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 2세 교황 Pius 2.

 249. 비오 2세 교황 Pius Ⅱ.  1458~1464

교황 비오 2세의 원래 이름은 에네아(Enea Silvio de Piccolomini)였다. 그는 1405년 10월 18일 시에나 근교에서 출생하였다. 이미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던 그는 추기경 도미니코(Domenico Capranica)의 비서로서 바젤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에우제니오 4세의 퇴위 선언 후 대립 교황으로 선출되었던 펠릭스 5세를 지원하였다. 1442년 이후 교황 비오 2세는 에우제니오를 지지하는 편으로 돌아섰다. 교황 비오 2세는 1445년 사제로 서품되었고, 비엔나 대학에서 고대 시(詩)를 강의하였다. 1447년에는 트리에스테(Triest)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1449년에는 시에나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1456년에는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사제 서품 후 그는 예전의 생활을 청산하고 사제와 주교의 신분에 걸맞은 삶을 영위하였다. 비오 2세는 1458년 8월 19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 비오 2세는 선거 공약으로 대 터키 전쟁과 교회의 개혁을 제시하였다. 1458년 9월 3일에 교황 비오 2세는 베드로 대성전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교황 비오 2세는 1458년 10월 12일 유럽 회의를 소집하면서 십자군 운동을 제창하는 문서를 발표하였다. 아울러 유럽의 군주들에게 특별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회의는 1459년 만토바(Mantua)에서 개막되었다. 이 회의는 대 터키 항쟁을 결의하였으나 어디까지나 결의로 머물고 말았다. 1461년 교황 비오 2세는 술탄에게, 코란을 반박하고 그리스도교의 신앙 진리를 옹호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교황 비오 2세는 1463년 다시금 십자군 운동을 제창하였고, 직접 십자군을 진두 지휘할 것을 원하였다. 교황 비오 2세는 와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군이 출정할 예정으로 있던 안토나(Ancona)로 갔다. 하지만 십자군이 출정하기 전에 교황 비오 2세는 서거하였다.


  교황 비오 2세는 1460년 1월 18일 공의회 지상주의를 단죄하고, 공의회에 교황을 제소하는 행위를 파문의 처벌로 금지시키는 칙서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이 칙서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공의회 지상주의를 단죄한 교황의 처사는 기대하였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다. 교황 비오 2세는 교회의 개혁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교황 자신도 친인척 등용주의의 늪에 빠지고 말았고, 여러 명의 친척을 추기경에 임명하였다. 교황 비오 2세는 1464년 8월 15일 안코나에서 서거하였고 로마에 안장되었다. 역사가들로부터는 교황사에 있어서 위대한 교황 가운데 한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ata2020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