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1. 말씀읽기: 루카 18,18-27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마태 19,16-26 ; 마르 10,17-27)
18 어떤 권력가가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20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21 그가 예수님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이르셨다.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23 그는 이 말씀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
24 예수님께서는 그가 매우 슬퍼하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26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2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가진 권력가가 등장합니다. 그는 계명을 충실히 지키면서 하느님 나라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그는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마음입니다. 비록 그가 가진 것을 다 버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래서 오늘은 처진 어깨를 하고 예수님께 돌아섰다 할지라도, 그는 평생 재산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는 그 재산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려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의 마음이 되어 예수님 앞에 서 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여쭈어 봅시다. 비록 지금 내가 할 수 없다 할지라도, 지금 내려놓을 수 없다 할지라도 내려놓으려고 노력하고, 하려고 노력할 때 예수님 보시기 좋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요?
18 어떤 권력가가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어떤 권력가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그는 예수님께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스승과 선생은 다릅니다. 선생님은 전해 받은 것을 공부해서 그것을 전해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스승은 전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이 권력가는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아픈 이들에게,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들어왔고 또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가끔은 그렇게 물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 제가 무엇을 해야 신앙생활을 더 잘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가정생활을 잘 하고, 어떻게 해야 직장 생활을 잘 하고, 어떻게 해야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고 답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서 겸손을 봅니다. 너무도 겸손하셔서 모든 영광을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하신 분은 아버지 한 분 뿐이시기에 아버지 하느님만이 선한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알고 있는 것들,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좀더 겸손해 진다면 깊은 말을 할 수 있고, 자세히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훌륭하다고, 대단하다고” 칭찬할 때,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때, 나는 더욱 예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스승을 닮은 제자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20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계명들을 말씀 하십니다. 계명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서 주신 것들이 아닙니다. 인간을 잘 살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잘 살려거든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지키는 일들이 바로 선한 일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지키기 어려운 계명들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입니다. 비록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언어의 폭력으로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을 것이고, 육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마음으로 죄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며, 나를 합리화시키면서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처럼 사용하고, 탐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며, 자신의 이익과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적당히 거짓말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쉬운 것 같지만 참으로 어려운 계명들입니다.
하지만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내가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21 그가 예수님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그의 대답은 자신에 대한 자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의 성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인 듯 합니다.
참으로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의식은 열심한 히브리인의 마음 안에는 있었습니다. 성실한 랍비들은 항상 율법의 전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랍비들 가운데에는 인간의 윤리적 능력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경건한 사람까지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의 의로움 보다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생각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22 예수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이르셨다. “너에게 아직 모자란 것이 하나 있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이 권력가는 일반적인 계명을 초월하는 특별한 가르침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워 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는 순간입니다.
계명을 실행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그 이상,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지켜야 할 세상으로부터의 이탈뿐만 아니라 완덕을 지향하며 청빈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인들도 토라를 연구하기 위하여 재산을 다 팔아 버린 랍비가 있었고, 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한 청빈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숫자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믿음”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완전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히브리인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남에게 적선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보화를 얻는 것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은 한 평생 적선을 베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재산을 적선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신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십니다.
재산을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일, 모든 자연적인 청빈보다도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권력가는 이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버리면 자유롭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결정을 할까요? 복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제자들은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았는데, 역사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첫 제자는 베르나르도입니다. 베르나르도는 귀족이었는데, 프란치스코의 회개생활을 멀리서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베르나르도는 처음에는 프란치스코의 회개와 성당 보수를 새로 시작한 광기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프라치스코의 생활을 보면서 베르나르도의 의심은 존경심으로, 의아심은 감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베르나르도는 훌륭한 시민이었고, 영혼의 불꽃이 타오르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프란치스코를 따르고자 하는 결심이 무르익어갔습니다. 프란치스코처럼 가난해지고 싶었고, 프란치스코처럼 옷을 입고 싶었고, 프란치스코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베르나라도는 프란치스코에게 자신을 내맡기기 전에 프란치스코의 신심이 참된 것인지를 시험해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여러 차례 자기 집에 와서 묶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당시 프란치스코는 숙소가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꺼이 이 초대를 받아들였습니다. 어느날 저녁 베르나르도는 자기 침실로 프란치스코를 맞아들였습니다. 당시 상류 집안에서는 밤새도록 침실에 등불을 켜 놓은 것이 관습이었으므로 등불은 밤새 켜 있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의 성덕을 감추기 위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자는 척 했습니다. 잠시 후 베르나르도도 들어와서 똑같이 자는 척 하고 깊은 잠이 든 것처럼 코를 크게 골았습니다. 성프란치스코는 베르나르도가 정말 자는 줄 알고 침대에서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두 눈과 두 팔을 하늘을 향해 올리고 뜨거운 열정과 신심으로 외쳤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그는 아침이 될 때까지 기도하면서 몹시 울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베르나르도는 보았습니다. 새벽이 되자 베르나르도는 프란치스코를 끝까지 따를 결심을 하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재산을 관리하도록 주인에게서 재산을 받았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 재산을 관리 해 왔는데 이제 그 일을 그만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제일 잘 하는 것일까요?”
