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클레멘스 11세 교황 Clemens Ⅺ. 1700~1721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1700년 11월 23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수일간의 심사숙고 끝에 교황직을 수락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원래 이름이 조반니(Giovanni Francesco)였고, 1649년 7월 22일 우르바노(Urbino)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전임 교황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미친 추기경 가운데 한 분이었다. 스페인의 유산 때문에 발생한 전쟁에 대해 취한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715년 이 전쟁이 종식되고 난 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다시금 터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1715년 여름 터키는 대규모의 공격전을 감행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재정적인 지원하에 시작되었던 대 터키 항전은 1716년 8월 5일 오스트리아의 야전군 사령관 오이겐(Eugen von Savoyen) 왕자가 페터바르다인(Peterwardein)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얀세니즘과의 대결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얀세니즘을 겨냥해서 반포된 단죄를 승인하였으나, 그 결과는 프랑스의 포르루아얄(Port Royal) 수도원의 파괴로 나타났다. 칙서 Unigenitus를 통해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프랑스의 얀세니즘 지지자였던 케넬(Paschasius Quesnel)이 주장한 101개의 명제를 단죄하였다. 이로써 얀세니즘은 프랑스에서는 그 영향력을 점점 상실하였으나, 네덜란드에서는 계속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선교 지역에 신앙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였으나, 전례 논쟁과 관련하여 내린 결정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1715년 3월 19일 반포한 칙서를 통해 선교 지역의 백성들의 관습을 수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특히 중국의 경우 이 금지를 통해 선교 사업은 대단한 피해를 자초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불행한 재임 기간을 거친 후 1721년 3월 19일 서거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 자신은 나무랄 데 없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나 우유부단하고 미숙한 태도를 통해 오점을 남기기도 하였다.

282. 클레멘스 11세 교황 Clemens Ⅺ. 1700~1721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1700년 11월 23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수일간의 심사숙고 끝에 교황직을 수락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원래 이름이 조반니(Giovanni Francesco)였고, 1649년 7월 22일 우르바노(Urbino)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전임 교황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미친 추기경 가운데 한 분이었다. 스페인의 유산 때문에 발생한 전쟁에 대해 취한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715년 이 전쟁이 종식되고 난 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다시금 터키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1715년 여름 터키는 대규모의 공격전을 감행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재정적인 지원하에 시작되었던 대 터키 항전은 1716년 8월 5일 오스트리아의 야전군 사령관 오이겐(Eugen von Savoyen) 왕자가 페터바르다인(Peterwardein)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종지부를 찍었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얀세니즘과의 대결에서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얀세니즘을 겨냥해서 반포된 단죄를 승인하였으나, 그 결과는 프랑스의 포르루아얄(Port Royal) 수도원의 파괴로 나타났다. 칙서 Unigenitus를 통해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프랑스의 얀세니즘 지지자였던 케넬(Paschasius Quesnel)이 주장한 101개의 명제를 단죄하였다. 이로써 얀세니즘은 프랑스에서는 그 영향력을 점점 상실하였으나, 네덜란드에서는 계속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선교 지역에 신앙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였으나, 전례 논쟁과 관련하여 내린 결정은 매우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1715년 3월 19일 반포한 칙서를 통해 선교 지역의 백성들의 관습을 수용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특히 중국의 경우 이 금지를 통해 선교 사업은 대단한 피해를 자초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불행한 재임 기간을 거친 후 1721년 3월 19일 서거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11세 자신은 나무랄 데 없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으나 우유부단하고 미숙한 태도를 통해 오점을 남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