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人性에 대한 긍정과 올바른 이해

問 1) 그리스도교는 어떤 신앙을 가진 종교입니까?


答 1)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고백하고, 그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구원을 주신 구세주이심을 믿어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問 2) 그렇다면 우선 궁금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셨나 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분이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시며, 느끼는 사람이었읍니까?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
면 ‘예수가 진정한 인간’이었다는 그 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答 2) 정말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성서의 증언을 통해 뵈올 수 있는 예수가 실제로 우
리처럼 울고 웃고, 음식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잠을 자고 등등의 인간적인 조건들에 속한 분이셨
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만약 예수가
겉모양만 인간, 즉 인간의 껍데기만 잠시 빌려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아픈 척 했다면, 그것은 분명 기만이며, 또 그분이 실제로 부활했다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기에 우리의 구원에는 전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아무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
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이유에서 그분이 진정으로 人性을 가지신 분이시며, 그분이 인성을 취하
신 의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성서의 여러 증언들
우선적으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성서에서 보여지는 여러가지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
습들입니다. 성서에서는 우리가 쉽사리 지나칠 수 있는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성서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정말로 인간이셨음을 알아보겠습니다.
요한 1,14에서는 “‘정녕’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서 거처하셨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 인간의 정신, 인간의 의지,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가지고 계셨음을 자신의 복음서 첫 머리에 적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인간의 나약함도 함께 가지
셨으니, 전교활동 중에 “여행으로 지치셨으며”(요한 4,6), “배고픔(요한 4,2)과 목마름(요한 4,7)이
무엇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화장실에도 가셨겠지만, 복음을 기록하셨던 분들이
그 부분은 적어넣기가 민망했던 모양입니다.  또하나 아쉬운 점은, 복음서의 어느 부분에서도 예수
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장면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늘상 얼굴을 찡그리고 지내셨
을 리는 없으셨을텐데요. 이점은 아마도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지니는 거룩함, 엄숙함, 중대함에 대
한 복음사가들의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계속해서, 그분은 “비통한 마음
이 북받쳐”(요한 11,33) 큰 슬픔으로 가득차기도 하셨고, 군중을 보시고 가엾게 여기기도 하셨습니
다.(마태15,32) 그분은 예루살렘 백성이 평화에로 나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
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루가 19,32)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인간성이 진실되었음을 드러내 주는 가장 극적인 부분은 십자가상 수난
을 당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분은 정신과 육체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단말마
의 고통 속에서 “공포와 번민에 괴로와 죽을 지경”(마르코 14,34)이라고 당신의 고통을 제자들에게
토로하시면서, ‘아버지’께 “하고자만 하신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달라”고 애원하시기까지 하
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취하신 人性을 결코 포기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부활하
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당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써 당신이 정말 사람이셨음을 제
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제, 이렇게 예수께서 극심한 수난과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당신의
人性을 끝까지 지키셨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하고 말씀하셨다.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하였다.”(요한 20, 27-28)


(2) 예수의 人性이 갖는 의미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 한마디로도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를 고집
하지 않으시고 인간 안으로 강생하셨습니다. 신약성서의 공동체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기 이전에 이미, ‘인간 예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인간 예수’가 지니는 의미
는 무엇이었을까요? 
첫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뵈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인 필립보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요한 14,8)라고 요
청했을 때,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안에
서 드러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분명하고도 확신있게 보여주십니다.
두번째는, 예수께서 보여주신 ‘인간으로서의 삶’을 통해서 온갖 불의와 죽음의 세력과 대결하
는 원형적인 모범을 보여주셨고, 당신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에 나아갈 수 있다는 실제적 보증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우리와 함께 고뇌하며,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는 그분의 모
습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생명, 삶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역사 안에 현존하셨던 예수가 단순한 신의 껍데기가 아닌 진정한 인간이심을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여러 모습들을 진실로써 받아들일 수 있겠고, 이를
통하여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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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人性에 대한 긍정과 올바른 이해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問 1) 그리스도교는 어떤 신앙을 가진 종교입니까?

    答 1) 그리스도교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고백하고, 그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인류에게 구원을 주신 구세주이심을 믿어 고백하는 종교입니다.