프란치스코는 “재산을 받은 주인에게 되돌려 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베르나르도는 “형제님, 그런데 그게 나의 일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은 다 나의 하느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이제 다시 되돌려 드리고 싶은데 당신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처리하고 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프란치스코는 “내일 아침 성당에 가서 복음서를 펴고 주님이 당신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는지 읽어 봅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성당에 들어가서 함께 기도한 후, 프란치스코가 제대에 올라가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펼쳤더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 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는 말씀과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돈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는 구절을 그들 앞에 펼쳐졌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삶이고, 우리의 회칙입니다. 우리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회칙입니다. 이제 가서 지금 우리가 들은 대로 실행합시다.”
23 그는 이 말씀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그가 큰 부자였기 때문이다.
그 권력가는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권력가가 지키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자신의 재물을 나눠 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는 부자라고 설명되어 있기에 살인이나 도둑질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큰 유혹은 그가 부리고 있는 일꾼들에게 과중한 노동이나 임금의 체불, 노동에 알맞지 않은 임금의 지불 등의 부정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그는 의롭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그렇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은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다는 것. 분명 어느 누구에게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재물에 집착이 없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있을수록, 많이 가질수록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권력가의 행동은 참으로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닌 척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나는 가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긍정하는 척 합니다. 그리고 옳은 것도 옳은 것이라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권력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쉽게 감정을 속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이 순간만 피하면 되지…하지만 이 권력가는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갈등하면서 살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모든 것을 정리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을까요?
풀이 죽어 떠나가는 사람.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고 슬퍼하면서 떠나갑니다. 많은 재산에 대한 집착이 완덕의 이상과 선한 예수님께 대한 애정보다 강하였기 때문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가시와 넝쿨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께서 뿌리신 씨를 덮어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 권력가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위대한 사도가 되지 않았을까요?
24 예수님께서는 그가 매우 슬퍼하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는 재물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재물을 자기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재물이란 인간을 노예화하려는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떠나 완전히 하느님께 마음을 바치지 않는 한 결코 아무도 재물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라면 어느 누구도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재물에 집착하는 이상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산에 대한 집착을 버린 다는 것은 선행과 공덕을 쌓아 올리는 기회가 되는 것이며 완덕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재물에 집착하고 있는지 느껴야 하겠습니다. 이 재물은 하느님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집착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재물은 물질을 넘어서 자신의 고집일 수도 있고, 취미일 수도 있고, 직장일 일수도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신앙 모임에 못나가요”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것이 모두 핑계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그렇게 최선을 다할 때, 나는 구원을 체험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 내가 해야 되는 것들과 하지 말아야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 꼭 기억해야 합니다.
26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제자들은 당혹감과 절망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말 안에는 자신들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구원을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정당하게 구원을 요구할 권리가 없으며 혼자 힘으로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오직 물질에만 집착한다면 그가 구원받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무자비한 분이 아니십니다.
2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다.”
참된 신앙인은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지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아서 행동하고, 하느님을 뜻을 실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은총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들었습니다. 하느님은 감독관이나 폭군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와 당신의 뜻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을 종이 주인을 두려워하듯 그렇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며, 자신의 몸을 잔혹하게 괴롭혀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긴 사람들은,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게 만들고,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기뻐하게 만듭니다. 세리였던 자캐오가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의 마음은 자발적으로 하느님을 향하여 열렸습니다. 그렇게 열려야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주변의 형제 자매들의 모습 안에서 참으로 멋진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