로 재직하였으며, 1446년 독일 주재 교황 사저로서 성공적으로 활약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교황으로 선출되기 직전에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교황 선출을 위한 선거는 1447년 3월 6일에 개최되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균형 감각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유럽 각국의 군주들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모색하였다. 1448년 교항 니콜라오 5세는 프리드리히 3세와 비엔나 정교 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독일의 모든 제후들은 이 조약을 인정하였고, 1803년까지 효력을 발생하였다. 비엔나 정교 조약은 주로 교구장의 선출과 관련된 내용을 규정하였다. 1449년 4월에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대립 교황 펠릭스 5세로 하여금 스스로 퇴위하도록 움직였고, 그사이 중요성을 상실해 버린 바젤 공의회는 마지막 회기에서 니콜라오 5세를 교황으로 선출하고1449년 4월 25일 자진해서 해산하였다. 이로써 교회 분열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450년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성년을 선포하였고 성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울러 성년의 선포가 교회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기 이해 각국에 교황 특사를 파견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5세 재임 중 1453년 터키 군대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교황의 십자군 운동 제창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하지만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로마를 위해서는 황금 시기를 창조하였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바티칸에 도서관을 개관하였고, 학자, 문학가 그리고 예술가들이 로마로 몰려들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바티칸과 성 베드로 대성전의 신축을 위한 기본적인 기초를 다졌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신앙인들의 믿음을 고취시키기 위해 로마를 화려하게 장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 니콜라오 5세 자신은 매우 소박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자신의 친인척을 위한 삶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삶을 살았다. 교황 니콜라오 5세는 오랜 중병 끝에 1455년 3월 25일 서거하였다. 역사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교황 니콜라오 5세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가장 고상한 인물 가운데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