    問 2) 그렇다면 우선 궁금해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로 우리와 같은 ‘인간’이셨나 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분이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시며, 느끼는 사람이었읍니까?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
    면 ‘예수가 진정한 인간’이었다는 그 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答 2) 정말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성서의 증언을 통해 뵈올 수 있는 예수가 실제로 우
    리처럼 울고 웃고, 음식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잠을 자고 등등의 인간적인 조건들에 속한 분이셨
    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만약 예수가
    겉모양만 인간, 즉 인간의 껍데기만 잠시 빌려서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아픈 척 했다면, 그것은 분명 기만이며, 또 그분이 실제로 부활했다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인간 존재의 조건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기에 우리의 구원에는 전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아무 것에도 의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
    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떤 이유에서 그분이 진정으로 人性을 가지신 분이시며, 그분이 인성을 취하
    신 의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1) 성서의 여러 증언들
    우선적으로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은, 성서에서 보여지는 여러가지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
    습들입니다. 성서에서는 우리가 쉽사리 지나칠 수 있는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성서 구절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정말로 인간이셨음을 알아보겠습니다.
    요한 1,14에서는 “‘정녕’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서 거처하셨다”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 인간의 정신, 인간의 의지,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가지고 계셨음을 자신의 복음서 첫 머리에 적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은 인간의 나약함도 함께 가지
    셨으니, 전교활동 중에 “여행으로 지치셨으며”(요한 4,6), “배고픔(요한 4,2)과 목마름(요한 4,7)이
    무엇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화장실에도 가셨겠지만, 복음을 기록하셨던 분들이
    그 부분은 적어넣기가 민망했던 모양입니다.  또하나 아쉬운 점은, 복음서의 어느 부분에서도 예수
    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장면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늘상 얼굴을 찡그리고 지내셨
    을 리는 없으셨을텐데요. 이점은 아마도 예수님의 구원 사업이 지니는 거룩함, 엄숙함, 중대함에 대
    한 복음사가들의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계속해서, 그분은 “비통한 마음
    이 북받쳐”(요한 11,33) 큰 슬픔으로 가득차기도 하셨고, 군중을 보시고 가엾게 여기기도 하셨습니
    다.(마태15,32) 그분은 예루살렘 백성이 평화에로 나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
    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십니다.(루가 19,32)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인간성이 진실되었음을 드러내 주는 가장 극적인 부분은 십자가상 수난
    을 당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분은 정신과 육체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단말마
    의 고통 속에서 “공포와 번민에 괴로와 죽을 지경”(마르코 14,34)이라고 당신의 고통을 제자들에게
    토로하시면서, ‘아버지’께 “하고자만 하신다면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달라”고 애원하시기까지 하
    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취하신 人性을 결코 포기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부활하
    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당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심으로써 당신이 정말 사람이셨음을 제
    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이제, 이렇게 예수께서 극심한 수난과 고통을 당하시면서까지 당신의
    人性을 끝까지 지키셨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그리고 토마에게,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하고 말씀하셨다.
    토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대답하였다.”(요한 20, 27-28)

    (2) 예수의 人性이 갖는 의미
    예수님께서는 당신 말씀 한마디로도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를 고집
    하지 않으시고 인간 안으로 강생하셨습니다. 신약성서의 공동체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기 이전에 이미, ‘인간 예수’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인간 예수’가 지니는 의미
    는 무엇이었을까요? 
    첫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예수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을 뵈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인 필립보가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요한 14,8)라고 요
    청했을 때, “나를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안에
    서 드러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분명하고도 확신있게 보여주십니다.
    두번째는, 예수께서 보여주신 ‘인간으로서의 삶’을 통해서 온갖 불의와 죽음의 세력과 대결하
    는 원형적인 모범을 보여주셨고, 당신 부활을 통해 구원의 길에 나아갈 수 있다는 실제적 보증이
    되어주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우리와 함께 고뇌하며, 우리와 함께 기뻐하시는 그분의 모
    습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약속된 영원한 생명, 삶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역사 안에 현존하셨던 예수가 단순한 신의 껍데기가 아닌 진정한 인간이심을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여러 모습들을 진실로써 받아들일 수 있겠고, 이를
    통하여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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